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여행보다는 여정이 어울리는 말 같다. 여행 장소까지 도달하는 과정이 너무 귀찮다.
육체도 그렇지만, 영혼도 그렇다. 고민거리가 생기면 내 생각은 꼬리를 물고 우주를 넘어 평행세계 속 나와 서로 옥신각신 고집을 부리다 온다. 너무 피곤하다. 그래서 웬만한 문제들은 단순하게 넘기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글쓰기는 그럴 수 없다. 단순하게 쓸수록 좋은 것이 글이라곤 하지만, 최소한 사실관계는 확인해야 한다. 문제는 글을 쓰는 시간보다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시간이 더 오래 걸린다는 점이다.
한 번은 주제를 쉽게 풀어내기 위해 '로터리'를 예시로 든 적이 있다. 그런데 내가 생각했던 것은 '회전 교차로'였다. 로터리는 회전 반경이 크고 회전 교차로는 작다고 한다. 얼마나 큰 차이인지 알아보기 위해 사진을 찾아보았다. 로터리로 쓰면 난처할 뻔했다. 그런데 회전 교차로가 설치되는 조건이 따로 있다고 한다. 조건을 무시하고 멋대로 비유해버리면 글의 완성도가 떨어진다고 생각해 하나씩 살폈다. 그대로 비유해도 괜찮은 것을 확인했다. 글을 쓰다 보니 구체성이 떨어지는 것 같아 차량 유도선, 교통섬 등 디테일을 더했다. 점점 글을 쓰는 것인지 교통공학을 전공하는 것인지 헷갈려졌다.
비유니까 이 정도지, 이전에는 인공지능을 주제로 쓰느라 규칙 기반 인공지능, 기계학습 인공지능, 튜링 머신, 심지어 기술 철학과 미디어 철학까지 찍고 왔다. 고통스럽다. 그래서 좋은 주제가 착상해도 확인할 것이 너무 많아 그대로 묻어두는 글들이 많아졌다.
학자라고 다를 것은 없나 보다. 이틀 전, 오찬호 교수가 SNS에 글을 하나 올렸다. '진통제'를 키워드로 사회를 바라보는 글을 쓰는 중인데, 아스피린-버드나무-동의보감-이순신-파피루스-문자 해석 역사-고고학까지 날아간다고 애교 섞인 푸념을 늘어놓았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저런 성실함이 있으니 좋은 글이 나오는구나.' 영겁의 여정을 떠나는 내 영혼이 유난스러운 것인 줄만 알았다. 그러나 여정이 길어진다는 것은 좋은 글로 향한다는 신호였다. 게으른 나에겐 탄식이 나오는 진실이다. 세상에 쉽게 되는 것은 왜 없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