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n’t she lovely?
부다페스트에서 Gelato Rosa라고 써진 가게에 들어가면 젤라토로 장미꽃을 만들어 손에 쥐어준다.
원조, 진짜 원조, 진짜 진짜 원조 장미 아이스크림 가게 간판들이 나란한 거리에서 여행자들이 원조를 제대로 찾아내는 비법은 뭘까? 그저 사람들로 웅성거리는 가게로 들어가면 된다. 원조의 아우라는 누구도 흉내 내지 못하는 법. 줄을 서서 기다리다 시그너처라고 표시되어 있는 아이스크림을 주문했다.
아이스크림 장미꽃이 피었습니다.
아이스크림을 혀끝에서 조금씩 녹여 먹으며 지나가는 생각 하나.
‘집에 가서 진짜 장미를 얼려 아이스크림을 만들어보자'. 생각은 생각일 뿐.
어디선가 음악소리가 들려온다. 어라? 음악소리가 생생하다. 살아있네 살아있어.
장미꽃 한 송이의 냉기를 꿀꺽 삼키고 음악 소리가 새어져 나오는 곳으로 빠르게 걸었다.
청소년들의 무대 경험을 도시의 랜드마크 앞에서 쌓게 하다니 아주 훌륭한 기획이다.
여행자들의 얼굴에 준비되어있던 기쁨이 넘치기 시작한다. 기쁨은 날갯짓으로 연주하는 10대의 아이들에게로 옮겨 앉아 어깨를 으쓱으쓱 발장단을 탁탁탁 맞춘다.
풋풋한 아이들이 만들어내는 흥겨운 음악소리에 맞춰 노래를 불렀다. 익숙한 곡들이 연달아 연주된다.
부다페스트 이스트 반 광장에서 내가 이런 노래를 부르리라고 상상도 못 했지.
성당 쪽으로 올라가 오케스트라를 내려다보며 음악에 몸을 실었다.
스티비 원더의 노래가 솜털 보송보송한 아이들의 숨결을 타고 각양각색의 악기에서 흘러나왔다.
눈이 보이지 않는 아빠가 세상에 태어난 지 1분도 지나지 않은 첫 딸아이를 만난 기쁨과 환희를 온 우주에 타전하는 그 노래, Isn’t she lovely.
연주에 맞춰 노래를 흥얼거리다 눈에 들어온 장면에 동공이 커졌다.
가까이 가야 한다. 무거운 카메라를 꽉 쥐고 냅다 뛰었다.
나는 속으로 외치고 있었다. 어머! 이건! 찍어야 해!
잔잔한 무늬가 들어간 빨강 원피스를 입고 까만 플랫슈즈를 신은 금발의 젊은 엄마가
흰색과 파랑의 가느다란 줄무늬 원피스를 입고 온 몸으로 귀여움을 발산하는 작은 여자아이의 손을 잡고 빙글빙글 돌고 있다. 엄마와 어린 딸이 만들어내는 동그라미 안에 사랑스러움이 가득하다. 저 발목양말과 분홍색 앙징맞은 샌들을 보라! 색감과 구도가 기가 막히다. 이건 어디에 출품해도 수상감인 걸!
최대한 몸을 낮추고 뷰파인더에 눈을 갖다 대고 삐릭삐릭 초점을 맞춘다.
바닥에 엎드리다시피 한 내 옷자락을 잡고 일으켜 세우는 단호한 손길.
“엄마! 지금 이렇게 사진 찍는 거 초상권 침해예요.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되잖아요.”
뜨악하다 못해 얄밉기까지 한 딸에게 나는 어버버 말한다.
“원래 이런 데서는 다 이래...”
이런 데는 어디고 이런다는 건 다 뭔지, 궁색하다.
노래 연주가 다 끝날 때까지 딸은 내 카메라에 손을 얹고 저지했다. 나도 욕심이란 걸 알았기에 카메라를 내려놓고 연주를 끝까지 들었지만 허탈했고 미련이 남는 건 어쩔 도리가 없었다. 다시 갈 길을 재촉하는 딸의 꽁무니를 따라가다 뒤로 돌아서서 냅다 셔터를 눌렀다.
음악도 끝났고 사랑스러운 춤도 끝났다.
먼 하늘을 올려다보는 젊은 엄마와 작은 아이는 여전히 동그라미 안에 있었다.
사진이 음악을 들려준다.
Isn’t she lovely?
Isn’t she wonderful?
Isn’t she precious?
Less than one minute old.
그리고 사진이 묻는다.
일생일대의 걸작을 찍을 수도 있었는데.. 초상권 침해를 상기시키는
너. 는. 누. 구. 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