이탈리아 와인에 빠지다

우리 모두 행복해지길 바라며...

by 진원재 Willie Chin




그동안 와인은 몰랐다. 종종 가족 모임에서 와인을 마셨지만 그다지 즐기진 않았다.

그냥 포도로 만든 술이구나 정도였다. 와인은 프랑스, 칠레 산이 대부분이고, 여러 사람들 모였을 때 분위기 살리는 반주 정도로만 생각했다. 소주와 맥주를 즐겨 마시던 나는 취하는 것도 아닌 이 술의 매력을 잘 느낄 수 없었다. 신의 물방울이란 만화책을 재미있게 읽긴 했지만 옆에서 나비가 날아오고 폭포수가 떨어지는 것은 허황된 과장일 거라 여겼다.


본격적으로 술을 마시기 시작했던 대학시절엔 정말 오지게 마셨다. 강의 시간 중간에 나가 감자튀김 한 접시에 맥주를 마시고 다시 들어와 강의를 듣기도 했다. 소주도 엄청 마셨다. 1인분에 1900원하는 대패 삼겹살이나 어묵탕에 인당 소주 세네 병은 거뜬히 마셨다. 회사에 들어가서도 줄기차게 마셨다. 지원업무를 담당했던 나는 거의 매일 다양한 동료들과 술을 마셨다. 마침내 간 수치(GPT)는 200에 도달하였다.


92년부터 술을 마신 지 30여 년이 흘렀다. 30대 때 워낙 술을 좋아하고 자주 마셔서 내가 술을 잘 아는 줄 알았다. 와인도 마찬가지로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와중에 2008년 1월 이탈리아 출장을 가게 되었다. 이 출장이 나의 삶에 커다란 전환점이 되었다. 이때 나는 환상적인 체험을 하게 되었다. ‘신의 물방울’ 정도는 아니었지만 실제 내가 경험할 수 있는 몽환적 시간을 갖게 되었다. 그때 만난 이탈리아 와인과 나는 사랑에 빠졌다.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더 모르겠는 신비한 이탈리아 와인에 나의 마음을 완전히 빼앗겼다.


와인은 정말 다양하고 복잡하다. 한잔의 와인도 몇 분 지나면 또 다른 면모를 보여주니 말 다했다. 그중에서도 이탈리아 와인은 더욱 그렇다. 다른 나라에 비해 품종도 더 많고 지역도 다양하다. 아마도 내가 이탈리아 와인에 대해 글을 쓴 걸 이탈리아 사람들이 안다면 박장대소할 것이다. 내가 알고 있는 부분은 아주 일부에 지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마시면 마실수록 새로운 품종과 지역이 나온다. 너무 마음에 드는 지역 와인이 나타나면 또 다른 매력적인 지역 와인이 나타난다. 이탈리아 와인은 나를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는다.


이제부터 나의 이태리 와인 러브 스토리를 정리해 보려고 한다. 첫 만남부터 현재까지 만난 우리의 시간을 기록하려고 한다. 아직 우리가 함께 해야 할 시간이 많이 남았고 더 많은 것을 알아가야 하겠지만, 더 늦기 전에 아니 잊혀가는 소중한 기억들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 졌다.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아내도 남편이 허구언 날 와인 쳐 마신다고 불만이 장난이 아니다. 아내에게도 이탈리아 와인을 권해보았으나 당연히 친해지지 못했다. 남편이 자기 말고 다른 이에게 사랑에 빠졌으니 당연히 싫어할 수밖에.. 나의 외도를 인정한다. 나의 모든 사랑을 정당화하기 위해 사랑은 화수분처럼 계속해서 나온다는 바람둥이 컨셉으로 무장할 수밖에 없다. 이탈리아 와인에 쏟는 애정 이상으로 아내에게 사랑을 줘야 세상에 살아남을 수 있다.


이 세상에 많은 사람들과 이탈리아 와인에 대해 공유하고 싶어 졌다. 각박해져 가는 세상 속에 점점 우울증이나 강박증과 같은 것에 고통받는 사람들이 주변에 늘고 있다. 나만 알기엔 아까운 행복한 경험을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 그래서 우리 모두 죽기 전에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좀 더 많이 보냈으면 하는 바램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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