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화. 진맥 이란 무엇인가?

만두네 한의원

by 김형찬

왕비의 손목에 실을 감고 문 밖에서 진맥을 하는 드라마의 영향 때문일까, 가끔이지만 아무말도 없이 팔을 쓱 내밀면서 "진맥 하고 내 병을 알아맞춰 보시오."라는 환자가 있다. 그 때의 환자 표정은 '이 정도는 해내야 한의사지.'라고 말하는 것 같다. 그럴 때면 "저는 척하면 척, 하는 의사가 아니어서, 진맥만으로 처음 보는 환자분의 병을 알지 못합니다. 가능한 상세하게 정보를 주시면 최선의 방법을 찾겠습니다."라고 말한다. 실망하고 돌아가는 환자도 있고, 겸연쩍어하며 천천히 상담을 하는 환자도 있다. 후자가 내가 도와줄 수 있는 환자다.


진맥은 분명히 환자의 상태를 파악하는데 유용한 진단도구다. 하지만 그것에 대해 너무 과장하거나, 21세기에 환자의 손목을 잡고 진단하느냐는 식의 희화하는 태도 모두가 그 가치를 가리는 것 같다. 양극단의 태도는 언제나 진실을 파악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가장 일반적으로 진맥을 하는 부위는 손목에 있는 동맥의 박동처다. 하지만 이 외에도 목에 있는 경동맥의 박동부위나 다리나 발에 있는, 비교적 피부가 얇아서 동맥이 뛰는 것을 감지할 수 있는 부위에서 진맥을 했다. 맥이 뛰는 부위의 관찰을 통해 몸안의 상태를 진단하려고 하는 것이 진맥인 셈이다.


그럼 어떻게 진맥이 환자의 상태를 파악하는 도구가 될까?


먼저 동맥이란 혈관자체의 상태를 통해 알 수 있는 정보가 있다. 심장의 박동수, 혈관벽의 상태, 혈액의 양과 그 점도 등이 동맥자체가 일으키는 파동에 영향에 준다. 가능한 환자가 편하고 안정된 상태에서 진맥을 하는 이유는 신체적 활동이나 심리적 상태에 따라 변화하는 변수를 가능한 줄이기 위함이다.


여기에 그 파동이 피부 표면까지 전달되는 과정에 변수가 더해진다. 피부의 두께와 근육의 긴장정도 그리고 피하지방과 진피층 그리고 표피층의 상태에 따라 파동에 가해지는 저항이 달라져서 표피에서 측정하는 값이 달라진다. 여기에 의사가 손가락을 통해 가하는 압박과의 상호작용까지 더해져서, 그 파동에 변수를 더한다.


의서에 기록된 많은 맥에 대한 기록들은 이렇게 얻어진 값에 대한 문자적 표현임과 동시에 진맥을 통해 얻은 결과와 실제 환자의 병 사이의 관계에 대해 관찰한 데이터에 대한 기록이다. 오랜 기간동안 데이터가 축적되면서 더해지고 덜해지면서 변화해 왔고, 이 과정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그럼에도 앞서 이야기 한대로 진맥은 작은 요인들에 의해 그 결과값이 쉽게 영향을 받는 단점이 있다. 환자의 상태도 그렇지만 의사의 상태 또한 측정값에 영향을 준다. 최근에는 기기를 이용해서 측정하기도 하지만 그 또한 측정자의 변수를 줄였다는 점만 있을 뿐, 진맥 자체가 가지고 있는 변수를 완전히 통제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진맥이 망문문절(望聞問切)로 표현되는 이학적 검사의 일부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보고, 듣고, 묻고, 접촉한다는 의미를 가진 이 진단방식은, 인간이 가진 감각기관과 의사가 갖고 있는 의학적 데이터를 통해 환자의 상태과 병을 진단하는 방식이다.


환자의 안색과 피부색과 같은 시각정보, 말소리나 숨소리와 같은 청각정보, 체취나 배설물의 냄새와 같은 후각정보, 진맥이나 복진과 같은 접촉을 통해 얻어지는 촉각정보, 드물기는 하지만 땀이나 배설물들을 맛보아서 알아내는 미각정보 그리고 의사가 갖고 있는 지식을 바탕으로 환자와의 문답을 통해 알아내는 지식. 불교식으로 표현하면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의 육근(六根)이 진단의 수단이 되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이 '육근'이 모든 번뇌의 원인이라고 하는데, 인간의 병의 원인 또한 이 번뇌 때문이고, 의사는 이것을 통해 병을 파악한다. 재미있고 당연한 이야기다.


진맥을 통해 얻는 정보는 이렇게 다양한 루트를 통해 얻어지는 정보의 일부인 셈이다. 여기에 현대의 의사는 다양한 진단기기를 통해 얻어진 정보까지 취합해서 환자의 병에 대한 판단을 내린다.


진맥은 환자를 진단하는데 유용한 정보임에는 분명하지만, 그것이 다른 데이터 보다 더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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