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프닝] 지구에 기여하며 조금씩 소멸하는 중입니다

180화 [월] _ 박작박작한 오프닝 & 클로징

by 박선향

안녕하세요, 박작박작한 아침을 여는 박작입니다. (여담인데, 오늘은 내용 상 클로징으로 올릴까 하다가 혹시나 이른 아침에 기다리는 분들이 있을까 봐 오프닝으로 올립니다^^;)


날씨 좋은 토요일, 모처럼 전시회에 다녀왔습니다. <소멸의 시학: 삭는 미술에 대하여>라는 전시였어요.


뛰어난 작품을 불후의 명작이라고 부른다. 이때 불후(不朽)는 ‘썩지 아니함’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중략) 불후의 명작들의 수장고로서 미술관은 위대한 작품들의 가치를 변함없이 지키는 데 헌신해왔다. 삭는 미술은 묻는다. 인간을 넘어 다양한 존재와 함께 살아가기 위해 자신을 삭히기로 마음먹은 작품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느냐고. 수상한 계절이 이어지는 오늘, 더 잘 보존하기보다 더 잘 분해하는 법을 고민해야 할 때임을 인정할 수 있겠냐고. - 전시 소개 글의 일부 -


그러고 보니 우리는 몹시도 열심히 살아남으려고만 노력했던 것 같아요. 영원히 살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요. 그래서 우리는 더 바득바득 살아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달리고 또 달려,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을까요.


사람들은 죽음에 관해 얘기하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우울하게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지요. <죽음 연습>이라는 책을 읽는 저를 보고 왜 그런 책을 보냐고, 농담처럼 걱정하는 마음을 내비치던 친구도 있었지요. 근데 책의 뒤표지만 보았어도 그런 말을 하지 않았을 거예요. “‘죽음연습’은 곧 ‘삶의 연습’이다.”라고 적혀있었거든요. 그런데 이 전시를 보고 나니, 아름답게 사라지는 법을 배우는 일이야말로 ‘삭는 미술’과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 잘 보존하기보다 더 잘 분해하는 법을 고민해야 할 때”라는 문장이 가슴에 와서 콕 박혀버렸습니다. 무언가 많이 소유하기보다는 비워내는 삶을, 속도를 내어 앞서가기보다는 자연의 속도에 맞춰 스며들어 가는 삶을, 그래서 주변을 좀 둘러보며 사는 게 우리에게 필요한 ‘잘 삭는 삶’이 아닐까 싶습니다.


하루를 열심히 살아낸 밤이면, 꼭 나 자신이 폭삭 삭아버린 느낌이 들잖아요. 단순히 늙어버린 것이 아니라, 나의 에너지를 써서 세상 어딘가에 이바지했다는 훈장 같은 흔적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오늘 하루, 여러분이 쏟아낸 정성이 여러분을 조금 ‘삭게’ 만들었을지라도 슬퍼하지 마세요. 그건 여러분이 세상을 향해 가장 뜨겁게 발산했다는 증거이자, 자연스러운 소멸로 향하는 가장 아름다운 뒷모습일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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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박작박작한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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