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카페에서 잃어버린 M의 핸드폰
아난타라 뉴욕 펠리스 호텔 1층에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카페라고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곳이 있다.
그 이름, 뉴욕 카페.
1894년에 처음 문을 열었다는 뉴욕 카페로 구글 지도가 안내해 주었다. 사람들이 많아 세 번째에 도착한 지하철을 탔다. 유럽 대륙 최초의 지하철이라는 명성을 거머쥔 부다페스트의 지하철은 파리의 그것처럼 오랜 세월 동안 켜켜이 쌓인 냄새와 세계 각지에서 온 사람들로 붐볐다.
뉴욕 카페 입구에서 고개를 들면 거친 숨소리가 들려온다. 건물을 지탱하는 기둥에 돋을새김 된 조각상을 올려다보며 괜히 내 뒷 목덜미를 쓰다듬었다. 둔중한 무게감을 날렵하게 표현한 솜씨가 빼어나다.
뉴욕 카페에서는 르네상스와 바로크의 변주곡을 눈으로 들을 수 있다.
이곳이 이름을 떨치게 된 것은 화려한 공간에 20세기 초반의 부다페스트를 거닐던 예술가와 지식인들이 발걸음 하면서부터이다. 화려한 공간에 예술과 학문이 채워져 절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입소문을 탄 것이리라.
우리가 갈 수 없었던 사회주의 시절의 뉴욕 카페는 창고로도 사용되었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창고>로 불린 시절을 겪고 (대체 이곳에 어떤 물건을 쌓아뒀을까?) 2006년 이탈리아 보스콜로(Boscolo) 그룹에 의해 새롭게 태어났다고 한다. 대리석, 청동, 실크, 벨벳이 더 이상 잘 배분할 수 없는 비율로 사용된 내부 인테리어는 우아했다. 과거를 고스란히 가져와 카페의 공간에 풀어놓은 감각이 탁월하다.
여행의 제일 마지막 일정이었다. 집에 돌아간다는 안도감과 여행이 끝난다는 안타까움이 하늘 높이 날아간 끈 떨어진 꼬리연 마냥 주책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목이 깊게 파이고 발걸음을 뗄 때마다 사각사각 소리가 나는 드레스.
굽이 날씬하게 높은 구두.
큐빅이 촘촘히 박혀 별처럼 반짝이는 작은 클러치.
이렇게 치장을 하고 고개는 빳빳이 든 채 입장해야 할 것 같은 뉴욕 카페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최대한 느슨하게 차려입은 공항 옷차림이라 살짝 후회가 되었다. 살랑살랑 원피스를 입고 반짝이는 작은 핸드백이라도 들고 올 걸 그랬나 보다.
카페 안에 들어가 자리를 잡고 천천히 둘러본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다 할 만하다. 천장화와 금빛 장식물들을 찬찬히 올려다보느라 고개를 뒤로 젖힌다. 살짝 풀어헤친 듯 입이 저절로 열린다. 올려다보는 게 익숙지 않아 아이 구구 소리를 내며 뒷목을 잡아야만 했다.
화려하고 우아한 기운이 카페를 꽉 채우고 있다. 이곳저곳을 쉴 틈 없이 기억에 각인하는 내 눈을 질투해야 하나. 사람들의 이야기와 향기로운 커피와 차, 달콤한 디저트가 음악에 녹아들 때 카페의 분위기는 절정에 이른다.
딸과 나, 서로 다른 도시에 살면서 여행으로 친구가 되었다는 삼십 대 초반의 A와 M이 테이블에 함께 했다.
웨이터가 건네준 메뉴판에 코를 박고 난 뒤에 주문한 음료와 뉴욕 카페 셀렉션.
극강의 달콤함을 부드럽게 목으로 넘겼다. 그냥 그런 이야기에도 웃음이 꽃망울처럼 툭툭 터진다. 우리들에게서 향기로운 꽃내음이 퍼져나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갑자기 M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소스라치듯 외친다.
“앗, 내 핸드폰. 내 핸드폰이 없어졌어요.”
웃음꽃에 얼음 알갱이들이 우박처럼 차라라 쏟아진다.
싸늘하게 얼음을 뒤집어쓴 우리는 주섬주섬 불과 몇 분 전의 기억들을 태곳적 이야기인 것 마냥 힘겹게 끌어올린다.
카페에서 한국에 있는 엄마랑 톡을 했다니 잃어버린 핸드폰은 이곳, 뉴욕 카페에 있을지어다!
<나는 잃어버린 폰을 ( )에서 찾았다>
자리에서 일어나 봐요. 테이블 밑을 볼까요? 가방에 든 거 다 꺼내볼래요? 화장실에 갔었나요?
어디에도 없다.
과학적인 상식을 들이밀며 '혹시 타임 슬립이 일어나 1894년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나?'
차마 이 생각은 상황의 심각성으로 내뱉지는 못했다.
대체 어디에 갔단 말이니? 땅 속으로 꺼질 일도 없고 하늘로 솟을 리도 만무한데..
폰은 잃어버려도 되지만 폰에 담긴 사진들을 어쩌냐며 M의 큰 눈에 습기가 차오른다.
카페에 들어왔을 때부터 바둑을 두듯 복기해보자.
4명의 의식이 M의 말 한마디 한마디를 따라 함께 이동한다.
기막힌 일체감이다.
그때 딸이 외친다.
“메뉴판! 메뉴판이요!”
뉴욕 카페 메뉴판은 그냥 메뉴판이 아니었다. 멋들어지게 휘어진 NY의 모노그램은 명품 브랜드 못지않은 디자인이다. 음료를 선택한 뒤에도 내려놓지 못하고 걸작을 읽듯 끝까지 들여다보며 사진 속 음료와 디저트들을 눈으로 음미했던 터였다. M은 고른 음료가 있는 페이지에 핸드폰을 넣어 두고는 주문을 끝내고 아무 생각 없이 그대로 메뉴판을 접어 웨이터에게 돌려줬던 것이다. 아. 뿔. 사.
M과 딸이 카운터로 간다. 공손하게 손을 앞으로 모으고 있던 웨이터와 몇 마디 주고받는다.
돌아오는 M의 번쩍 쳐든 손에 핸드폰이 쥐어져 있다. 험난한 전투에서 이기고 돌아오는 난파 직전의 뱃머리에 매달린 깃발처럼 핸드폰이 펄럭인다. 폰이 돌아오자 M의 혈액순환도 왕성해졌는지 얼굴빛이 발그레 상기되었다. 웨이터들도 난감해했다고 한다. 대체 이 휴대폰이 든 메뉴판은 어느 테이블에서 온 걸까? 그들도 우리처럼 메뉴판의 동선을 복기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테이블이 다시 여행자들만이 갖는 분위기로 달아오르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우리는 핸드폰을 찾았으니까!
이제 카페 뉴욕은 바이올린 선율로 옷을 갈아입었다. 명랑하고 유쾌하다. 왈츠라도 춰야 하나 싶을 만큼 흥겹다. 자리에서 일어나 가볍게 발걸음을 떼며 고개와 몸을 S라인으로 만들어 물결 춤을 추고 싶다. 카페 뉴욕의 품 안에서 우리는 예술과 학문을 논하지는 않았지만 되찾은 휴대폰과 함께 유랑인의 흥취를 있는 힘껏 녹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