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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윌 노튼 Jan 03. 2019

마약왕과 박정희

과소평가된 영화 <마약왕> 분석 (스포 O)


 <마약왕>은 SNS상에서 최악의 한국 영화들로 손꼽히는 <리얼> <염력>과 비교되었다. 인생 최악의 영화라는 평이 많았기에 나조차도 선뜻 표를 사기가 두려웠다. 썸녀가 보자고 하는 걸 거절할 수가 없어서 눈물을 머금고 극장에 입장했다. 하지만 옛 말에 여자 말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 다지 않았는가.(아님말고)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생각보다 볼.만.했.다!


 영화의 스토리가 뛰어나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2018년 최악의 영화라는 주장엔 추호도 동의할 수 없다. 다른 한국 영화들과 비교해봤을 때 <마약왕>은 준수한 편임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완성도에 비해 너무 심한 비난을 받고 있다. 나는 그 이유를 이두삼(송강호분)이 박정희라는 메타포를 관객들이 알아차리지 못해서라고 생각했다.

영화의 핵심은 이두삼이 박정희라는 메타포이다

 

 박정희는 경상도 출신으로 일제시대에 만주에서 일본군 장교로 활동하였고 일제 패망 후 형과 함께 남조선노동당 활동을 하며 정치활동을 시작한다. 박정희는 군사 반란으로 정권을 획득한 만큼 반란을 두려워하여 정권의 2인자를 용인하지 않았다. 그는 부하들의 권력을 분산시켰고, 자신에게 해가 되거나 큰 힘을 가졌다고 판단되는 이들을 구속, 고문 및 암살하였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10.2 항명사건과 윤필용 사건, 김형욱 납치 암살사건이 있다.


 영화 갈등구조는 유신헌법이 통과된 1972년부터 박정희가 최측근에게 암살당하는 1979년까지의 흥망성쇠와 궤를 같이한다. 그런 만큼 영화의 인물과 갈등은 박정희와 유사한 점이 많다. 이두삼의 고향은 만주이고, 일본에서 조총련계(공산주의자) 야쿠자인 김순평(윤제문분)을 만난 것을 계기로 동생과 함께 부산에서 마약사업을 시작한다. <마약왕>엔 이두삼을 돕는 많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조력자들이 처음 등장하는 임팩트와 다르게 후반부에는 흐지부지 사라진다는 것이 영화의 비판점 중 하나인데, 박정희가 정권의 이인자들을 대했던 방식을 떠올려보면 이것은 감독의 역량 부족이 아니라 애초부터 감독이 의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1974년은 긴급조치가 시행된 해로 대학생과 재야인사를 중심으로 전국적인 유신 반대 시위가 일어난다. 박정희 정부는 국민들의 저항에 부딪히지만 육영수 여사 암살 사건으로 인해 국민적 추모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오히려 통치기반이 단단해지게 된다.


 이두삼은 아내 성숙경(김소진분)에게 자신의 실종신고를 부탁하고 교회에 있는 장애인과 재혼을 하라고 시킨다. 물론 이두삼은 그 장애인의 신분을 도용하여 생활한다. 둘의 실제 결혼생활은 변하지 않았을지 몰라도, 호적상 이두삼은 아내를 잃은 것이다. 승승장구하던 이두삼은 1974년 김인국 검사(조정석분)가 마약단속반에 취임하며 위기를 맞는다. 매수된 경찰관의 도움으로 겨우 살아날 수 있었지만 위험천만했던 체포작전이 일어나기도 했다. 김인국 검사는 이두삼 체포를 위해 새로운 팀을 꾸린다. 전방위적인 수사망이 좁혀 들어오자 위협을 느낀 이두삼은 돈을 들고 서울로 도망친다. 김인국 검사를 피해 도망간 서울에서 이두삼의 지위는 더욱 높아진다. 상류층 사교계에 발을 들인 그는 김정아(배두나분)를 통해 정치적 입지를 다진다.


 한국광복군 출신으로 유신헌법을 반대하며 개헌청원 100만 인 운동을 전개하기도 했던 장준하는 1975년에 암살당한다.


 1975년, 막대한 재력을 앞세워 정치 사회 활동을 활발히 전개하던 이두삼은 여자배구단 교류식 참석차 도쿄에 방문한다. 이어진 연회장에서 그는 우연히 자신을 고문하였던 백운창(김해곤분)을 만난다. 하늘 무서울 게 없던 이두삼도 자신의 본래 신분을 알고 있는 백운창 앞에서는 쭈굴이 신세를 면치 못한다. 이두삼은 김순평의 도움을 받아 그를 살해한다.


 박정희는 정권에서 더러운 일을 도맡아 했던 중앙정보부장 김형욱과 이후락을 팽시킨다. 이에 빡친 김형욱은 미국에서 코리아게이트가 터지자 박정희 정부에 증언을 하고 자신이 했던 일들을 정리해 회고록을 집필하려 하기까지 했다. 1979년, 공화당이 김영삼 국회의원 제명 건을 날치기로 통과시키자 부산에선 격렬한 데모가 시작된다. 정부가 부산지역에 계엄령을 선포하자, 마산에서도 데모가 시작된다. 이를 부마항쟁이라고 한다. 박정희는 부마항쟁을 무력으로 진압하려고 하였지만, 최측근이자 친적인 김재규의 총탄에 맞아 사망한다.

 

 이두삼은 마약에 중독되어 자신을 마약왕으로 만들어줬던 사람들을 모두 버린다. 심지어 자신을 헌신적으로 내조했던 아내 성숙경을 배신하고, 그를 감옥에서 구해주고 정치적 입지를 쌓게 도와주었던 김정아에게 마저도 의처증 증세를 보이며 폭력을 사용한다. 김순평은 의형제를 맺은 이두삼에게 도움 요청을 거부당하고 부마항쟁 시위대 사이에서 쓸쓸히 죽음을 맞이한다. 그는 결국 성숙경의 협조로 경찰에 체포된다.


 어떤 사람은 <마약왕>의 스토리가 뻔하다며 이 영화가 마약팔이맨 스토리의 행님 격인 <스카페이스>를 따라 했다고 평했는데 이는 전혀 사실과 다르다. 감독은 오히려 그런 식의 이야기 전개를 피하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스카페이스>와 같은 영화의 스토리 라인은 조빱이던 사람이 마약을 팔아 성공하는 모습을 보여준 다음 주인공 내면의 갈등을 보여준다. 반면에 우민호 감독은 이두삼의 내면적 갈등에 집중하지 않았다. 대신 마약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 - 욕망의 욕망, 파멸을 치유하는 파멸 - 에 포커스를 맞추었다. 마약과 권력은 그 자체가 목적이자 방법이다. 애국심이니 뭐니 하는 변명을 하지만 사실 마약을 하는 목적은 더 많은 마약이고, 절대 권력을 쥐려는 이유는 더 많은 권력이다. 영화는 이들의 악마적 속성과 그로 인한 필연적 몰락을 담고 있다. 우민호 감독의 욕망 3부작이 다음 영화에선 어떤 모습의 욕망을 보여줄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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