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란바토르 나담 축제의 기수처럼 테렐지에서 말을탈 수는없잖아요?
코로나 시국이라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을 거슬러 다시 그곳으로 가는 메모리 칩 여행.
2009년 7월 11일 몽골 나담 축제 ( Naadam Festival) 첫날.
동터오는 초원 사진을 찍으러 밤이 끝나고 새벽이 시작되는 무렵에 길을 나선 기억이 선명하다.
추울 거라 예상을 하고 잔뜩 껴입었지만 대륙의 찬 기운을 막을 수가 없다. 추워도 너무 춥다.
해는 떠오를 기미가 없고, 말할 때마다 입에서 뿜어져 나오는 입김은 추위를 더 실감케 한다. 한 시간가량 산꼭대기(말이 그렇다는 거다. 세 살 박이도 올라갈 수 있는 언덕이다)에서 서성거리다 셔터도 몇 번 누르지 못하고 철수했다.
나담축제는 울란바토르에서 매년 몽골 혁명기념일인 7월 11일부터 13일까지 열린다.
개막식이 열리는 경기장으로 가는 길.
사람들이 끊임없이 무리 지어 오고 간다.
내가 본 울란바토르는 시간을 따라 흐르는 역사가 아니라 여러 모습의 사회상들이 동시대에 한 공간에서 발현되는 곳이었다.
하나, 몽골의 토지는 국가 소유라 그 토지를 빌려 사람들은 집을 짓고 산다.
둘, 우리가 묵던 아파트 마당에는 아침마다 염소를 태운 작은 트럭이 자리를 잡고 주문하면 바로 젖을 짜 주었다.
셋, 중국으로부터의 해방을 쟁취한 수흐바타르를 기념한 광장은 화려했고 휘황찬란했으며 세계 각지에서 온 사람들로 북적였다.
축제의 개막식에 대통령이 참석했단다. 몽골의 대통령이 축제의 시작을 외치는 목소리를 스피커를 통해 들으며 함께 간 분들과 함께 눈을 맞추며 어머어머어머 물개 박수로 호들갑을 떨었다. 끊어지기 직전의 바이올린 E현을 닮았다.
개막식이 끝나고 서커스 공연장을 찾았다.
축제기간이라 공연의 양과 질 모두를 즐길 수 있었다.
나담축제 개막식 행사 때의 마상쇼를 했던 그 공연단이 이곳에서 공연한단다.
곰곰 생각해보니 아마도 2009년의 행운을 몽땅 몽골에 쏟아부었나 보다.
예약을 한 현지 가이드도 놀라는 눈치였으니까.
서커스 공연 6장
그리고 이제 몽골 여행의 진수 테렐지로 발걸음을 돌린다.
몽골인들은 눈이 좋을 수밖에 없겠다. 초원과 하늘이 시원하게 펼쳐져있으니 눈에 걸릴 게 없다.
테렐지에 도착하자마자 승마가 기다리고 있었다.
다음날 아침에 만날 테렐지는 사랑스럽고 아기자기하다가 급격히 장쾌해지기도 한 오묘한 자연이었다.
(2편을 써야 한다.)
제주도에서 조랑말 타 본 게 승마의 전부였던 터라 작고 하얀 말을 골랐는데
말 주인이 너는 어른인데 이렇게 작은 말 타면 안 된다고 하더라...
얼굴의 표정과 몸동작은 어디에서든 동시통역 가능하다. 하얀 말에 집착하는 (백마 탄 왕자를 만날 수 없으니 내가 백마를 타는 거다!) 내가 우스웠는지 자기들끼리 농담 비슷하게 몇 마디 주고받는다. 어쨌든 나는 백마를 배정받았다.
말 탄 경험이 없는 사람은 손을 들라는 가이드의 말에 번쩍 손을 들었다. 어디든 평지보다 높은 곳에 올라가라고 하면 다리에 전기가 통한 듯 저리다.
말에 올라탄 초보 승마자 3명 담당은 몽골 소녀 1명. 17살이라고 한다. 한국말을 제법 한다.
계속 말과 따로 노는 내게 "언니~ 언니~ 고거 시 아니고요~~" 라며 가르친다.
맘이 급하면 알 수 없는 몽골말이 튀어나와 나는 한국말로 "뭐라고요? 뭐라고요?" 했다.
우리가 탄 말의 고삐는 소녀의 손에 단단히 쥐어져 있다. 왼쪽으로 가고 싶으면 오른쪽 허벅지를 이용해 말을 차라는데 내 허벅지 안쪽 근육은 꼼짝을 하지 않는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겨우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말을 움직일 수 있었다. 논인지 습지인지 분간이 안되는 작은 연습장을 세 바퀴 돌고 이제 저 푸른 초원에서 본격적으로 말을 탄다. 초원으로 자리를 옮기니 벌써 남자분들은 여러 바퀴 돌아 얼굴에 자긍심이 대단하다. 승마가 이렇게 재미있는 줄 몰랐다나 어쨌다나.
새초롬해진 초보 3명은 침을 꼴깍 삼킨다. 겁이 많은 나는 손끝이 파르르 떨린다.
‘그만 탄다고 할까?’ 망설이는 걸 들켰다. 말 주인아저씨가 내게 가까이 오더니 어깨를 으쓱해 보인다.
'탈래? 말래?'라고 알아듣는다.
자존심에 무턱대고 빳빳이 든 고개를 한 번 끄덕임과 동시에 내 백마의 고삐를 틀어 쥔 말 주인아저씨가 힘차게 앞으로 나아가며 이랴이랴 우렁차게 외친다. 몽골말로 이랴이랴를 뭐라고 하더라.. 여하튼 그 말을 듣는 나조차도 마구 뛰어야 할 것 같은 힘찬 단어의 연속이었다.
논바닥에서 탄 건 걸음마였다.
겨우 걸음마를 뗀 나와 하얀 말은 우사인 볼트의 팔과 다리가 되어 혼연일체로 뛴다.
지구가 흔들린다.
옆에서 지켜본 분들의 입에서 진정한 승마였다며 치켜세워준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멋있었다고. 아쉽게도 그 영화는 내 몸만 기억하는 한바탕 질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