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딸은 이렇게 달랐다
이른 아침부터 부지런히 지저귀는 종달새를 닮은 엄마와
밤을 꼬박 새우는 것이 식은 죽 먹기보다 쉬운 올빼미 딸의 이야기를
2017년 6월의 잘츠부르크에서 시작합니다.
바람개비 구글 포토는 오늘도 빙글빙글 돌며 추억을 소환한다.
딸과 단 둘이 떠난 여행이었다.
싱어송라이터 공부를 하는 딸은 지리에는 잼병이어서 전주의 한옥마을을 휘휘 걸어 다니며 탄성을 쏟아내다가 불쑥 이곳이 경기도 어디쯤이냐고 묻는 식이라 모든 계획과 준비는 엄마 몫이었다. 그러나 그 딸의 엄마이니 나라고 뾰족한 대안이 될 수는 없는 터였다. 그냥 부딪혀서 깨지기로 했다. 국제미아의 두려움이 있으니 엑셀로 일정을 짜고, 구글 지도에 모든 여정을 미리 저장했다. 궁여지책으로 선택한 새미 패키지 여행사의 상품은 우리에게 맞춤이었다.
2017년 여름, 지구를 맴도는 11,500여 개의 인공위성 중 몇몇은 체코, 오스트리아, 헝가리를 차례로 유랑하는 엄마와 딸을 내려다보았을지도 모른다.
여행기간 동안 매일 아침, 엄마는 여행의 모든 채비를 갖춘 채 딸이 샤워 물줄기로 연주하는 부랴부랴 행진곡을 들어야 했고, 그날의 여행 일정을 마친 밤마다 돌아오기 무섭게 침대에 누운 엄마의 빼어난 숨소리로 작곡된 쌔근쌔근 자장가를 들을 수밖에 없는 딸이 있었다.
종달새형 인간과 올빼미형 인간으로 분류되는 인간 유형의 틈새를 채울 14시간의 Salzburg 체류기.
동화 속 마을 체스키 크롬노프를 떠나 잘츠부르크에 발을 내딛는다.
잘츠부르크에서는 바람마저도 온음표와 64분 음표 사이를 오고 갔으며, 햇살은 눈부신 으뜸화음으로 쏟아졌고, 오후의 빗줄기는 포르테에서 피아니시모로 내렸다. 여기에 맞춘 우리의 걸음은 안단테와 알레그로를 반복했다.
온통 모차르트 생가(Mozarts Geburtshaus)라는 독일어로 뒤범벅된 작은 광장 한편의 식당에서 이른 점심을 먹는다. 모차르트가 살아서 이 광경을 본다면 그의 천재적인 능력을 입증할 교향곡 두서너 개는 족히 작곡할 수 있을법한 장면이다. 흰 벽의 두 건물 사이에 자리한 노란 건물이 강렬하다. 고흐가 해바라기를 그리기 전 이곳에 다녀가지 않았을까. 어림도 없는 생각을 잠시 해본다. 모차르트를 그리워하는 각국의 자발적 대표들이 임무교대를 하듯 매일매일 이 곳에서 구름 떼로 그에 대한 숭배를 인증한다. 말 그대로 사람들이 노란 건물 앞에 바글바글하다.
점심이 제대로 먹힐 리가 없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내가 구경하는 건지, 파라솔 아래 옹기종기 모인 우리들을 그들이 구경하는 건지 경계가 모호하다. 수학여행 온 푸른 눈의 아이들이 장난치는 걸 물끄러미 보다 한 아이와 눈이 마주친다. 가볍게 한 손으로 마주친 눈의 어색함을 털어낸다. Hi, there~!
점심은 너무나 짰다. 입안의 짠맛을 헹구는 물로 배를 채운다. 느끼한 맛 또한 대단해서 존재감을 잃지 않는다. 이 불협화음의 음식 이름은 꽤나 그럴듯했는데 기억에 없다. 후식조차 얄궂음으로 구색을 갖췄다. 잘츠부르크 사람들은 시원하게 먹으려고 얼린 아이스크림을 왜 다시 데워 녹여먹는지 이유를 알고 싶다. 따뜻한 아이스크림을 만들어낸 거창한 이유가 백가지가 넘는다고 해도 용서 못할 맛이다.
“모차르트도 이런 아이스크림을 먹어 봤을까?”
엄마가 묻자, 딸이 싱긋 웃는다. 대답할 가치가 없나 보다.
“인류 최초의 아이스크림은 네로 황제가 만년설에 과일을 섞어 먹었다는 거 아니냐”
자기가 묻고 대답하는데도 질문과 답이 서로 등을 돌린다.
레지덴츠 광장을 한 바퀴 돌고 호헨 잘츠부르크 성으로 오른다. 열차가 우리를 대신해 등산한다. 묀히스베르크 산 정상에 지어진 성의 발코니 광장에서 내려다보는 잘츠부르크의 초여름 초록과 도나우강의 아름다운 곡선을 채우는 물색의 하모니를 보는 것만으로도 오늘 하루 여행자의 몫은 다한 것 같다.
성벽에 스파이더맨처럼 딱 붙어서 현지에서 만난 가이드가 가리키는 생생한 '사운드 오브 뮤직'의 촬영 장소를 눈으로 좇는다.
아리따운 첫 딸 리즈에게 갔던 맘이 이제는 사각거리는 하늘색 드레스를 입고 날아갈 듯 트랩 대령과 왈츠를 추는 마리아로 옮겨간다. 세월 따라 마음도 같이 흘러왔으니 다행이다. 엄마는 살랑살랑 바람에 온갖 생각을 태운 날개 짓으로 여념 없는데 딸의 얼굴에선 얼음공주의 냉기가 뿜어져 나온다. 동등한 여행자의 위치에서 지금은 모른 척한다.
성에서 내려와 미라벨 궁전으로 가는 길은 사뿐사뿐 발걸음에 저절로 콧노래가 곁들여진다. 미라벨 궁전의 정원은 도레미송을 부르던 배경의 하나로 유명하다. 분수대와 계단에서는 영화의 한 장면처럼 자세를 취하고 사진을 찍느라 사람들이 다시 한번 바글바글 장면을 연출한다. 저마다의 색으로 피어난 꽃들이 찬란히 빛나고 있다.
꽃들 사이를 누비며 사진을 찍는데 뷰파인더 속 딸의 얼굴은 일그러져 보기가 싫다. 계속 외면한다. 지금의 감정도 오롯한 너만의 것이니 존중해야지. 존중한 지 10분도 지나지 않아 한숨을 크게 한 번 쉰 쉬고는 열 살짜리 애보다 더 치사한 대사를 읊고 있다.
“너 계속 이런 식으로 여행할 거면 지금 바로 비행기 표 끊어서 집에 갈 거니까 맘대로 해!”
말을 내뱉음과 동시에 감정이 더 활활 타올라 나도 내가 무슨 말을 하는 거지? 라며 눈을 크게 뜨고 입을 쥐어뜯고 싶은 대사가 팝콘처럼 터져 나온다. 이 먼 곳까지 와서 30년 가까이 세상을 먼저 살아본 어른의 말이 참 볼품없다.
딸의 눈에서 단어 그대로 닭똥 같은 눈물이 뚝뚝 흐른다. 잘못했단다.
렌즈 낀 눈이 아프고, 다리도 아파 걷기 싫은데 자꾸만 여기저기 가리지 않고 가보자(살아 다시 이곳에 올까?라는 처절함 때문이다)하고,
사진도 찍고 싶지 않은데 여기에 이렇게 서라, 저기에 저렇게 서라(너의 가장 눈부신 시절을 고운 배경으로 기록하고 싶어서다). 너무 싫단다.
그제야 딸의 마음이 이해된다. 손으로 그 눈물을 닦아주는데 내 눈에서도 눈물이 흐른다. 말간 눈물 앞에서‘엄마는 이런 맘인데 너는 그런 맘이었구나’ 구구절절 말하지 않아도 미라벨 정원에 맴돌고 있는 꽃향기가 대신 전해준다. 손을 잡고 걸어가 젖은 나무벤치 위에 나란히 앉는다. 한 우산 아래 나란히 앉으니 다정한 엄마와 딸로 금세 되돌아온다. 좀 더 느리게 여행하자며 서로 어깨를 감싸 안는데 갑자기 쨍! 하고 햇살이 비친다. 비도 그쳤다. 우리의 화해가 만들어낸 기적을 사람들은 알까.
딸이 너무 신기하다며 셀카봉을 높이 들고 사진을 찍자고 한다. 아직 울음기가 가시지 않아 코끝이 발그레한 딸과 붉어진 눈가를 선글라스로 가린 엄마의 색이 다른 두 개의 느낌표. 다름은 불편하고 성가신 것이 아니라 나누며 풍성해지는 것이라는 걸 다시 한번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