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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 모래시계 Aug 18. 2021

바르셀로나 랜드마크, 빛의 숲 사그라다 파밀리아

가우디의 영혼이 짓고 있는 성 가족 성당

백 년 넘게 오로지 마음에서 우러난 헌금만으로 짓고 있는 성당이 있습니다.

우뚝 솟아 넓게 팔을 펼친 타워크레인을 사방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현재 진행형 건축의 끝판왕.

가우디 건축의 결정판. 바르셀로나의 랜드마크.

가우디 사후 100년째 되는 해인 2026년 완공을 목표로 하늘 위로 부지런히 걸어가고 있는 사그라다 파밀리아 < Basilica of the Sagrada Familia  >,  성가족 성당을 만나보겠습니다.


어린 가우디의 맥박을 뛰게 한 가우디 건축의 시원 몬세라트 잠시 살펴보세요.

https://brunch.co.kr/@windday/18


지하철역에서 내려 프로벤시아 거리를 걸어갑니다.

가우디는 자연이라는 거대한 성전을 펼쳐 빛과 그림자, 옥수수와 장미, 나비와 벌, 온갖 곤충과 새와 바람, 버섯과 도마뱀까지 모두 데려와 공간을 만들어냅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에서는 옥수수가 웅장한 탑으로 솟아오른듯합니다. 지상에서 가장 성스러운 옥수수입니다.

성당의 첨탑이 보이면 걸음을 재촉하는 대신 천천히, 느리게 걸어보세요.

백 년 전에 지어져 세월을 덧칠해 검게 변한 화강암의 빛깔과 이제 막 태어난 듯 뽀얀 우윳빛 화강암의 색이 사그리다 파밀리아의 역사를 그러데이션으로 보여줍니다. 세월의 깊이를 가늠했으면 이제 성당을 끼고 한 바퀴 크게 돌아 공간의 깊이를 헤아려보세요.


밤낮없이 자라는 사그라다 파밀리아  ⓒ 푸른 모래시계


이제 가우디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성당으로 들어가 볼게요.

사그리다 파밀리아는 가우디가 만들어 놓은 모형과 짧은 메모들과 도면 , 제자에서 제자로 전해진 가우디의 원칙대로 더디지만 차곡차곡 하늘을 향한 발걸음을 떼고 있습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3개의 파사드 (탄생, 수난, 영광)와 각 파사드의 위로 4개씩 나누어 솟을 첨탑 12개 (12사도), 12개의 첨탑 안에 세워지는 6개의 첨탑(복음서를 쓴 4성인, 예수, 성모마리아)과 이들이 만들어 내는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성가족 성당의 파사드(façade(프) , 건축물의 주된 출입구가 있는 정면부)는 3개입니다.                            

미사가 치러지는 예배당으로 들어가려면 누구나 수난의 파사드로 입장합니다.

직선으로 거칠게 마무리된 예수가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첨탑 아래 6개의 비스듬한 기둥이 아치를 만들고, 기둥 사이에 만들어진 5개의 공간이 출입구의 신성함을 선언합니다. 수비라치 (Josep Maria Subirachs   1927~2014)는 스승인 가우디가 만들어놓은 프레임안에 자신만의 취향을 한껏 풀어놓습니다.

조각에 대한 호불호가 선명하게 나뉘고, 찬사와 비난이 엇갈려 두고두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지만 마침내 스승의 맥을 이으면서도 자기만의 스타일을 완성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수난의 파사드  ⓒ 푸른 모래시계


수난의 파사드를 지나 예배당에 들어왔으니 놀란 얼굴을 하고 있을 테지요.

빛의 숲을 헤쳐나가는 기분이 들지 않나요?

초록은 믿음을,

파랑은 소망을 ,

노랑은 사랑을 싣고 내리는 빛은 오래오래 이곳을 찾아오는 이들을 축복하겠지요.

발걸음을 떼지 못하고 해피앤딩을 맞이한 주인공을 촬영하는 카메라처럼 돌고 또 돌았습니다.

빛으로 채워진 이곳의 기억으로 우리는 세상을 이롭게 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싣고 내리는 빛의 숲  ⓒ 푸른 모래시계


빛에 취해 이마를 짚고 천천히 걸어갑니다. 제단 앞 의자에 앉아보세요.

하늘로 나있는 창에서 쏟아지는 빛이 기둥을 쓰다듬고 내려와 마침내 예수의 머리 위에 드리운 칠각형의 천개까지 도달합니다.  천개 아래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는 하늘과 땅을 잇고 신과 인간을 맺어주고 있습니다. 야단스럽고 화려한 장식 없는 둥근 벽이 예수를 품에 안고 있습니다. 우리도 그 품에 안긴 듯 편안해집니다.


빛이 일으킨 기적의 예배당  ⓒ 푸른 모래시계

의자에 앉아 하염없이 천장을 올려다봅니다. 자리를 옮겨 가며 쏟아지는 빛의 소리가 어디에서 들려오는 건지 귀도 기울여보세요. 빛에서 소리가 난다고요?  네, 분명히 들었습니다. 빛에서 쨍그랑 쨍그랑 종소리를 닮은 소리가 납니다. 가우디의 영혼이 빛을 울려 들려주는 소리입니다. 소리에 온기가 가득합니다.


쨍그랑 쨍그랑 빛이 들려주는 소리  ⓒ 푸른 모래시계

서로 마주 보는 탄생과 수난의 파사드를 길게 이으면 우리 삶의 시작과 끝이 됩니다.

수난의 파사드로 들어왔으니 이제 마주 보이는 탄생의 파사드를 통해 밖으로 나갈 시간이 되었습니다.

나오셨나요? 이제 뒤를 돌아 고개를 들어보세요.

글자를 모르는 가난한 영혼들을 위해 가우디가 돌에 새겨놓은 예수 탄생 이야기를 눈으로 보며 마음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지난 세기의 궤적이 고스란히 묻어있어 자꾸만 입맛을 다시게 됩니다. 곱씹고 싶은 걸까요?


많은 조각가와 장인들의 손을 빌려 가우디가 연출한 탄생의 파사드가 수태 고지로 시작해 수난받기 전 예수의 삶을 조각으로 들려줍니다.

거대한 벽면을 꽉 채우고 있는 부조와 조각이 눈길을 잡은 뒤 놓아주지 않습니다. 고기잡이 배, 은하수, 황소 머리, 도마뱀, 나귀 등 가우디와 같은 하늘 아래 숨쉬었던 천지만물이 잔뜩 올라앉아 있습니다. 마구 배치한 듯 보여도 실물을 도르래로 들어 올려 위치와 크기를 확인한 다음 주형을 뜬 뒤 조각했다고 하니 가우디의 신앙심의 깊이를 알 것도 같습니다.

탄생의 파사드에 조각된 인물의 모델은 수위, 양치기, 석공 등 가우디의 주변에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와 다를 바 없는 보통사람들이 탄생의 파사드에서 불멸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영광의 파사드는 어떤 모습일지 아직 가늠할 수 없다고 합니다. 십계를 조각한 석판이 든 계약 상자, 노아의 방주, 나사렛의 성 가족의 집 등이 조각될 것이라고 합니다. 2026년이 되면 영광의 파사드에 길게 줄을 지어 늘어설 장엄한 기도 행렬을 볼 수 있겠지요.


안토니 가우디(Antoni Gaudi, 1852~1926)는 31살에 공사 감독직을 맡아 다시 그 품에 안길 때까지 생의 절반 이상을 성가족 성당을 짓는데만 몰두했습니다. 그가 전차 사고로 세상을 떠날 때 지니고 있던 것은 남루한 작업복 주머니에서 뒹굴던 먹다 남은 건포도와 땅콩 몇 알, 사탕 몇 개였다고 합니다.

신부도 주교도 아니면서 성당에 깃든 그의 영혼은 여전히 무덤 속에서 백 년 가까이 성가족 성당을 진두지휘하며 짓고 있습니다.



가로등 밑단에서 건져 올린 가우디 동판  ⓒ 푸른 모래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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