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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 모래시계 Jun 21. 2021

부디 묻지 마세요

세계 3대 야경 중 최고는 어디인가요?

누구에게나 자신만이 손꼽는 베스트 목록들이 있다.     

나의 다시 가고픈 여행지 베스트

나의 매일 보고픈 영화 베스트

나의 잠들기 전 읽고픈 책 베스트

...

하다못해 나의 못생긴 발가락 베스트까지..(이건 베스트가 아닐 수도 있겠다)     

낮은 태양의 시간, 밤은 인간의 시간.

모든 여행지의 낮과 밤을 켜켜이 쌓아 가끔 크레이프 케이크처럼 크게 한 입 잘라먹고 싶다.

오늘은 그중에서 밤이 있어야만 빛나는 기억의 실타래를 가늘게 뽑아낸다. 해리 포터 영화의 한 장면처럼.     


2007년 11월 6일 화요일 파리의 날씨는 흐림이었다

해가 진 뒤 파리의 건물마다 따뜻하게 켜지는 노랑 불빛은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을 부채질한다.

급기야 후드득 흐르는 눈물을 소매로 훔치는 나를 차창에서 마주했다.

알지 못하고 믿지 못할 것은 사람 마음이라 떠나면 돌아가고 싶고 돌아가면 다시 떠나고파 몸부림친다.

함께 있을 때는 내 맘대로 휘젓다가 떠나오니 짠하고 그리운 그대들 이름, 가족.     


(버스에서) 내리셔야죠! 에펠탑인데!

(어서어서) 오르셔야죠! 에펠탑인데!     


책에서 혹은 영상으로 마주한 작은 이미지의 에펠탑은 에펠탑이 아니었다.

고개를 뒤로 있는 힘껏 젖혀 한참을 올려다보는 그것이 바로 에펠탑이다.

계절마다 높이가 변한다는 이 탑의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파리.

에펠탑에서 내려다본 파리의 밤. 길이 생명을 나르는 혈관처럼 보이는 착각. ⓒ BLUE HOURGLASS


에펠탑 전망의 최적지 사이요 궁이 스스로 빛나고 있다.

그래서 에펠탑이 없는 파리의 밤.      

카메라를 떨어뜨리지 말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넥 스트랩을 목에 걸고 힘을 준 목을 앞으로 내밀고 있어 바다거북이 된 기분이다.     

가릴 건 다 가려주고 보여주고픈 것만 보여주는 듯 환한 파리의 밤은 매직타임이다.

저마다의 이야기들로 채워가는 그날의 바람, 습도, 온도는 기억 속에 영구불변으로 각인된다.        

  

2017년 6월 24일 토요일 밤의 프라하     

프라하의 밤은 푸르다.

카를교 위에서 프라하성을 살짝 비끼듯 고래를 돌렸다.

몰다우 강물에 비친 불빛이 금박 가루를 흩뿌린 듯하다.

너울거리는 물결 따라 마음도 흔들린다.

푸른 프라하의 밤 ⓒ BLUE HOURGLASS

오랜만에 딸의 머리를 땋았는데 제법 잘 되었다. 흡족하다.     

아름답고 황홀한 밤에

카를교 위에서

프라하성을 마주한 딸의 모습을 훔쳐본다.

누가 뭐라든 나는 너의 견고한 성이 될 것이니

너는 그 안에서 맘껏 뛰고 날갯짓 하기를..

지금 내 마음은 신파가 따로 없다.

셔터 소리에 놀란 딸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노래를 부른다.

“제발, 몰래 찍지 마세요. 부디, 몰래 찍지 마세요”     


머리를 땋아 내린 옆모습이 프라하의 밤과 제법 어울린다 ⓒ BLUE HOURGLASS


2017년 6월 30일 금요일 밤의 부다페스트

몰다우강 위에서 바라본 부다궁. 이제 우리에게는 슬픈 야경이 되어버렸다. ⓒ BLUE HOURGLASS

오로지 인간이 밝힌 불빛으로만 보이는 밤의 세상이 얼마나 신기루인지 우리는 안다.

정전만 되어버려도 암흑으로 변해버릴 지구별 야경 베스트 3.

그러니 부디 묻지 마세요

세계 3대 야경 중 최고가 어디냐고.


덧붙여,

마냥 설레고 부푼 기억 속 그 장소가 누군가의 슬픔과 아픔이 되어버리는 순간 같이 흑백으로 변해버린다.

우리는 나의 발자국이 찍혔던 모든 곳이 온전히 다른 이들에게도 아름답게 기억되기를 두 손 모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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