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아람은 대중의 감각이 바뀌었다고 주장한다. 진실을 소비하는 대중의 방식이 레거시 미디어(기성 언론)의 문법에서 뉴미디어의 문법으로 넘어갔다는 말이다.
레거시 미디어의 문법은 묵직함이다. 단정한 복장, 정돈된 외모의 아나운서가 표준 발음을 사용하면서 정해진 시간, 정해진 규칙대로 진실을 송출한다. 반면, 뉴미디어의 문법은 느슨함이다. 편한 복장,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말이 오가고 특정한 규칙 없이 진실이 업로드된다. 진실의 외피가 달라진 것이다.
손아람은 현상의 원인을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레거시 미디어의 문법이 권력과 제도의 통제를 받는 신호가 되었다는 것이다. 대중은 이를 알아채고 레거시 미디어를 불신하게 되었다.
언론에 관한 비판은 언제나 있었다. 하지만 외면까지 당한 것은 이례적이다.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의대생 한강 살인사건'을 조명한 적이 있다. 방송 속 한 시민은 "우리는 유튜브만 믿어. 유튜브가 진실이야."라고 외쳤다. '탈진실의 시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진실을 담당하는 언론의 권위는 땅으로 추락했다.
이해 못할 것도 아니다. 김장겸, 김인규 등으로 대표되는 공영방송의 보도 논란은 사장에 따라 논점이 달라지는 행태를 보여왔다. 조국 사태를 두고 언론은 검찰 주장 '받아쓰기' 논란에 휩싸였다. 채널A의 한 기자가 벌인 검언유착, 이를 대응하는 MBC의 권언유착 논란은 그 실체가 '유착'과 관련이 없더라도 권력과 '연결'될 수 있음을 시사하는 사건이었다. 권력과 독립적이지 못한 레거시 미디어의 맥락을 둘러보면 대중이 염증 날만하다.
뉴미디어의 성장은 '대안언론'으로서 각광받았다. 욕설과 풍자, 희화를 섞어 내보내는 진실은 답답하고 묵직한 레거시 미디어의 관행으로부터 자유로워 보였기 때문이다. 심지어 일정 부분 팩트를 담보하기도 하고 레거시 미디어에서 보여주지 않은 다른 관점을 제시함으로써 그 입지가 돋보였다.
그러나, 손아람은 뉴미디어의 문법조차 권력에 의해 가볍게 공략되었다고 진단한다. 트럼프는 트위터를 통해 느슨한 문법을 구사했지만 가짜 뉴스를 쏟아냈다. 정치뿐 아니라 기업도 한몫한다. 제품의 비하를 용인하면서 자유로운 리뷰의 모습을 띠지만 실제는 제품 홍보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진실은 특정한 외피를 입고 나타나지 않는다.
뉴미디어의 시대가 도래해 레거시 미디어의 위기라고들 한다.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언론의 불신을 조장한 레거시 미디어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간혹, 레거시 미디어가 뉴미디어의 문법을 따라가기 위해 외피를 바꾸는 경우가 있다. MBC의 올림픽 개회식만 보더라도, 뉴미디어의 자극적인 문법과 자유로운 애드리브를 펼친 결과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외형만 바꾼다고 능사는 아닌 것이다.
어떤 이는 대중이 '자극적인 것'만 찾는다고 한탄을 한다. 그래서 진실도 진실이라 믿지 않고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쫓아갔다는 것이다. 그럴싸하게 '필터 버블'이라고 진단하기도 한다. 단순한 현상 분석으로는 일정 부분 옳을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책임 전가다. 반복되는 지적에도 변화하지 않고 관행을 따라온 곳이 언론이다. 대중의 염증은 본인들이 초래했다. 탈진실의 근본적인 원인은 쇄신하지 않은 언론에 있다.
게다가 대중이 탈진실한 것은 거짓을 추구하기 때문이 아니다. 뉴미디어는 항상 '팩트'를 강조한다. 대중은 여전히 진실을 알고 싶어 한다. 진실을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묵직한 모습의 진실'을 외면하는 것이다.
환경을 탓할 것이 아니라 언론이 스스로 돌아볼 차례다. 위기는 기회의 양면이다. 굉장히 빠르게도, 뉴미디어의 '느슨한 진실'이 조금씩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알고 싶다>의 '의대생 한강 살인사건' 보도 이후, 뉴미디어에서 쏟아냈던 타살의혹이 한 풀 꺾인 바 있다. '사이버 레커'라는 이름으로 사건사고를 자극적으로 풀어내는 뉴미디어의 행태를 비판하는 시각도 많아졌다. 이제는 진실의 외형에 신경 쓸 것이 아니라 진실을 어필할 새로운 감각에 주목해야 한다.
손아람은 '진실의 냄새'라고 표현한다. '단정한 차림의 목사로 찾아오든 산발의 모습을 한 구루로 찾아오든' 겉모습과 상관없이 진실만의 체취를 풍겨야 한다. 손아람은 그 모습을 분명하게 말하진 못해도 '진실의 적이 고정관념과 맹신'이라는 점은 확실하다고 말한다.
작금의 미디어 환경이 레거시 미디어와 뉴미디어의 과도기인 점을 상기하면, 대중은 양자택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 아니라 '얼마나 진실을 담보하는가'를 기준으로 저울질하는 중이다. 아무리 레거시 미디어의 권위가 떨어졌다고 한들, 뉴미디어의 느슨함을 잡아줄 수 있는 역할은 레거시 미디어만이 담당할 수 있다. 여전히 의대생 사망이 타살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있지만, 적어도 <그것이 알고 싶다> 방영 이후 그들의 '음모론과 맹신'을 환기시킨 것은 사실이다.
이제 레거시 미디어의 역할은 분명해졌다. 어차피 시대는 뉴미디어로 이행할 것이다. 적어도 뉴미디어가 '미디어'로서 진실을 담보할 수 있도록 고정관념과 맹신을 경계하는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자극적이고 단편적인 사건 보도는 이제 놓아주어야 한다. 보다 신경 써야 할 것은 탐사보도처럼 깊은 분석, 다양한 관점 종합에 있다. 주어진 '사실'만이 아니라 사실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던 맥락, 인물의 배경 등에 집중하는 것이다. '실체적 진실'을 추구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스토리 텔링'이 필요한데, 기사 작성 시간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시의성'은 포기해야 한다. 어차피 시의성은 뉴미디어를 따라갈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포기할 건 하고 집중할 건 집중해야 한다.
각종 언론에서 '공수처 1호 사건'으로 조희연의 특별채용을 조명했다. 2018년, 5명을 특채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해 감사원이 고발했다는 '사실'이 있었다는 것이다. 단편적인 사실만 보면 조희연은 비리를 저지른 사람으로 보인다. 그러나 김서중 교수는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교육운동을 하다 해직된 교사들을 특별 채용한 것이고, 절차 문제를 지적한 감사원과 교육청 사이에 이견이 있다는 사실까지 고려하면 취재 과정을 통해 사실의 진실성이 달라질 수도 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언론이라면, 주어진 사실에 특정 관점을 씌워 그것이 '진실'인지 아닌지를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해당 사건이 '사법부가 인정한 교육감의 재량으로, 특채 자격을 만족한 지원자끼리 경쟁시켜 5명을 선발한 결과'라는 맥락을 고려한다면, 감사원의 고발이 무리였다고 판단할 수 있다. '실체적 진실'을 추구하는 언론의 역할은 이렇게 활용되어야 한다.
실체적 진실을 추구하는 언론들이 있다. 남형도 기자의 <체헐리즘>이나 탐사보도 언론 <셜록>, 노컷뉴스의 <C-real> 등이 있다. 심지어 <C-real>은 주 무대가 뉴미디어이면서도 실체적 진실을 추구한다. 이들 중 어떤 기사는 권력형 비리처럼 거악과 싸우지만, 어떤 기사는 평범한 일상 속의 문제를 조명하기도 한다. 그들의 무기는 '스토리텔링'이다. 느슨한 진실로 맥이 풀린 미디어 환경에 묵직함을 더해준다. 레거시 미디어의 미래는 이들에게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무조건 뉴미디어의 문법을 배척하자는 것은 아니다. 스토리텔링은 독자에게도 상대적으로 많은 시간 투자를 요구한다. 바쁜 현대인들의 이목을 끌기란 쉽지 않다. 이를 간단히 요약해 느슨한 모습으로 소개하는 콘텐츠는 더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진실의 외형 변화는 이 경우에만 바람직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