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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주현 Dec 19. 2021

오늘 전두환이 죽었다

21.11.23 기록

 오늘 전두환이 죽었다.


 선배 기자는 능숙하게 단신을 보도했다. 제목은 '전두환 전 대통령 오전 8시 55분경 사망'이었다. '전 대통령…' 속으로 생각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전두환은 '전두환 혹은 전두환 씨'로 배웠다.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하고 민주시위를 유혈로 진압했으며 42개 기업체 대표들로부터 2,160억 원을 뇌물을 받았다.(https://imnews.imbc.com/replay/1996/nwdesk/article/1966288_30711.html) 할 수 있는 최악의 짓은 전부 하고 세상을 떴다. 이런 작자에게 '전 대통령'이라고 예우를 해 주어야 하나?


 선배 기자 본인도 보도하고 나서 전 대통령이라는 표현이 마음에 걸리는지 "전두환 씨?... 전두환 전 대통령?"하고 중얼거렸다.  마침 근처를 배회하던 국장이 타이밍 좋게 입을 열었다. "전두환 씨든 전두환 전 대통령이든 상관은 없는데,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 차원이지. 대통령 직을 박탈당한 거지 대통령이었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니까. 만약 대통령이었다는 사실을 부정하면 그때 있었던 외교적 협약이나 정책들도 무시하는 거거든."


  나는 조용히 사수 기자에게 물었다. "전두환 씨가 맞지 않아요?" "그렇긴 한데, 전 대통령도 상관은 없어." 그가 답했다. 하지만 그도 마음에 걸렸는지 카카오톡 업무방에 다른 언론사 보도를 올리며 "멋있다."라고 말했다. 해당 보도는 다음과 같이 걸려 있었다. '신군부 쿠데타 전두환 씨 사망(속보)'




 사내는 전두환 사망으로 한창 시끄러웠다. 내 부서 바로 앞에 있는 전국부에 전화가 계속 울렸다. 컴플레인 전화로 짐작되었다. 전국부장은 계속해서 "그렇게 말해서 되는 게 아니라니까요? 잠깐 시간을 가지고 설명을 하셔야죠. 마음대로 말씀한다고 기사를 내릴 수 있는 것은 아니에요."라며 사태를 수습하기 바빴다. 전화를 끊고 옆에 있던 위원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래도 우리는 통신사니까 중립을 지켜야지. 대통령이긴 했으니까 예우 차원 아니겠어? 그런데 <미디어 오늘>이랑 민언련에서 계속 뭐라고 하니까… 차마 톱은 바꿀 수 없고 2면에 '전두환 씨'라고 표현하기로 했지."


 얼마 뒤, <미디어 오늘>에서 뉴스 통신사들이 '전두환 전 대통령'이라고 표현한 점을 지적한 기사를 보도했다. 부끄러웠다. <한겨레>나 <경향>처럼 '전두환 씨', 심지어 '전두환'이라고 표현한 것과 대조를 이루었다. 부러웠다. 우리 언론사는 뉴스 통신사라는 이름으로 '전두환 전 대통령'이라는 표현을 고집했다. 이에 아무말도 하지 못한 나에게 한번 더 부끄러웠다.




 국장과 전국부장의 말에 일리가 있을까? 우선 국장이다. 행정주체(국가)와 행정기관(대통령)을 혼동했다.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는 인격체로 좌우되는 집단이 아니다. 대통령은 인민의 주권을 위임받은 대리자가 국가 전반의 결정을 공동체 차원에서 내리는 자리다. 전두환이 대통령이었음을 부정하더라도, 그것이 곧 그 당시 국가의 결정과 외교가 부정되는 것은 아니다. 전두환이라는 인격체가 정부와 동일하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그렇다면, 대통령이 5년마다 바뀌는 단임제 국가의 결정은 5년마다 뒤바뀔 수 있다. 아이러니다.

 한편, 애초에 전두환은 대통령직을 박탈당한 자다. 예우가 필요 없을뿐더러, 예우를 하지 않더라도 '그가 한때 대통령이었다는 사실'의 존립과는 상관없는 일이다. 상징은 사실관계의 지위를 흔들 수 없다. 제삿밥을 차리지 않는다고 이미 죽은 조상이 굶어 죽진 않는다.

  다음은 전국부장이다. 사자에 대한 예우를 존중해주는 것이 맞다면, 전두환에게 희생당한 광주 시민들을 먼저 존중하는 것이 맞다. 시간적으로도 그들의 희생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선후관계를 바로잡으면 전두환에게 '전 대통령'이라는 예우는 지나치다.

 또한 사자를 기리는 업에 질적인 차이가 존재한다. 광주 시민들은 개인의 욕심 때문에 산화하지 않았다. 광주라는 공간은 지리적으로만 한계를 가질 뿐, 그 상징과 정신은 대한민국 전체에 해당한다. 민주적 절차를 무시하고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독재자에게 항거했기 때문이다. 공익을 위해 세상을 떠난 이들에 대한 예우보다 사익을 위해 폭력을 휘두른 이를 더 대우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




 우리 언론의 한 보도는 '인권유린 vs 올림픽 유치'로 공과를 대비시켰다. 인권유린이라는 표현도 웃기다. 사람이 학살당한 사건을 매우 완곡시켰기 때문이다. 집단 살인과 올림픽 유치 사이의 균형은 한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심지어 기사 내용도 95%가 과를 지적하고 마지막 문장 5%만이 공을 언급하고 있다. 95% vs 5%를 제목으로 쓰는 것이 바람직한지 모르겠다. 중립을 기계처럼 조작하고 있다.


 모든 것을 양보해서 인물의 공과를 균형 잡게 보아야 한다고 하자. 그렇다고 전두환의 잘잘못을 5:5로 단순하게 제시하는 것이 올바른 가도 의문이다. 조건이 비슷하다면, 언론은 권력자보다는 약자의 편에 서야 한다. 언론은 공동체를 위해, 공동체의 구성원을 위해 권력을 감시하는 기구다. 시민에게 유리한 언론이어야 하지, 권력자에게 유리한 언론 이어선 곤란하다. 권력, 그것도 죽은 권력을 위해 '전 대통령'이라는 표현을 고집하면 아직 살아서 고통받는 희생자들의 유족에겐 어떻게 다가올까? '전직 대통령의 정무적 결정 보호', '죽은 독재자에게까지 차리는 예우', 유족들은 찢어진 상처에 소금 닿는 심정일 테다. 누구를 위한 언론인가.




 그냥 단순하게 '전가 놈 뒤짐'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전대가리는 5,000명이 넘는 사상자를 내놓고도 약 7년간 그 사실을 통제하고 은폐했다. 본인의 죽음을 알려주는 것만도 감지덕지해야 한다.


...라고 할 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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