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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 모래시계 Sep 05. 2021

에펠탑이 옷을 갈아입을 때

파리의 밤은 찬란하다

말로 하지 않아도 들리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심지어 보여주기까지 합니다.

에펠탑이 132년째 보여주는 < 이곳이 파리입니다 >라고 속삭이는 말을 들으셨나요?

초콜릿을 입힌 마들렌 하나를 통째로 입에 넣고 쓰디쓴 에스프레소  잔을 한 번에 들이켰습니다. 종종걸음으로 사요 궁을 향하던 그날은 비가 안개처럼 뿌렸습니다. 비에 젖은 파리를 에스프레소와 함께 꿀꺽 삼켰습니다.


구스타프 에펠 (Gustave Eiffel 1832~1923)이 설계한 에펠탑은 만국박람회 개최 기념 설계 공모전에서 만장일치로 채택됩니다. 영국이 세계 최초의 만국박람회(1851)를 열어 수정궁을 선보이며 큰 성공을 거두자 파리도 이에 뒤질세라 프랑스혁명 100주년(1889)을 기념하여 대대적인 박람회를 개최합니다. 만국박람회는 19세기 건축산업을 선도하는 축제의 장이자, 경쟁의 장이었지요. 전시에 그치지 않고 구매계약까지 성사되도록 참가국들은 공을 들였습니다.


길게 흐르는 강 위에 에펠탑을 가로로 눕히면 바로 강을 건너는 다리로 쓸 수 있을듯합니다. 에펠은 철로와 다리를 놓는데 일가견이 있는 최고의 토목기술자였습니다. 그는 건축 역사에도 관심이 많아 로마시대에서 아치형 건축 모티브를 가져옵니다. 강기슭 양쪽에 철물로 만든 아치를 세운 뒤 그 위로 다리를 놓는 것은 그가 즐겨 사용하는 구조였습니다. 에펠은 아치 구조를 수직으로 세워 에펠탑을 설계합니다. 기단, 몸통, 탑의 삼단으로 이루어진 에펠탑은 내부를 촘촘한 거미집 구조로 엮어 바람의 압력을 거뜬히 받아냅니다. 첫 선을 보일 당시 에펠탑은 세계 최고의 건축 높이 310m를 자랑하며 프랑스의 자존심을 한껏 드높였습니다.   


사요 궁에서 바라본 에펠탑. Photo by 푸른 모래시계

 

설계 공모 당시 에펠탑은 20년 후에 해체된다는 조건이 있었습니다. 시한부 운명이었지요. 7,300t의 무게인 철골기둥들을 씨실과 날실로 엮을 리벳(버섯모양의 굵은 못)이 250만 개였답니다. 우아한 파리의 전경을 찢고 시야를 훅 치고 들어오는 에펠탑에 '철골 덩어리', '파리의 수치', '철사다리로 만든 깡마른 피라미드'라는 멸칭들이 쏟아졌습니다. 모파상, 에밀 졸라, 뒤마, 작곡가 구노 등 당대의 내로라하는 예술인과 지식인들의 침을 튀기는 비난의 목소리는 에펠탑보다 높이 떠돌았습니다. 날것의 뼈대만으로 지어진 에펠탑을 예술인들은 용납할 수 없었나 봅니다. 파리 여행 가이드들이 즐겨 들려주는 에펠탑 이야기의 주인공은 모파상입니다. 에펠탑을 지독히도 보기 싫어 한 그는 에펠탑이 눈에 띄지 않는 유일한 곳인 에펠탑 내의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을 수밖에 없었다는 허허로운 이야기지요. 에펠탑 2층에 80일간의 세계일주를 쓴 쥘 베른의 이름을 딴 레스토랑 구석진 테이블 , 그 자리일까요?


세월은 흘러 에펠탑을 해체하는 절차에 들어가야 하는 시기가 돌아왔습니다. 마침 무선 전신 전화가 발명되어 접지 안테나가 필요했는데 에펠탑이 안테나 역할을 하게 되지요. 에펠탑은 전망과 실용의 두 역할을 능숙히 수행하며 불멸의 길에 들어섭니다. 물론 막대한 해체 비용과 파리 시민들의 거센 해체 반발도 에펠탑의 수명을 연장시키는데 한몫했습니다. 파리 시내 어디에서나 보인다는 에펠탑은 20년 동안 파리지앵들의 눈에 익숙해졌고 점점 사랑스러워졌나 봅니다. 파리 시민들의 안목은 예나 지금이나 탁월합니다.


불멸의 에펠탑도 폭파 위기를 맞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노르망디 상륙작전(1944)으로 독일군이 점령한 파리에 연합군이 진격해옵니다. (형용사마저 아까운) 히틀러가 파리에 주둔해있는 독일군 사령관에게 명령합니다. 에펠탑을 포함한 루브르 박물관, 노트르담 성당, 콩코르드 광장 등 파리의 주요 건축물들을 폭파하고 시내에 불을 지르라고 전화기에 대고  쇳소리를 질러댑니다. 파리의 레지스탕스들이 이 소식을 듣고 숨 막히는 사투를 벌이지요. 힘으로 빼앗고 무너뜨리려는 자와 목숨을 걸고 뺏기지 않고 지키려는 사람들 간의 팽팽한 투쟁은 역사가 되고 삶으로 이어집니다. 후퇴 할바에야 잿더미 파리로 남겨놓고야 말겠다고 약이 오른 히틀러는 아홉 번이나 사령관에게 전화를 걸어 절규하듯 묻습니다. "파리는 불타고 있는가?"

르네 클레망 감독은 위급하고 절박했던 이 상황을 영화로 만듭니다. 히틀러가 했다는 이 말보다 더 좋은 제목이 없었겠지요. 파리는 불타고 있는가? (1966)


당시 사령관이던 콜티츠는 '나는 히틀러의 배신자가 될지언정 파리를 불바다로 만들어 인류의 죄인이 될 수 없다'며 명령을 거부하고 레지스탕스에게 항복합니다. 만약 독일 사령관이 히틀러의 명령을 따랐다면 파리가 지금 어떤 모습일지 모골이 송연해집니다. 전범 재판으로 수감된 지 2년 만에 콜티츠는 온전한 파리를 넘겨준 공로를 인정받아 석방됩니다. 파리시는 그에게 감사장과 명예시민증을 수여하지요. 파리가 아름다운 이유 중 하나는 인류의 소중한 가치와 유산을 지키려는 사령관의 명령 불복종으로 되살아난 숨결을 기억하는 파리 사람들이 사는 도시이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의 지혜와 용기로 폐허의 위기를 넘긴 파리는 위대하고 웅장한 인류의 자산목록에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존재감을 드러냈습니다.


1999년 12월 31일 파리의 새로운 천년을 맞이하는 기념식이 에펠탑에서 열립니다. 탑 꼭대기에 탐조등이 설치되고 2만 개의 전구 알맹이가 에펠탑을 휘감습니다. 밤이 찾아오면 에펠탑은 별빛이 흐르는 은하수가 되어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과 사랑을 이야기합니다.

 

특별한 날 에펠탑은 옷을 갈아입어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킵니다. 세계 각국과의 오랜 친교를 축하할 때면 그 나라의 상징색으로 에펠탑을 치장하지요. 2015년 9월에는 한국과 프랑스의 수교 130주년을 기념하며 파리의 에펠탑이 태극의 색으로 빛나기도 했습니다. 에펠탑은 가장 우아하고 화려한 외교관이기도 합니다.


프랑스 국기인 삼색기로 옷을 갈아입을 때면 그날의 의미를 되새겨야 합니다. 자유의 파랑, 평등의 흰색, 박애의 붉은색인 삼색기를 몸에 두른 에펠탑을 마주하면 파리지앵에게 물어보세요. 오늘이 기쁜 날인지, 아니면 슬픈 일이 일어났는지.


어떤 빛으로도 슬픔과 안타까움을 표현할 길이 없을 때 에펠탑은 깊은 어둠 속으로 잠깁니다.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참담한 사건들을 위로하고 공감하는 어두운 에펠탑을 보며 우리도 두 손 모아 간절한 마음을 보탭니다.


에펠탑이 옷을 갈아입을 때, 파리의 밤은 찬란하다. 출처 트위터


파리를 남북으로 길게 가르는 센 강을 유람하는 바토 무슈에 오릅니다.

바람은 부드럽고 공기는 따뜻합니다. 우리를 따라오는 에펠탑의 별들이 오늘은 무사했다며 다투어 이야기합니다. 기쁜 날, 찰랑거리는 와인 잔을 에펠탑의 별들에게 부딪힙니다. "Here's looking at you"

아! 카사블랑카의 이 명대사는 우리나라 말로 할 때 설렘이 가득해진다는 걸 잊었습니다.

다시 한번 챙! " 그대의 눈동자에 건배...." 길게 여운을 남겨봅니다.


에펠탑을 타고 흐르는 불빛이 하루도 빠짐없이 황홀하게 빛나기를 부디 소원합니다.


에펠탑에서 내려다본 파리의 밤. 길이 생명을 나르는 혈관처럼 보이는 착각.  Photo by 푸른 모래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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