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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 모래시계 Aug 09. 2021

잘츠부르크는 모차르트지!

man na su bang gayo 라고 그가 말했다

게트라이데 거리의 맥도널드 햄버거 간판은 전 세계 맥도널드 간판 중 가장 아름답다. 세계 어디든 자리를 비집고 들어앉는 이 가게는 게트라이데 거리에 입점하기 위해 이 곳 상인들 맘에 쏙 드는 간판을 새롭게 만들어야 했다.  맥도널드 햄버거 가게라는 걸 알릴까 말까 망설이는 듯한 크기의 골든 아치 m자가 중앙에 달린 원형을 새 한 마리가 물고 있다. 높은 음자리표처럼 매혹적으로 휘어져 이곳이 음악의 도시라고 365일 외치고 있는 사자의 꼬리가 일품이다.

게트라이데 거리에 자리잡기 위해 애쓴 맥도널드 간판 . 높은음자리표를 닮은 사자의 꼬리가 일품이다.

1년 내도록 크리스마스 장식품을 파는 가게에 들어간다.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다양한 모양의 유리공예품들에 그려진 그림들은 모두 장인들이 하나하나 손수 그린 작품이다. 별 모양 오너먼트 앞에서 딸이 꼼짝을 하지 않는다. 미라벨 궁전에서 흘린 눈물을 위로하고픈 마음에 무조건 사야 한다고 딸의 옆구리를 찔렀다. 금세 후회했다. 비싸도 너무 비쌌다. 이중 삼중으로 포장을 해줬는데도 불면 날아갈 새라 조심스럽게 자기 배낭에 챙겨 넣는다. 올해 크리스마스를 6월에 준비했다. 이제 해마다 성탄이 다가오면 6월의 잘츠부르크가 트리에서 대롱거릴 거야. 추억은 이렇게 마련하는 것이다.

게트라이데 거리의 크리스마스 오너먼트. 한 땀 한 땀 수놓듯 그려 가격이 대단하다

여행 출발 전 음악 공부를 하는 딸이 그곳에서 많은 영감을 받길 원한다는 짧은 메모와 함께 모차르트 디너 콘서트를 예약했었다. 늦은 밤에 끝나는 공연을 보고 택시로 1시간 넘게 달려 볼프강 호숫가까지 가야 하는 여정.

모차르트 디너 콘서트가 열리는 성 페터 주교좌성당의 나무문을 지날 때 설렘과 떨림이 뒤섞인 느낌으로 부푼 몸이 풍선처럼 느껴져 발자국 소리도 자박자박에서 두둥실로 변했다.  

약서를 보여주고 들어간 홀에서 우리를 맞아주는 매니저는 영화의 한 장면에서 성큼 걸어 나온 듯 근사하다.

자리를 앞쪽으로 안내하며 “아! 이 숙녀분이 음악을 공부하는 당신의 딸이군요”라고 한다. 이토록 놀라운 기억력이라니.

콘서트 마지막에 딸이 노래할 수 있는 무대를 마련해 주겠노라고 한다.

고마움에 두 손을 맞잡고 딸과 기쁘게 눈을 맞추려고 고개를 돌렸을 때 기겁한 딸의 눈이 먼저 내게 말을 한다.‘고맙지만 사양하겠어요’.

세계 각국에서 온 여행객들 앞에서 노래를 할 수 있는 금쪽같은 기회를 발로 차 버린 딸을 사이에 두고 매니저와 나는 한숨을 쉬며 서로 sorry(유감) sorry(미안함)라고 주고받았다. ‘그럼 저라도 해 볼까요?’라고 덧붙이고 싶었지만 꿀꺽 삼켜야 했다.

우리가 안내받은 테이블에는 베를린에서 온 노부부, 미국 델라웨어에서 온 중년부부와 또 한 쌍의 미국인 부부가 함께 했다. 아마도 좌석배치도 여러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어울릴 수 있도록 배려하는 듯 보였다.

 디너 콘서트는 모차르트의 오페라 돈 조바니, 피가로의 결혼, 마술피리 3부로 이루어져 있고 중간 쉬는 시간마다 음식이 나온다.  

델라웨어에서 온 부인은 피아노를 가르친단다. 한국 학생도 여러 명 가르쳤는데 그들의 성실함은 세계 최고란다. 피아노 교수의 남편은 자신이 근무하는 회사에 한국인도 몇 명 함께 일하는데 아주 영리하다고 했다. 갑자기 내가 아울러야 할 물리적인 거리가 너무 넓어져 약간의 현기증을 느꼈다. 여행은 이렇게 나를 더 넓고 낯선 곳에 세워보는 경험이다. 그는 내가 평생 본 사람 중 가장 큰 체구의 소유자였다. 곡이 하나 끝날 때마다 외치는 “브라보” 소리는 기차 화통을 주기적으로 삶아 먹는 사람의 그것이었다. 깜짝깜짝 놀라며 같이 브라보를 외쳤다.

베를린에서 온 노부부는 즐겨 이곳을 찾는다고 했다. 아주 조용하고 검소한 사람들로 보였다.

다른 한 쌍의 부부는 자리가 멀어 의례적인 인사와 강남스타일 이야기를 조금 나눈 정도였다. 서로서로 남은 여행과 앞으로의 날들에 행운이 가득하기를 바라는 축복을 잊지 않고 나누었다. 다시는 못 볼 인연이지만 머나먼 곳 어느 한 공간, 그것도 한 테이블에 앉아있다는 건 소중하고 귀한 인연임에 분명하다.

 서빙 직원이 어깨를 살짝 건드린다. 매니저가 성악가들과 대기실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사진을 찍을 시간을 주라고 했단다. 음악을 사랑하는 한 명 한 명을 모두 모차르트처럼 소중히 여겨주는 잘츠부르크. 음악 이야기를 잠시 나누고, 언젠가 유명해진 서로의 모습을 보고 싶다는 행운도 주고받았다. 파파게노와 파파게나로 분한 그들과 찍은 사진 속 우리는 조금 긴장했지만 환하게 웃고 있다.


모차르트 디너 콘서트

공연장 분위기가 점점 무르익고 있다. 아쉽지만 우리는 떠날 채비를 해야 한다. 예약한 택시는 올 생각이 없는 걸까. 자동응답기 소리만 요란하다.  호텔에 도착하려면  1시간 30분 정도를 차로 가야 한다. 결국 음악회의 꼬리를 가차 없이 잘라내고 1층으로 내려와 매니저에게 자초지종을 이야기하니 택시를 불러준단다. 조금 있으니 콜택시 기사가 성큼 들어오는데, 그와 눈을 맞추려면 한참을 올려다봐야 했다. 목 부러지기 일초 전에 그의 눈과 마주쳤다. 눈빛이 아이를 닮았다. 다행이다.

택시가 출발하자 갑자기 서툰 한국말이 들려온다. "man na su bang gayo". 만나서 반갑다는 말에 손이라도 덥석 잡고 강강수월래를 하고 싶었다. 팽팽한 어색함이 그 한마디로 무장 해제되었다. 택시로 잘츠부르크에서 볼프강 호수로 가는 동안 나누었던 이야기는 지구별 사람들의 지난 이야기와 앞으로의 이야기로 어우러진 대하소설이었다. 세대와 대륙의 경계가 허물어진 사이사이로 흐르는 강물 같은 이야기 속에서 희망은 새싹처럼 싹트고 꿈은 꽃처럼 피어나고 있었다.

택시기사 유섭은 한국의 숙녀분들이 너무나 사랑스럽고 아름답다고 했다. “당신의 딸도 참 아름답다”며 건네는 상투적인 말도 얼마나 진실되게 들리는지는 겪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 유섭의 말에 따르면 ‘참 아름다운’ 딸에게‘다가온 기회를 꼭 잡아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선택과 책임은 딸의 몫이니 눈 감고 입 다물기로 한다.

 잘츠부르크의 밤은 볼프강 호수까지 드리워져 오로지 세 사람 만이 길 위에 깨어있는 것 같았다. 6월의 달콤한 밤의 열기가 열어놓은 차창으로 쉼 없이 들락거린다. 할슈타트를 지나고 있다는 유섭의 이야기를 주워 담고 있는데 딸이 가만히 나를 건드리더니 “하늘 좀 보세요”라고 속삭인다. 별 기대 없이 고개를 올려 하늘을 본 순간, 숨은 막히고 입은 저절로 열려 우와라는 탄성이 교향곡처럼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대지를 품은 둥근 반 원의 하늘에 촘촘히 박힌 별들이 눈부시다. 단언컨대, 그 순간의 별빛은 태양보다 찬란했다. 고도로 숙련된 장인에 의해 정교하게 다듬어진 크리스털이 둥글게 펼쳐진 까만 융단에 끝도 없이 매달려있다. 듬뿍 받은 두터운 빛을 온 정성을 다해 시공을 초월한 세상으로 되돌려주고 있다. 고작 이 수준의 비유밖에 생각해 낼 수 없는 내 언어의 한계가 원통하다.

동유럽여행 최대의 호사가 이날 밤 택시 안에서 이루어졌다. 엄마는 오른쪽 창을 올려다보며, 딸은 왼쪽 창으로 둥근 하늘을 바라보며 서로의 손을 꼭 잡는다. 그 순간 온몸을 가득 채운 건 막연한 은혜로움이다. 이토록 황홀하고도 뭉클한 느낌을 선사해 준 모든 우연과 필연에 감사하다.

예약택시 기사를 위해 준비했던 한글 무늬 손수건과 홍삼캔디를 유섭에게 건넸다. 진실로 고맙다는 말에 담긴 그 마음이 전해져 따뜻했다. 새벽 언저리, 인적 없는 호텔의 로비로 무사히 들어가는 걸 보고서야 택시는 방향을 돌려 호텔을 빠져나갔다. 호숫가를 사랑하는 한국의 여인들이 살고 있는 KOREA에 반드시 가겠노라는 그의 약속이 꼭 실현되어 서툴게 인사하던 그와 한국어 인사를 한 번 더 나누고 싶다. 만나서 반가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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