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재능을 가진 여성들은 왜 '미친 여자'가 되어야 했는가?
'버지니아 울프'하면 그녀의 작품 보다 먼저 그녀의 미친 죽음이 먼저 떠오른다. 양쪽 주머니에 가득 돌을 집어넣고 강으로 뛰어들어 자살한 여자.
'실비아 플라스' 역시 그녀의 미친 죽음으로 자주 언급된다. 두 차례 자살 실패, 세 번째로 가스 밸브를 연 채 오븐에 머리를 넣고 자살한 여자.
흰 옷을 입고 자신의 방 밖으로 나가지 않고 은둔 생활을 하며 작은 책상 위에서 1800여 편의 시를 썼던 에밀리 디킨슨.
https://youtu.be/Hz7SVGK907k?t=1122
'다락방의 미친 여자'는 [제인 에어]에 등장하지만, 제대로 자신의 이야기를 할 기회도 잃은 채 그저 미친 사건의 주동자로만 소비된 '앙트와네트'이다. 이 앙트와네트의 목소리를 제대로 찾아준 사람은 앙트와네트처럼 주류 바깥에서 고통을 받아야 했던 진 리스이다. 진 리스는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를 통해 '버사 메이슨 로체스터'가 아닌 앙트와네트의 이야기를 되찾아 준다. 왜 그녀가 미친 여자가 되어 다락방에 갇히게 되었는지, 그리고 다락방이 아닐 뿐 세상의 곳곳에서 갇힌 채 살아가고 있는 여성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눈물을 심어본 적 있는 당신에게]를 통해 알게 된 많은 [콜카타의 세 사람]에서도 종교, 계급, 젠더의 측면에서 가장 약한 소수자인 빈민가의 젊은 무슬림 여성 지반은 '미친 여자'가 되어야만 했다.
198쪽
희생양은 '제물로 바치는 속죄의 염소'라는 뜻이다. 신화학자 제임스 조지 프레이저는 "우리 죄와 고통을 다른 어떤 존재에게 떠넘겨 우리 대신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한 미개인에게 익숙한 사고방식"이라고 정의했다. 오늘날 희생양의 지목은 진짜 잘못을 저지른 대상을 잊게 하려는 의도를 지닌다. 중세의 마녀사냥, 나치의 유대인 학살, 관동 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은 모두 진정한 가해자와 문제의 원인을 가리기 위한 희생양의 대표적인 예이다. 그만큼 희생양은 당대의 가장 취약한 계층, 인종, 민족, 성별을 골라 활용된다.
199쪽
어떤 희생 제물도 우연에 의해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 시대의 가장 정확한 약자이자 소수자가 희생양이 되어 모든 죄를 뒤집어쓰고 황야로 쫓겨난다. 그러므로 여성은 최후의 식민지라는 말은 안타깝게도 여전히 낡지 않았다.
[다락방의 미친 여자]를 정보라는 '화장실의 미친 여자'로 변주한다. '화장실의 미친 여자' 이전에 '화장실의 미친 남자들'이 먼저 있었다. 미친 남자들은 눈에 보이지 않은 '초소형 카메라'로 존재했다. 초소형 카메라로 여자를 찾던 미친 남자들은 '화장실의 미친 여자'의 등장에 분노한다.
100~102쪽
'화장실의 미친 여자'의 존재를 처음 알린 것은 남자들이었다. 여자 화장실에 초소형 카메라를 설치에서 화장실 안을 엿보던 남자들이었다. 여자는 카메라 렌즈 앞에 남자의 죽은 머리와 부러진 뼈를 보란 듯이 들어 올렸다. 초소형 카메라를 사랑하던 남자들은 카메라와 기록을 사용해서 여자의 위치를 특정하고 정체를 알아내려 했다. 여자는 이곳 저곳 화장실 초소형 카메라 렌즈에 무작위로 나타났고 언제나 누군가 남자를 죽여서 먹었다.
이에 따라 남자들은 화장실을 공격했다. 초소형 카메라는 통신망에 연결되어 있었다. 다수의 비장애인 성인 남성들이 무기로 인식할 수 있는 물건을 들고 한 장소에 몰려가 소란을 일으키는 장면이 무선통신망을 통해 전송되었기 때문에 로봇은 인간이 소요를 일으킨다고 인식했다. 기계가 무인 정찰기를 보내 해당 공중화장실에 폭격을 가했다. 남자들은 죽었다.
'화장실의 미친 여자'의 정체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어딘가 지하실의 학살당한 시신 속에서 살아남은 사람일 것이라는 추측이 떠돌 뿐이다.
세상의 온갖 미친 사람들은 왜 미쳐야 했을까? 이해받을 수 없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쉽사리 '미친'으로 납작해진다. 당당히 들으라고 요구할 힘이 없어서 '미친'으로 요약되고 간편하게 '미친 사람'으로 명명되어 이름도 잃고 이야기도 잃은 채 사라진다.
이런 일은 19세기 여성 문학가들에게, 중세 유럽의 마녀들에게만 벌어지는 일은 아니다. 넬리 블라이가 10일간 정신병원 취재를 통해 말했듯이 '미친 여자'가 되는 일은 너무나 쉬웠다. 미치지 않아도 '미친 여자'가 될 수 있었으며, 한 번 미친 여자가 되면 간편하고 손쉽게 '목소리'를 잃는다.
발언'권'을 잃고 강제된 침묵의 상태로 지낸다는 것. 그것이 누군가를 미치게 한다. 미치도록 시끄러운 소음 속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자신마저 들을 수 없는 상태가 될 때 미쳐 버릴 것 같다. 미쳐 버릴 것 같아서 목소리를 내면 그 목소리를 이해하려 하지 않는 주류에 의해 '미친 사람'으로 명명된다.
미칠 노릇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