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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찬 Aug 28. 2024

가을을 맞이하는 우리의 자세

건강을 위해 생각해야 할 것들 


점심을 먹고 동네를 산책하다 공터 벤치에 앉았습니다. 잠시 변해가는 나뭇잎의 색을 바라보는데 왠지 느낌이 이상해 고개를 숙이니 팔에 모기 한 마리 앉아 있습니다. 손을 들다 가만 보니 이 녀석이 힘이 없는지 제대로 피를 빨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처서가 지나면 모기도 입이 비뚤어진다더니 네가 그렇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지요. 그래도 가만 둘 수는 없어서 평소 같으면 내려 쳤을 팔 대신 입김을 불어 날리며, “네 계절은 다 갔구나” 라며 관대한 호모 사피엔스의 대사를 날렸습니다.


계절의 변화를 만끽하며 바람에 날리는 민들레 씨처럼 휘휘 내려오는데 무심결에 팔을 긁고 있는 저를 발견했습니다. ‘설마?’하는 마음은, 역시나 였습니다. 호모사피엔스의 관대함은 딱10분만에 곤충류 파리목 모기과 흰줄숲모기에 의해 바닥을 보이고 말았습니다. 바다라도 들여 놓을 만큼 넓다가도 바늘하나 들어갈 틈도 없어지는 것이 사람의 마음임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해주었으니 모기에게 감사라도 해야겠지만, 그럴 마음은 손톱만큼도 들지 않았지요. 



유난히 무더웠던 여름이 지나고 바람 끝에 서늘함이 묻어나면서 진료실을 찾는 분들에 변화가 생겼습니다. 본래 아프던 곳이 더 아파지거나 감기에 걸리거나 알레르기비염과 같은 알레르기 질환이 재발한 분들이 늘었고, 입맛이 떨어지거나 과로도 안했는데 피곤하다고 오시는 분들도 많아졌습니다. 여름의 위세가 대단했던만큼 계절의 변화에 적응하는데 우리 몸과 마음이 좀 더 몸살을 겪기 때문이지요. 


이럴 때 가장 흔하게 걸리는 것이 바로 감기인데, 한자로는 感氣라고 적습니다. 글자 그대로 풀면 기를 느낀다는 것인데, 계절의 변화와 같은 외부환경의 변화에 대해 우리 몸이 반응하는데 그것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벗어나면 발열, 두통, 콧물과 기침과 같은 한차례 폭풍이 몰아치게 됩니다. 저는 그래서 환자들에게 감기의 원인은 減氣라고 말하곤 합니다.


그럼 어떻게 하면 뜨거움에서 차가움으로 변화하는 이 시기를 잘 날 수 있을까요? 그 답의 단초를 현대인보다 좀 더 자연과 긴밀한 관계로 지냈던 옛 사람들에게서 찾아봅니다.


- 가을은 용평容平이라 이르는데, 하늘의 기운을 쌀쌀해지고 땅의 기운은 맑아진다. 가을에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기를 닭과 함께 하고, 마음을 편안하게 가져 가을의 추상 같은 기운을 부드럽게 해야 한다. 마음을 안으로 거두어들여 가을의 기운을 따르고, 밖으로 치닫는 마음을 가다듬어 폐를 기운을 맑게 한다. 이것이 가을의 기운에 응하는 양생의 방법이다. 이것을 어기면 폐가 상하고 겨울에 설사를 하며 안으로 간직하는 힘이 약해진다. -


해가 떠 있는 시간에 맞춰 활동시간과 쉬는 시간을 조절하는 것을 생활리듬의 기본으로 삼지만, 전등을 켜고 어둠을 밝히며 사는 현대인들에게는 거리가 먼 이야기일 수도 있습니다. 다만 차가워지는 계절로 접어들면 한 시간 정도라도 더 일찍 자서 수면시간을 좀 늘리는 정도로 환자들에게 이야기 합니다. 그럼으로써 몸이 스스로 회복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지요. 


개인적으로 가을에 순응하는 건강의 요결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그 다음 구절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음을 편하고 부드럽게 갖는 것, 그리고 밖으로 치닫는 마음을 안으로 거두어 드리는 것이 그것입니다. 가을이 되면 자연스레 일년이 마무리 되어 간다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이룬 것 없이 지나온 것 같은 지난 시절과 몇 장 남지 않은 달력을 보며 마음이 급해지거나 우울해지기 쉽습니다. 


가을에는 한 호흡 가다듬으며 마음의 거품을 걷어 내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합니다. 가을의 추상秋霜과 같은 기운이 곡식과 과일의 열매를 단단하게 하는 것처럼, 편안하고 차분한 마음으로 내 안의 알맹이와 쭉정이를 구분해내는 것입니다. 급한 마음에 쭉정이를 나로 착각해서 일을 벌이거나, 필요이상으로 부정적인 칼날을 내 안으로 향해 스스로를 상하게 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 동안 살아온 시간이 만들어 낸 나 자신과 나를 둘러싼 관계에 대해서 한 번 정리하고 가는 겁니다. 이 작업은 마치 집도의가 환부만을 잘라내는 것처럼 섬세하고 부드러운 내 안으로의 침잠이 필요합니다. 어설프거나 과도한 것 모두 나를 상하게 할 수 있습니다. 오행 중 금金이 가을을 상징하는 것은 어쩌면 이러한 의미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조금 더 시간으로부터 시선을 멀리하면 이러한 가을의 양생요결은 인생의 가을이라 할 수 있는 중년에도 필요하단 생각이 듭니다. 이제는 나 인것과 내가 아닌 것은 구분할 줄 알아야 하는 것이지요. 이 작업이 잘 이루어지면 과하게 나를 주장할 이유도 없어지고 누군가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성을 낼 일도 줄어들지 않을까 합니다. 이렇게 보면 불혹이나 지천명과 같은 논어의 말들 또한 자연스레 수긍이 되지요.


봄도 그러하지만 가을 또한 왔는가? 하면 이내 지나버립니다. 시간은 냉정해서 우물쭈물할 틈을 주지 않지요. 매사 타이밍이 중요하다고 하는데, 가을을 잘 타는 것 또한 때를 놓치지 않고 잘 해야 합니다. 그래야 스스로 납득할 만한 결실을 거둘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유 또한 잃지 말아야 겠지요. 그런 의미에서 가을밤과 가을의 마음에 잘 어울리는 시 한편을 읽어 봅니다. 


별헤는 밤 - 윤동주 -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가을은 인생이란 여행에서 맞이하는 또 한 번의 시작입니다. 



@생활한의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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