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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찬 Apr 01. 2024

마음을 춤추게 하라

건강을 위해 생각해야 할 것들 

종종 피로와 무력감을 호소하시는 환자에게 이렇게 묻는다.      


“요즘 사는 게 재밌으세요?”   

  

대부분 환자의 답은 비슷하다.   

   

“요즘은 뭘 해도 이게 무슨 의미가 있지 싶어요. 내가 뭘 열심히 한다고 해서 변하는게 있을까? 싶고요.”   

  

마음이 풀어 죽어있으니 몸의 활력은 떨어진다. 또 몸이 지치고 여기 저기 아픈 곳이 생기니, 뭔가 새로운 시도를 하기가 어려워진다. 사는 게 재미없고 매사 시큰둥 해지는 것이다. 권태는 우울증 만큼이나 어렵고, 우리의 몸과 마음을 좀 먹는다.      


동양에서는 인간의 감정을 일곱가지로 표현한다. 기쁨喜, 분노怒, 걱정憂, 생각思, 슬픔悲, 놀람驚, 두려움恐 이 그것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타인을 포함한 외부의 세계와 끊임없이 만난다. 감정은 이 만남에서 발생하는데, 동양에서는 사람이 느끼는 감정을 일곱가지로 나누어서 분석한 것이다.      


한의학에서는 이러한 감정들을 신체화시킨다. 손에 잡히지도 않고 눈에 보이지도 않지만 우리 몸에 분명한 작용을 일으키는 감정을 다루기 위해서는 유형의 것과 연결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야 치료가 가능해진다. 서양의학에서 호르몬과 신경전달물질에 감정을 묶어 놨다면, 한의학은 감정이 우리 몸에 일으키는 파문에 초점을 맞춘다. 우리가 특정한 감정을 느꼈을 때 일어나는 신체적 반응이 특정한 패턴을 띤다고 본다. 이 패턴의 흐름을 조정함으로써 감정으로 인한 문제를 치료하는데.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현상이므로 ‘기’의 흐름이란 말로 표현한다.      


즐거우면 기의 흐름이 느슨해지고, 화가 나면 기가 거슬러 오르며, 슬프면 기가 소모되고, 걱정하면 기가 가라앉는다고 표현하는 것이 감정과 신체반응의 대표적인 예다. 이것은 특별하고 어려운 것이 아니다 누구나 일상에서 자주 경험하는 일이다.    

  

기쁜 일이 있어서 한참을 웃고 났을 때를 떠올려 보자. 너무 많이 웃고나면 맥이 풀린다고 표현하는 것처럼 몸의 긴장이 풀어진다. 화가 나서 씩씩거리다가도 누군가 실없는 농담을 건내서 픽~ 하고 웃어도 머리 끝까지 차오르던 압력이 살짝 풀린다. 그런가 하면 분노에 사로 잡히면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숨이 차오른다. 여기서 더 나가면 얼굴이 울그락불그락 해지고 눈에 핏대가 선다. 이런 것을 보고 기운이 위로 치솟아 오른다고 표현한 것이다. 반대로 슬픔에 잠기면, 몸과 마음의 기능들이 슬픔에 잠식되어 쇠약해진다. 또한  걱정이 많으면 어깨가 축 쳐지고 기운이 가라앉기만 하니 가슴에 채워지는 것이 없어 답답한 마음에 한숨만 쉬게 된다.

     

한의학에서는 이와 같은 감정과 기의 흐름의 변화와 이로 인한 다양한 증상의 패턴을 읽는다. 그리고 침과 뜸 그리고 약초를 이용해서 이 흐름의 패턴을 조절하는 방식으로 치료한다. 얼마 전 한의학에서 어떻게 정신질환을 치료하나요? 라고 묻는 환자분에게도 같은 설명을 드렸다. 실제 연구결과에서도 침치료는 우리 몸 속 신경전달물질의 변화를 일으키고, 전통적인 한약재에서 추출한 물질이 정신과 치료에 쓰이기도 한다. 서로 다른 옷을 입고 있을 뿐, 모든 의학은 인간을 다룬다.    

  

사람이 병이 나는 것은 여러 원인이 있다. 이 중 감정이 일으키는 흐름에 휩쓸려 병이 나는 경우가 점점 늘어나는 것 같다. 특히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만성적으로 지속되는 감정의 파문들에 몸과 마음이 길들여지면서, 가랑비에 옷 젖듯 병이 드는 경우를 자주 본다.   

   

때로는 감정이 굳어버린 사람들도 있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때로는 잦은 상처로 굳은 살이 박히듯 무감각해진 사람들이다. 치료하는 입장에서는 이런 경우가 가장 힘들다. 물이 흐르고 있는데 그 길이 틀어졌다면 그 흐름을 잡아주면 된다. 하지만 물 자체가 말라버린 경우는 좋은 흐름을 만들어 내는 것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런 경우는 오랜 시간을 두고 몸과 마음의 힘을 북돋아 주면서, 즐거움과 행복이란 이름의 불꽃을 되살려내야 한다.  그런 후에 화력을 서서히 키우면서 그 힘을 제 갈길로 유도해준다. 이 과정은 의사와 환자가 함께 노력해야 하는 것이고, 시간과 노력이 더해져야 비로소 좋은 건강의 회복이 가능해진다.  

     

우리가 느끼는 다양한 감정들은 그 자체로 좋거나 나쁜 것도 아니다. 기뻐하고, 화도 내고 때론 슬퍼하기도 하고 사색에 잠기는가 하면 미래가 두렵기도 한 것이 사람이다. 느끼고 표현하는 감정이 풍부하다는 것은 그 사람의 삶이 그만큼 풍성하다는 증거가 될 수 있다. 이런 다양한 감정들이 없었다면 우리는 생존할 수 없었을 것이고, 세상도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일 것이다. 우리가 조심해야 할 것은 특정한 감정에 휩쓸려 균형을 잃고 넘어지는 것이다.       


환자들과 상담을 하면서 우리 사회가 느끼고 표현하는 것을 마치 시험문제의 정답처럼 다루는 것은 아닐까? 너무 엄격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러다 보니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기쁘고 슬픈 것이 아니라 기쁜 것 같고, 슬픈 것 같은 삶을 사는 것 같다. 때로는 웃는 법을 잊고 그것을 배우러 가기도 한다.    

  

풍부하고 섬세한 감정은 식어버린 심장의 불꽃을 일으키고 삶에 생명력을 불어 넣는 원천이다.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고 싶다면 내 안의 칠정七情을 춤추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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