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중진담
기자는 어린 시절 내가 볼 수 있었던 유일한 정의로운 직업이었다.
사람 목숨을 좆으로도(글에 욕 쓰는 건 안 좋아하지만 다른 표현을 못 찾겠다. 아마 취해서일지도) 안보는 기업가, 꼴에 알량한 권력으로 비정규직을 차별하는 정규직 노동자, 이성이 마비된 기독교인들이 나를 둘러싸고 있었다.
기자는 이 고장 난 사회에 유일하게 반기를 드는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언제나 나의 장래희망은 기자였다.
하지만 겪어보니 언론은 전혀 정의롭지 않았다.
언론 시장은 일종의 과점 체제다.
정치, 자본과 결탁한 언론사들은 원하는 대로 현실을 호도할 수 있다
문득 궁금하다.
그렇다면 나는?
아빠가 해고를 당하지 않았더라면,
하청업체 사장을 시켜주겠다는 위기대응팀의 달콤한 제안에 응했다면,
내가 노동과는 관련 없는 도시에 태어났더라도
지금 같은 반골 기질을 갖고 있을까?
내 기대보다 훨씬 많은 연봉을 제시하는 회사의 입사를 앞두고 어떤 차를 살지 고민하는 걸 보면 나도 돈이 좋긴 한가보다.
여전히 많이 약하고 부족하다
솔직히 결함 그 자체다
그래도 신념 있는 사람이고 싶다
뭐라도 해야겠기에 대담하게 출사표를 던져본다.
첫 번째. 정년 퇴직하지 말자.
60살까지 한 회사에 있는 건 지겹잖아.
굶어 죽을 걱정 없는 좋은 시대에 태어나서
내 출신을 부정하는 일을 하면서 까지 살 필요가 없으니까.
기자 인생의 완성은 안주머니에 품고 있던 사직서를 상사 얼굴에 내던질 때 아닐까?
두 번째. 숨이 붙어 있는 한 배우자.
빠른 시일 내에 장기 교체술이 발달해서 300년은 살면서 천천히 세계여행 우주여행 다녔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할 수도 있으니까.
찰나의 삶 속에서 의미를 겨우 겨우 겨우 찾아보자면 ‘지적 열반에 오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라 믿는다.
소년의 웃음을 잃지 않고 여전히 설레고 슬퍼할 수 있고 싶다.
인생, 참 재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