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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꽃 바람 Jan 14. 2024

응결핵이 되는 문장들

책을 읽으며 책이 아니라 어떤 생각의 집합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한 권의 책에서 다른 책으로 옮겨갈 때 책의 흐름상 크게 중요하지 않은 부분을 오래 곱씹게 된다. 다른 책에서 보았던 어떤 '생각'과 연결되는 부분일 때 그렇다. 두 책의 저자는 한 사람이 아니지만 마치 한 사람의 머리에서 나온 것처럼 '생각'이 연결된다.


특이한 점은 어떤 책을 읽더라도 거의 그런 연결지점이 있다는 것이다. 책을 선택한 '나'라는 사람의 일관성 때문일까,  인간이 가진 '생각'의 유사성 때문일까?


김수연 [공무원으로 살아남기] 이비락(2023)

박미옥 [형사 박미옥] 이야기장수(2023)

서머싯 몸  [달과 6펜스] 민음사(2023)

존 버거 [결혼식 가는 길] 열화당(2020)


관련 없어 보이는 4권의 책에서 엮어진 '생각'은 연결과 단절이다. 인간과 인간, 세대와 세대 간의 연결과 단절. 아마 내가 그 세대와 세대의 연결고리가 되는 지점에 이르렀기 때문인 것 같다.


새로운 세대가 아니며 그렇다고 기성세대로 규정당하기도 싫은 과도기에 있으며 그 둘 사이를 언제고 넘나들어 보려고 노력하는 상황이다. 그래서 구미에 따라 기성세대에도 붙었다가 새로운 세대에도 붙고 싶은 박쥐 같은 상황이다.


[달과 6펜스]에서 19쪽의 문장들을 4권의 책에서 받았던 생각의 집합이 하나로 꿰어졌다.



젊은 세대는 자신의 힘을 의식하고 소란을 떨면서, 이제 문을 노크하는 일 따위는 걷어치우고 함부로 들어와 우리의 자리를 차지해 버렸다. 사방이 그들의 고함 소리로 시끄럽다. 나이 든 사람 가운데에는 젊은이들의 괴이한 짓을 흉내 내면서 자기네 시대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애써 믿으려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자기들 역시 지금의 젊은이들처럼 소란스럽게, 그들처럼 경멸감을 가지고 안일에 빠져 있던 구세대를 짓밟아 왔던 일을 기억한다. 또한 지금 용감하게 횃불을 들고 앞장선 이들도 결국은 자기들의 자리를 내주게 되리라는 것을 안다.


마지막 말이라는 것은 세상에 없다. 말하는 당사자에게는 자못 새롭게 여겨지는 용감한 말도 알고 보면 그 이전에 똑같은 어조로 백 번도 더 되풀이되었던 말이다. 추는 항상 좌우로 흔들리고, 사람들은 늘 같은 원을 새롭게 돈다.
[달과 6펜스] 서머싯 몸. 민음사(2023) 19쪽



흩어져 있던 수증기가 응결핵을 만나 눈에 보이는 구름으로 모이는 것처럼, 어떤 문장들이 내 머릿속에서 응결핵 이 되어 다른 생각들을 끌어 모아 하나의 '생각'의 집합을 만들어 낸다.

 

그렇게 만들어진 구름은 이제 크기를 키우기 시작한다. 다른 책이나 매체에서 발견한 문장과 생각들이 거기에 더해지는 것이다. 무거워진 수증기 덩어리가 비가 되고 눈이 되어 내리듯이, 뚜렷해지고 무거워진 생각의 집합은 글이나 말이 된다.


말하고 싶고 쓰고 싶어 안달이 나게 된다.... 주로 쓴다. 이런 말을 들어줄 상대를 만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한껏 쏟아내서 가벼워지고 나면 별 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지금 내가 이 글을 쓰고 나서 느끼는 기분이 그렇다. 쓰고 보니 별 것 아닌 것 같은, 쓰나 마나 한 생각의 부스러기 같은 느낌말이다.


이 보잘것없는 마음을 이겨내고 발행을 누르고 잊고 있다가 다시 한 명의 독자 되어 언젠가 다시 이 글을 내가 읽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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