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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 모래시계 Aug 10. 2021

리오넬 메시가 펑펑 울었다

캄프 누에서 68년 만에 패하고도 울지 않던 그가

열세 살 때부터 FC바르셀로나에서 먹고, 자고, 축구하던 리오넬 메시가 캄프 누에서 고별 기자회견을 하며 펑펑 울었다고 한다.

입단 테스트 당시 <새로운 마라도나>로 불렸지만 성장호르몬 결핍증에 따른 치료비가 계약의 걸림돌로 작용하여 여러 축구 명문 구단에서 영입을 망설였다니 축구팬의 입장에서는 간담이 서늘해지는 대목일 것이다. 외국(아르헨티나) 유소년 선수와 계약한 전례가 없어 차일피일 미루던 FC바르셀로나 관계자에게 메시의 아버지는 다른 팀을 알아보겠다는 최후통첩을 날린다. 신에게 선물받은 재능과 재능을 발휘하는데 치명적인 증상을 함께 가지고 있는 어린 아들의 아버지는 벼랑끝에 선 기분이었겠다. 계약의 당사자인 FCB 기술이사는 메시를 놓칠 수 없다는 긴박감에 메시의 아버지와 유명한 냅킨 계약을 맺는다. 10년 후 공개된 냅킨에는  <구단  일부 다른 의견에도 불구하고, 리오넬 메시를 라 마시아(바르셀로나 유소년 )로 데려오기로 한다. 이에 대한 책임은 모두 본인이 지겠다> 였다니 사람을 보고 쓸 줄 아는 혜안이 부럽기만하다. 

<이에 대한 책임은 모두 내가 지겠다>라고 말 한 기억이 언제적인지..  

라 마시아 시절부터 최정상급 기량을 뽐내던 메시는 나이테를 그의 몸에 하나씩 더할 때마다 태양광처럼 스스로 발전하고 빛나더니 이제 신의 영역으로 들어갔다는 세간의 평가도 나오는 걸 보니 축구라는 단어의 대체 가능한 고유명사 어디쯤에 그의 이름이 새겨지지 않을까.   

리그 역대 최다 득점, 최다 도움, 최다 출장, 최다 우승, 최다 승리 기록자인 리오넬 메시가 뼈와 피와 살을 묻을 곳이라고 여겼던 FCB와 이별하자니 통곡이 나올 법도 하다. FCB는 그의 결핍된 성장판을 채우기 완벽한 성장의 샘터였으리라. 메시의 말처럼 몇 년 후 다시 FCB의 유니폼을 입고 캄프 누를 누빌 그를 기다린다.    


                                      

축구를 잘 알지도 못하고, 즐기지도 않았지만 바르셀로나 람브라스 거리의 매표소를 지날 때마다 나도 티켓팅을 해야 할 것 같은 조바심이 들었다.

바르셀로나 한식당에서 김치찌개를 나눠 먹던 우리는 이렇게 바르셀로나를 떠날 수 없다며 의기투합했고 캄프 누로 가는 택시에 올랐다. 우리들보다 열 살쯤 어려 보이는 한식당의 아들이 어린애들 배웅하듯 택시 기사에게 캄프 누의 매표소에 무사히 이들을 데려다주어야 한다고 신신당부를 했고 기사는 흔쾌히 오케이를 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미리 입장권을 사놓기나 할걸 후회가 되었다. 람브라스 거리 매표소의 티켓은 일찍 동나버린다.         

람브라스 거리의 축구 입장권 매표소. FCB의 자양분의 원천 남녀노소 바르셀로나 시민들.

 

캄프 누가 가까워지고 있음을 택시 안에서도 금세 알 수 있었다. 바르셀로나 유니폼을 입고 캄프 누로 온 축구라면 사족을 못쓰는 순례단들이 물결처럼 움직인다. 한식당 아들이 그렇게 공손하게 두 손을 맞잡고 부탁했건만 택시 기사는 우리를 입장하는 곳에 내려주려고 한다. 티켓이 없음을 손짓, 발짓, 몸짓으로 여러 번 말하고 나서야 스페인 택시 운전수 아저씨는 왔던 길을 빙 돌아 매표소 가까운 곳에 우리를 내려주었다. 우리는 그때부터 절대 4명은 떨어지지 않겠다는 듯 서로서로 눈총을 쏘아대며 매표소에 도착했다. 눈치 반, 영어 조큼, 급한 맘에 한국말 좀 보태서 입장권을 발급받고 매시보다 더 빠른 걸음으로 걷기 시작했다. 발에 차이는 게 사람들이라 뛸 수도 없었다. 2014년 당시 FCB는 유니폼에 카타르 항공의 후원과 유니세프를 새겨넣었다.


구만 구천 삼백 오십 사명으로 채우는 캄프 누. 그들은 <캄 노우>라고 부른다.

입장권에 인쇄된 자리를 찾는 것보다 그 자리로 들어갈 수 있는 입구를 찾는 원정이 시작되었다. 넓고 넓은 바닷가에 오막살이 집 한 채 같은 우리 자리는 대체 어디로 들어간단 말이니...

중간중간 서 있는 안내원이란 안내원은 다 거치고 난 후에야 입구를 찾을 수 있었다. 시작점에서 오른쪽으로 돌면 나오는 첫 번째 입구로 가야 했는데 (나중에야 매표소 직원이 이렇게 안내를 해주었음을 기억해냈다.) 왼쪽으로 지상과 지하를 오가며 돌고 돌아왔으니 안내원을 다 만날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안내원이 가르쳐 준대로 가지 않고 안내원을 찾아 돌아다녔던 것이다. 그렇게 원정을 끝내고 드디어 경기장이 보이는 작은 문을 들어선 순간... 천지개벽. 새로운 세계로 들어오심을 환영합니다!


모든 스포츠에 잼병의 기술을 갖고 있는 나는 관람에도 잼병이어서 그 재밌다는 축구장과 야구장을 왜 돈 주고 들어가냐고 묻는 스포츠 원시인이었다. 원시인이 타임머신을 타고 천년의 세월을 타고 넘은 셈이다.

빼곡히 들어찬 사람들의 머리가 FCB를 먹이고 재우고 키우고 있다는 말은 현재진행형이다.

경기가 시작되었다.                                                                                                                                                                                                                                                                                                                                               

하프타임에 저렇게 잔디에게 생명수를 쏘아준다. 선수도 물 마시고 쉴 테니 잔디도 쉬거라~

여행자의 안전은 여행자처럼 보이지 않는 법이라며 호텔로 들여보낸 묵직한 카메라가 너무 아쉬웠다.


경기가 시작되고 응원이 시작되었다.

총출동한 M <메시> S <수아레즈> N <네이마르 주니어>.

(메시만 알겠더라, 기념으로 바르셀로나 유니폼을 사러 들어간 스포츠 매장에서 네이마르 주니어 등 이름을 보고는 이건 주니어용인가 봐. 내 축구 수준이 그랬다. )

오래전 메신저의 이름으로 소환된 그들 중 아무라도 저 바르셀로나 아닌 팀의 골망을 톡 건드려서라도

밤하늘 별처럼 운동장을 수놓은 머리들이 일시에 은하수 떼처럼 떨쳐 일어나 한 목소리로 외쳐댈 거라고

우리는 믿고 또 믿었다. 여기는 그들의 홈그라운드 아니겠는가.


짝짝 짝짝짝 짝짝짝짝 (두 팔을 앞으로 착 뻗으며) 바르샤!!

짝짝 짝짝짝 짝짝짝짝 (두 팔을 앞으로 착 뻗으며) 바르샤!!

 

등번호 10번의 매시가 종횡무진 캄프 누의 잔디구장을

공을 어르고 달래듯 몰다 골대를 향해 마치 자신이 활시위가 되어 공을 활처럼 쏘듯 온 몸의 체중을 발끝에 모아 공을 차는 모습을 보았는가!

축구도 모르고 메시를 모르더라도 그 선수가 대단한 선수인 거는 대번에 알겠더라.  

승리하리라 승리하리라 마침내 승리하리라.


보고 싶었노라,

볼이 골이 되는 순간 캄프 누의 팬들이 일제히 일어나는 모습을.

듣고 싶었노라,

그들이 내뿜는 환희와 승리의 함성 소리를.


경기는 끝났다.                                                                                                                          

2014년 11월 1일 저녁

FC 바르셀로나는 홈구장 캄프 누에서 센터 비고에게 68년 만에 패했다.

무려 68년 만에 무득점으로 패하는 현장에 꼬레아의 내가 있었다.


경기 종료를 알리는 휘슬이 울리고 나자 아주 가뿐하게 일어나서 그들은 집으로 향했다.

무리에 섞여 걸으며 담담히 자신의 갈 길을 가는 그들이 진정 축구를 즐기는 팬들이라 생각했다.

68년 만에 홈구장에서 약팀에게 졌다는데 박카스처럼 작은 병이라도 하나 소심하게 던지는 사람 하나라도 있을 법 한데...


메시의 이적을 누구보다 안타까워하고 있을 그날의 그들도 메시의 기자회견을 보며 펑펑 울었을지도 몰라.

가을철 단풍 여행이 생각나는 대형버스들


 

대문사진 E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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