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프닝] “저는 대역이 없습니다.”

181화 [화] _ 박작박작한 오프닝 & 클로징

by 박선향

안녕하세요, 박작박작한 아침을 여는 박작입니다.


“저는 대역이 없습니다.”


배우 유지태의 짤막한 인터뷰를 보았습니다. 본인과 체격이 비슷한 사람이 드물어 대역을 쓰면 금방 티가 나기 때문에, 평소 운동을 더 열심히 한다고요. 그래야만 그 어떤 역할이든 대역 없이 소화할 수 있을 거예요.


뭔가 크게 한 방 얻어맞은 사람처럼 이 인터뷰를 보고 한동안 가만히 있었습니다. 아무도 자신을 대신할 수 없다는 독보적인 존재라는 게 배우로서는 참 좋은 일일 텐데, 이런 단점 아닌 단점이 될 수도 있구나 싶었거든요. 그리고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모든 일에는 양면성이 있다고요. 모든 면에서 다 좋을 수만은 없다고요.


방송 작가로의 삶도 배우처럼 책임감이 필요했습니다. 감염되지 않고 잘 버텼는데 코로나가 사그라들 즈음 저도 결국 감염되고 말았지요. 그런데 그게 하필 다큐 촬영 중이었어요. 촬영을 마치고 돌아오는 차 안, 조연출이 연신 거친 기침을 내뱉더라고요. 그래서 걱정하듯 물었더니, 코로나19 아니라고 비염이라고. 근데 결론은 아니었던 거지요. 열은 팔팔 끓고 몸이 너무 이상하게 아팠습니다. 하지만 편집 구성안을 써야 하는 시기였어요. 그래야 피디님이 편집을 시작할 수 있으니까요. 결국 약속한 날 마치지 못하고, 일단 일부만 보내고 그다음 날에서야 겨우 작업을 마칠 수 있었지요.


지금 생각하면 무슨 정신으로 작업을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바들바들 떨면서 밥도 못 먹고 겨우 약만 먹으면서 버텼던 시간이었어요. 못 먹어서 3kg이 빠졌지요. 이 또한 신기한 경험이었습니다. ‘아, 사람이 못 먹으면 정말 살이 그냥 빠지는구나.’


얘기가 또 삼천포로 빠졌지요? 누구든 나를 대신할 사람이 없는 순간을 한 번쯤은 마주하게 되잖아요. 녹화가 한 번 쉬어 가는 주에 큰 수술을 받기도 했고, 암 수술 역시 일하는 중에 받았습니다. 생각해 보니, 그런 순간들을 참 고생스럽게도 잘 넘긴 제가 대견하기도 합니다. 배우 유지태가 평소 지독하리만큼 운동에 매진하는 이유도 어쩌면 그 때문일지 모르겠습니다. 자신이 맡은 역할을 끝까지 책임지기 위해서요.


무대 빈의자.png


생각해 보니 우리도 각자의 자리에서 그런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하루를, 묵묵히 책임지며 살아가고 있는 거지요. 그러니 오늘도 너무 대단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그저 여러분의 자리에서 여러분의 하루를 살아내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대역 없는 역할’을 해내고 있는 거니까요.


우리의 삶에도 대역은 없으니까요.


오늘도 박작박작한 하루 보내세요!

작가의 이전글[오프닝] 지구에 기여하며 조금씩 소멸하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