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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 모래시계 Jul 27. 2021

스페인 몬세라트에서 사진 찍는 법

찍어야 해? 말아야 해?

  

시차로 인해 낮과 밤이 바뀌는 여행지에서 날짜와 요일은 사라져 버린다. 그저 해가 뜨면 낮이요 어두워지면 밤이로구나 하면 그만이다. 도시의 랜드마크나 세계적으로 유명한 여행지에서 현지인과 뒤섞인 느낌이 들면 그날은 토요일, 혹은 일요일임에 틀림없다. 


여행자들의 채비는 아무리 표를 내지 않으려 해도 드러나기 마련이다. 오늘 몬세라트에는 단출한 차림새에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많은 걸로 보아 주말이 확실하다. 헤아릴 수 없는 기암괴석들이 톱니처럼 서로 어깨를 걸치고 산이 되어버린 스페인 몬세라트에 오후 해 질 녘에 도착했다. 이 산은 바르셀로나와 이음동의어인 <안토니오 가우디 1852~1926)>에게 넘치는 영감을 선사했다. 그가 어떻게 몬세라트를 사람들의 입에 영원히 오르내릴 건축물들에 투영했는지 보려면 바르셀로나로 가야 한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카사 밀라, 구엘 공원, 카사 바트요...

가우디라는 이름만 들어도 심장박동이 빨라진다면 건축가의 유전자가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혈통일지니, 그대, 어서 바르셀로나행 티켓을 마련하시라. 단, 이곳 몬세라트에 먼저 인사하기를 잊지 마시라.      

수도원에 오르기 전 고개를 돌린다. 굴곡진 바위와 대비되는 가파른 산세. ⓒ 푸른 모래시계

몬세라트에 도착하면 『천국의 계단』이라는 조각이 제일 먼저 우리를 반겨준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의 『수난의 파사드』를 조각했던 <호세 마리아 수비라치 (1927~2014)>의 작품이다. 같은 하늘을 한 번도 본 적 없는 두 거장이 몬세라트에서 조우한다.    

6년의 시차를 두고 다시 만난 천국의 계단. 구름이 파도친다. ⓒ 푸른 모래시계

베네딕트 산타마리아 몬세라트 수도원은 검은 마돈나『라 모레네타』와 천상의 화음을 들려주는『에스콜라니아 합창단』으로 유명하다. 라 모레네타의 손에 들려진 작은 공에 가만히 손을 대고 소원을 빌었으니 이제 그 소원이 세상에 드러날 때만 기다리자. 수도원 특유의 고요함과 경건함이 그림자처럼 따라와 여행자가 아니라 세상의 모든 고통과 상처가 치유되기를 염원하는 구도자가 된 느낌이다. 몬세라트의 품에 안긴 수도원을 홀로 느리게 걷는다. 저 멀리서 일행 한 분이 잔뜩 상기된 모습으로 총총히 내게 다가오며 서둘러 내려가자 한다. 높은 ‘솔’ 음의 목소리로 보아 꼭 봐야 할 이벤트가 있나 보다.  요지는 <어서 아래로 내려가 사진을 찍어라>였다.


천국의 계단을 내려다보는 전망대 주변이 사람들의 환호와 박수 소리소리로 왁자하다.  근사한 공연이 펼쳐진 듯  "브라보!" 소리도 들려온다. 천국의 계단에 아이들이 올라 셀카봉을 쳐들고 사진을 찍으며 한 칸 한 칸 오르고 있었다. 천국으로 가는 계단이 아니라 하데스가 지배하는 명계의 출입문을 두드리는 듯 아찔했다.  저런 철부지들이 있나 싶게 위험천만해 보인다. 

"Watch out!" 

겁에 질린 내 목소리가 들릴 리가 있나...

아이들은 포즈도 다양하게 사진을 찍으며 계단을 오르고 있다. 절벽 위에 올라앉은 작품이라 까마득한 산아래가 핸드폰 카메라에 같이 잡힐 텐데 아이들은 아랑곳없다. 계단에 올라앉은 아이들을 배경으로 여행자들도 사진을 찍는 웃지 못할 상황이 전개된다. 찍어야 해? 말아야 해?   

아이들의 몸놀림을 계속 지켜보니 작게 손을 들어 환호와 박수소리에 대한 화답을 하는 여유와 조심스러움이 배어 있다. 그제야 카메라를 들어 눈으로 가져간다. 


계단 젤 윗단에 올라 비스듬히 등을 대고 누운 저 아이의 포스가 대단하다. 지긋이 계단을 누르듯  한쪽 발을 세워 전체적인 안정감을 가져온다. 제우스로부터 부여받은 절대권력을 상징하는 에르메스의 지팡이처럼 셀카봉을 쳐든 아이의 기운이 예사롭지 않다. 믿지 못하고 알지 못할 것은 사람 마음이라 조심하라고 외치던 내 마음은 이제 저 아이와 한 프레임에 잡히고 싶다고 욕망한다.


천국의 계단을 오르는 아이들  ⓒ 푸른 모래시계

아이들이 천국의 계단에서 하나 둘 내려오자 몬세라트에도 어둠이 깃들기 시작한다. 한바탕 축제를 벌인 듯 아이들은 삼삼오오 어깨동무를 하고 우리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걸어간다. 엄지손가락을 들어 올려 최고였다고 찬사를 보낸다. 잊지못할 천국의 계단을 선물해 준 보답치곤 소박하다. 이 사진속 아이들은 <천국의 계단을 오르는 아이들> 이란 파일명으로 나의 외장메모리에 영구저장 되어있다.  

지금 몬세라트 천국의 계단에 아이들이 오르고 있다고요?

한달음에 수도원으로 뛰어가세요. 

검은 성모상의 손에 들려진 둥근 공을 쓰다듬으며 소원을 빌어주세요.

얘들아, 이제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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