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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찬 Mar 25. 2024

봄을 타는 이유는 겨울에 있다.

건강을 위해 생각해야 할 것들 


한의원에 들어서면는 환자의 목소리는 다 죽어간다.      

“몸이 춥고 힘이 안 들어가서 죽을 것만 같아요. 전에는 좀 움직이면 낫더니 이번에는 진이 다 빠진 것처럼 너무 힘들어요. 병원에서 영양제도 맞고 식사도 신경 써서 하는데 회복될 기미가 보이질 않네요.”  

   

상담을 하면서도 몸을 다 펴질 못하고 어렵게 말을 이어 간다. 체온과 혈압 그리고 맥박 등의 기본적인 사인을 점검하고, 그동안의 시간에 관해 듣는다. 그러면서 몇 해 간의 기록을 살펴보니, 며칠 정도 차이를 두고, 해마다 봄의 문턱과 여름의 끝에서 비슷한 증상들로 힘들어 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 중에서도 이 환자는 봄으로 넘어 오는 환절기에 특히 증상이 심했다.     


잘 쓰는 방법은 아니지만 환자가 원체 힘들어 해서, 침과 약침과 약을 한 번에 썼다. 침을 맞고 난 후 이제 좀 살 것 같다는 환자는 그제야 내 말에 귀를 연다. 계절의 변화에 적응을 하느라 몸살을 겪는 것이니, 치료도 하겠지만 생활의 문제를 찾아 보자고 했다. 단순히 한 살 더 먹어서가 아니라. 해마다 반복되는 원인이 분명히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남들보다 봄의 문턱을 넘기가 유난히 힘들다면 그 이유는 지난 계절에 있을 확률이 높다.      


한의학의 고전인 내경에서는 겨울의 건강법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겨울 석 달은 폐장閉藏이라 하는데, 물은 얼고 땅은 갈라져 터지며 양기의 움직임이 없다. 일찍 자고 늦게 일어나야 하며, 반드시 해가 뜨기를 기다려 일어난다. 마음가짐은 감추고 숨겨야 하는데, 마치 남모를 뜻을 품거나 귀한 것을 얻은 사람처럼 한다. 추운 곳을 피하고 따뜻한 곳에서 생활하며, 땀이 나는 것을 피해서 기가 빠져나가지 않게 해야 한다. 이것이 겨울의 기운에 응하는 양생의 방법이다. 이것을 어기면 신장이 상하고 봄에 손발에 힘이 없고 차가워지는 병에 걸리며 새롭게 소생하는 힘이 약해진다.』 - 내경 사기조신대론 중에서 -     


이 환자는 지난 겨울에 일을 많이 했다. 차와 비행기로 장거리 이동도 많았고, 신경도 예민한 편인데 일과 가족관계 때문에 감정적 과로도 심했다. 그런 중에 독감에 걸려 상당기간 약을 복용했는데, 겨울이 지나고도 다 낫질 않아 최근까지도 대증약을 복용했다. 겨울이라는 삶의 속도를 늦추고 재충전해야 할 시기에 도리어 많이 과로를 하고, 감기와의 장기전을 치룬데다가, 스트레스가 높은 상태로 봄을 맞이한 것이다. 앞서 말한 건강법과는 정반대의 삶을 산 셈이다. 

     


체력을 다 소진하고 감정적 스트레스로 몸과 마음이 잔뜩 굳어 있으니, 변화에 순응할 여유도 의욕도 없는 상태가 된 것이다. 그냥 가만히 있고 싶은데, 세상이 또 계절이 가만히 두질 않는다. 그런 상화에 억지로 적응하려다 보니 자꾸 불안하고, 무기력 하고, 여기 저기 아픈 곳이 생기게 된 것이다.    

  

조금 지쳤다면 며칠 잘 자고 잘 먹고 영양제를 맞는 정도로 해결이 된다. 그런데 그 정도가 중해서 몸의 가장 근원적인 에너지원까지 상하게 되면, 단순한 피로회복 수준의 보충으로는 쉽게 회복이 되지 않는다. 이때는 겨울 동안 충전했어야 할 우리 몸의 에너지와 부족한 자원을 채워주고, 이것을 바탕으로 순환을 활성화 시켜야 한다. 그렇게 해야 좋은 건강의 회복은 물론이고 환절기라는 변화의 시기에 잘 적응할 수 있다. 치료보다는 늘 예방이 최선이지만, 엎질러진 물은 다시 담을 수 없고, 지나간 시간은 1초도 되돌릴 수 없다.  

   

앞선 환자만큼은 아니지만, 환절기만 되면 비염과 같은 질환이 재발하거나, 남들보다 유난히 계절을 타면서 몸과 마음이 힘든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이들 중 상당수가 대증요법만으로 잘 처리가 되지 않아서 한의원에 내원한다. 병이 시작된 원인이 과거에 있는데 현재만 붙들고 있어서는 해결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럴 때는 시간의 흐름에 따른 몸의 자연스러운 변화를 바로 잡아 주어야 좋은 건강을 회복할 수 있다.   

   

변화는 현재와 미래의 일이고, 이것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은 과거로부터의 관성이다. 좋은 치료를 위해서는 이 관성을 걷어 내야 한다. 시간에 뿌리를 단단히 내리고 있는 병에는 대증요법이 빠른 것 같지만 도리어 늦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겪어야 할 과정들을 천천히 하나씩 밟아가야만 문제를 해결하고 재발을 방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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