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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 모래시계 Jun 22. 2021

바르셀로나에서 소매치기와 동행하는 법

MWC  참관 후 보케리아 시장에서 국제 소매치기단에 둘러싸이다

MWC(Mobile World Congress)는 1987년 최초 개최 후 매년 2월 마지막 주 또는 3월 첫 주에

스페인 바르셀로나 Fira Gran Via 전시장에서 열린다.

2019년 MWC는 2.25.(월) ~ 2.28.(목) 나흘간 개최되었다.

지하철역에서 가까운 작은 아파트를 하나 빌려 매일 지하철을 오가며 참관했다.

드넓은 전시장을 에르메스 마냥 신발에 날개를 단 듯 누비고 다녔다.   

산뜻한 우리나라 SK 텔레콤 부스 ⓒ BLUE HOURGLASS


뮤지션이 홍보하는 영국 보더폰 부스 ⓒ BLUE HOURGLASS
우주공간 같은 중국의 중싱통신 부스 ⓒ BLUE HOURGLASS
MWC 마지막 날 LG 부스. 옆에서 같이 환호했다. 오~ 필승 코리아~! ⓒ BLUE HOURGLASS

      

그런데,

그런데,

이역 저역을 오가며 지하철 안에서 우리처럼 전시장을 누비듯 참관과 체험에 몰두하는 이들이 있었다.

우리는 그들을 국제 소매치기단이라고 불렀다.

일단 타깃을 정하는 것은 쉬워 보였다. 우리는 너무나 눈에 잘 띄었으니까.

생김새가 눈에 띄는 작은 동양인 다섯 명.

현지인이 아니라고 시위하듯 보여주는 차림새, 다음 역이 안내되는 전광판에 고정된 눈.

뭐라고 말하는지 절대 알아듣지 못할 우리들만의 언어 등등.

그들에게 우리는 몸으로 이렇게 외치고 있었다.

“그대들이여, 우리는 이곳이 낯설고 약간의 흥분상태로 차분하지 못하니 우리의 지갑을 노리세요!!!”


그러나,

우리가 누구인가? 장구하게 흘러온 역사 속에 살아남아 번영을 누리는,

포털에서 검색만 해도 여행지와 관련된 온갖 종류의 To-do list 두꺼운   권만큼 모을  있는 IT강국의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국민이며,

가방의 지퍼 손잡이와 몸체를 굳건히 움켜쥔 ‘옷핀’이라는 잠금쇠를 가진 재기 발랄한 세계시민이 아니던가.

그들에게도 영역과 대상의 불문율이 있었는지 첫날 소매치기단 3명이 MWC 마지막 날 보케리아 시장까지

우리를 호위하듯 따라붙었다.


키가 작고 까만 머리 사파리 점퍼를 입은 대장 남자 1,

180cm를 넘는 날씬한 몸매와 피어싱으로 코와 입과 귀가 블링블링한 여자 2,

아무런 특징 없는 고만고만한 여자 3.      

      

지하철 자리에 앉은 언니의 무릎 위에 놓인 가방을 살그머니 더듬다 언니의 손바닥으로 찰싹찰싹 두번  손등을 얻어맞은 여자 3.

내릴 역이 다음 역이라 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득달같이 다가와 우리 일행 중 제일 키가 큰 남자 직원의 배낭을 위에서 내려다보며 어떻게 공략할지를 고민하던 여자 2. 눈이 마주쳐도 망설임의 기색도 없다. 열리지만 않았다 뿐이지 그들에게 우리들의 가방을 맡겨둔 것 같았다.  

남자 1은 감독자의 역할을 다했다. 그저 바라만 볼뿐.


3일 계속을 그들과 마주치니 피식 웃음까지 난다.

옷이라도 좀 갈아입으면 좋으련만 너무 성의 없는 소매 치기라고나 할까.

참관 마지막 날에 지하철 역사에서 마주친 그들의 표정은 초조해 보였다.

 ‘이때쯤이면 타깃을 바꿔야 되는 거 아니야?’ 라고 조언하고 싶었다.

전시 참관을 근사하게 마무리했으니 이제 우리의 혈관을 따뜻하게 데울 알코올과

온갖 산해진미를 맛보아야 할 It’s party time!    

 

보케리아 시장은 총천연색이었다.

눈동자가 제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붉은 하몽에서 노랑 레몬주스로 다시 초록 올리브로 무한 회전한다.

어지럽다.


바르셀로나 람브라스 거리에 있는 보케리아 시장. 농수산물 시장이라 먹을것 천지다. 해산물도 싱싱하다. ⓒ BLUE HOURGLASS
ⓒ BLUE HOURGLASS

진열이 깔끔하고 품목이 다양했던 가게에서 이걸 살까 저걸 살까 기분 좋은 고민으로 눈과 손이 바빴다.

갑자기 가게 계산대를 지키고 있던 중년의 여인이 내게 가까이 오라 손짓한다.

그녀가 보여주는 휴대폰에는  There are many thieves around you guys

등에 맨 배낭을 벗어 아기를 안은 것 마냥 앞으로 돌려 매고 나는 한국말로 크게 외쳤다.

 “우리 뒤에 있는 사람들 전부 소매치기래요"

나는 양치기 소년이 되어 우리 일행들에게 외쳐야 했다.

그들도 나처럼 어여쁘고 알록달록한 made in spain에 정신줄을 놓고 있었으니까.

내게 휴대폰 문자로 경고를 보낸 여인이 높은 가판대 가운데에서 눈을 부라리며 우리를 둘러싼 국제 소매치기단에게 뭐라 뭐라 크게 소리치고 있었다.

스페인어였으니 알아듣지는 못하겠고 대충 분위기 상

"너희들 소매치기하려면 내 가게 말고 다른 데 가서 알아봐. 내 손님들이 소매치기당하는 꼴을 절대 용납 못해. 이들을 봐봐. 저 먼 나라에서 왔는데 꼭 소매치기를 해야겠니?"

그래서 우리는 각자 지레짐작한 바를 주고받으며 고마움에 자꾸자꾸 장바구니에 이것저것 주워 담았다.

살짝 뒤를 돌아보니 인력 보강을 하고도 소매치기에 실패한 까만 점퍼의 남자 1은 인상을 있는 대로 쓴 채

위풍당당 서 있는 가게 여인을 쏘아보고 있었다.

 MWC에서 모바일부터 전기자동차까지 세계의 흐름을 보여주는 3일 동안 국제 소매치기단은 우리를 상대로 허탕을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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