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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꽃 바람 May 03. 2022

'최대치의 나'를 만나는 시간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김지수, 열림원(2022)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은 죽음을 앞둔 이어령선생님과의 16회의 인터뷰를 김지수작가가 엮은 책입니다. 이 책을 이어령의 책이라고 해야 할까요, 김지수의 책이라고 해야 할까요? 


"인터뷰는 대담이 아니라 상담이야. 대립이 아니라 상생이지. 정확한 맥을 잡아 우물이 샘솟게 하는 거지. 그게 나 혼자 할 수 없는 inter의 신비라네. 자네가 나의 마지막 시간과 공간으로 들어왔으니, 이어령과 김지수의 틈새에서 자네의 눈으로 보며 독창적으로 쓰게나."


이어령선생님은 이어령과 김지수의 틈새에서 김지수가 독창적으로 쓴 책이라고 생각하신 것 같습니다. 이어령의 말을 김지수가 transfer한 것입니다. 꿀벌이 꽃가루를 모아 스스로의 힘으로 꿀을 만들어내듯이 비정형으로 날아다니며 이어령이 뿌린 지성의 꽃가루를 모아서 우리가 먹기 좋은 달콤한 꿀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김지수작가가 프롤로그에 "그는 나의 흉곽과 나의 되곽을 뒤흔들어 최대치의 나로 넓혀갔다."고 썼는데 이 책을 읽으며 격하게 공감했습니다. 나의 인식과 이해의 경계를 어디까지 넓힐 수 있을까, 나의 경험을 거기까지 닿게 할 수 있을까를 시험하고 가늠하며 어떤 부분은 이해를 위해 다른 책을 찾아 보며 읽었습니다. 덕분에 책을 읽기 전의 나보다 읽은 후의 내가 좀 더 넓고 깊어진 것 같습니다.


죽음과 삶에 대한 이야기를 자유롭게 넘나들고 과거와 현재, 예술과 과학이 뒤엉킨 이야기는 마치 개미가 왕국을 짓는 방식과 닮아 있습니다. 각각의 방에 대해서는 이해가 되지만 그 커다란 왕국의 모습은 감히 짐작할 수 없는 이어령이라는 세계! 이어령선생님의 말은 갑자기 비약을 하듯이 아주 멀리 갔다가 아주 작은 얘기로 돌아오기도 하는 것이 예측불허로 움직이는 꿀벌의 움직임과 같습니다. 그 상승과 하강 사이에서 어지럼증이 느껴질 것 같을 때 김지수 작가가 붙여준 소제목과 설명들이 길을 헤매지 않고 지성에게 다가설 수 있는 좋은 길잡이가 돼 주었습니다.    


이 책을 여러 번 다시 읽고 싶은 이유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런 질문의 책이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아무 곳이나 펼쳐보고 몇 페이지만 읽다 보면 생각해보지 않았던 질문들, 생각은 해보았지만 깊이 파고들지 못했던 질문들을 만나게 됩니다. 많은 질문들이 있었지만 지금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계몽에 대한 통찰이었습니다. 과연 계몽이 인간을 위한 흐름이 있는가? 이어령선생님도 지금 답을 찾고 있는 중이라고 했습니다. 


"생각이 사회를 변화시키고, 합리주의와 계몽주의 시대를 열었고, 중세 암흑기에서 생각의 빛을 통과해 근대로 왔는데, 그게 진정 인간을 위한 흐름이었을까? 계몽주의를 enlightment라고 해. 그런데 어둠이 우리를 행복하게 했는지 빛이 우리를 행복하게 했는지 명쾌하게 결론 지을 수 없어. 개인의 자아를 향해서 끝없이 회의하고 투쟁한 대낮의 인간, enlightment를 지난 오늘의 우리가 행복한 건지, 나는 아직 모른다네."


  모르는 게 약이다, 판도라의 상자 이야기처럼 모르는 채로 두었으면 좋을 일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둠 속에서 빛처럼 누군가에게 발견되어 세계를 바꾼 빛들도 있었습니다. 그런 빛이 과연 진정 인간을 위한 흐름이었는지 답을 찾지 못했습니다. 저는 모른다는 결핍만큼은 충만한 사람으로서,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모르는 시간을 음미해야겠습니다. 



프롤로그_ 스승이 필요한 당신에게

인간이 아니라 시간이 주인공인 세계

죽음이 생이 한가운데 있다는 것

호흡이 멈추는 순간까지 스스로를 관찰하고 머릿속으로 죽음을 묘사하는 마지막 단어를 고르시겠구나.

그는 나의 흉곽과 나의 뇌곽을 뒤흔들어 '최대치의 나'로 넓혀갔다. 


1_다시, 라스트 인터뷰

한 번도 지적 폭발을 멈추지 않은 활화산 같은 선지자. 

우리는 빛이 되지 못한 물질의 찌꺼기, 그 몸을 가지고 사는 거라네. 그런 우리가 반물질을 만나면 어떻게 될까? 빛이 되는 거야. 빛도 물질도 아닌 이 viod, 공허의 공간이 바로 신의 영역이라네.

[갈매기의 꿈]을 쓴 리처드 바크는 갈매기 조나단의 생애를 쓰고 자기 타자기를 바닷속에 던져 넣었다잖나. 그걸로 다 썼다는 거지. 난 그러지 못했네. 내가 계속 쓰는 건 계속 실패했기 때문이야.

글 쓰는 자는 모두 자기 얘기를 하고 싶어 쓰는 거야. 자기 생각에 열을 내는 거지. 어쩌면 독재자 하고 비슷해. 지독하게 에고를 견지하는 이유는, 그래야만 만인의 글이 되기 때문이라네.

니체는 그때 인간의 대열에 끼는 게 창피해서 인간을 거절했다네. 인간에서 벗어나려고 한 게 초인이거든.

논문이 지네발인가? 그게 사족이야. 뱀에 지네발 달린 격이지. 풋노트라고 하잖나. 나는 그런 걸 못 참았어. 논문의 정체성은 발견이지. 독창적이라는 건 사실 뻥이라는 얘기야. 너 혼자의 얘기라는 거지. 개성, orginality가 인정받은 것도 19세기 이후 낭만주의가 생기면서부터였네. 그전까지만 해도 오리지널리티는 나쁜 뜻이었어. 보편적인 것을 위반했거든.


2_큰 질문을 경계하라

개미는 있는 것 먹고, 거미는 얻어걸린 것 먹지만, 꿀벌은 화분으로 꽃가루를 옮기고 스스로의 힘으로 꿀을 만들어. 개미와 거미는 있는 걸 gathering 하지만, 벌은 화분을 transfer하는 거야. 그게 창조야.



3_진실의 반대말은 망각

덮어놓고 살지 말라고. 왜냐면 우리 모두 덮어놓고 살거든. 덮어놓은 것을 들추는 게 철학이고 진리고 예술이야.

현대는 죽음이 죽어버린 시대라네. 그래서 코로나가 대단한 일을 했다는 거야. 팬데믹 앞에서 깨달은 거지. 죽음이 코앞에 있다는 걸. 



4_그래서 외로웠네

사나카 쓰토무는 운은 하늘의 사랑과 귀여움을 받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소크라테스는 모른다는 것을 아는 것이 인간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지혜라고 봤네.

'모른다'는 결핍 상태만큼은 누구에 뒤지지 않을 만큼 충만한 인간임을 증명하며. -김지수


5_고아의 감각이 우리를 나아가게 한다

질문은 자기모순적이고 연약한 인간이 이 미스터리한 세계와 대면할 수 있는 유일한 무기이며, 내가 낯선 타자와 상호작용할 수 있는 유일한 도구였다. -김지수

모르는 시간을 음미하는 거야. 

우리는 언어를 기반으로 생각을 하는 거야. 정리하면 물질 그 자체가 언어가 아니라 차이의 의미가 언어란 말일세.


6_손잡이 달린 인간, 손잡이 없는 인간

프란시스 베이컨은 우리는 모두 미래의 시체라고 했다. 

사회적 시선에 강제가 있지.

사회적 매너와 자율성 사이에서 내적 아우성이 있어요. -김지수

'이상 없다'는 말이 잔인하게 들리네요. 나의 고통이 '이상 없음'으로 처리될 때, 타인의 안도 속에 더 큰 소외가 일어나는군요. -김지수

새로운 이야기보다 그 기록의 태도에 반응하는 것 같아요. -김지수


7_파 뿌리의 지옥, 파 뿌리의 천국

사회적으로 묻힐 수 있는 자원을 캐내어 유통시킨다는 차원에서, 부탁이 매우 역동적인 행위 -김지수

'자기다움의 윤리'로 진정성이라는 화두가 올라오면서, 가짜 아닌 진짜를 향한 욕구가 폭발적으로 늘었다.

과학은 모든 것을 '비인간'으로 가정하고, 예술은 모든 것을 '인간'으로 상상하기 때문이라네.

일상이 수단이 아니고 일상이 목적이 되는 것, 그게 춤이라네.


8_죽음의 자리는 낭떠러지가 아니라 교향

내 삶엔 '시늉'이 많았다. 내 삶으로 누리지 못하면서, 그 물에 한 발 담그고 있다는 것만으로 안도했던 시절. 가난과 결핍을 들키지 않으려고 어린 시절부터 시늉이 체질화된 삶을 살던 나는, 그 시늉이 삶을 완전히 집어삼키기 직전에, 버블 낀 청담동을 떠나 잉크 냄새 진동하는 광화문에 정착했다. -김지수

'스토리텔링을 얼마나 갖고 있는가'가 그 사람의 럭셔리지.

글을 쓸 때 나는 관심, 관찰, 관계...... 평생을 이 세 가지 순서를 반복하며 스토리를 만들어 왔다네. 관심을 가지면 관찰하게 되고 관찰을 하면 나와의 관계가 생겨.

육체의 명료성과 지각의 명료성은 그렇게 가뭄에 비 내리듯 서로의 상호성으로 몸을 적셔 늦지 않게 우리를 지혜의 바다로 이끈다. -김지수


9_바보의 쓸모

허공에 날아든 단도처럼, '존재했어?'라는 스승의 말에 뒷골이 서늘해졌다. -김지수

하늘을 나는 아름다운 알바트로스가 땅에 내려오면 바보가 되는 거야. 그게 예술가야. 날아다니는 사람은 걷지 못해. 예술가들은 나는 사람들이야. 

 maybe가 가장 아름답다고 포크너는 말했다. 

지금 여기. 나는 오늘도 내일도 절대로 변하지 않는 신념을 가진 사람을 신뢰하자 않아. 신념을 가진 사람을 주의하게나. 큰일 나. 목숨 내건 사람들이거든. 

'존재했어?'라는 질문만큼이나 '죽음 전에 이미 죽어버린 사람'이라는 말에 화들짝 놀라 인중에도 땀이 고였다. -김지수


10_고통에 대해서 듣고 싶나?

어쩌면 정리의 문제는 내 삶의 '컨트롤 키'에 관한 문제다. -김지수

레비나스의 '타자의 윤리'가 그래서 나온 거야. 타자의 자리, 그 절대성을 인정하는 게 사랑이고, 그 자리가 윤리의 출발점이라고. 타자의 고통을 내 시야에서 단정 내리면, 모든 그림이 단순해지고 왜곡이 생겨. 


11_스승의 눈물 한 방울

병원에서 태어나고 병원에서 죽지. 살고 죽는 게 병인가? 탄생이 병이고 죽음이 병이냐고? 생사의 문제가 낯선 사람들의 공간에서 다뤄지니 안타까워.

자유와 평등은 끝 모르게 싸우지만, 그 사이에 박애가 들어서면 눈물 있는 자유, 눈물 있는 평등이 나오는 거라네. 

예수의 눈물이 거기 있다네. 신격을 가진 이가 연약한 인간으로 돌아가셨어. 인간을 이해한다는 건 인간이 흘리는 눈물을 이해한다는 거라네. 

12_눈부신 하루

고난 앞에서 네거티브로 가면 인간은 짐승보다 더 나빠져. 포지티브로 가면 초인이 되는 거야. 인간이 저렇게 위대해질 수도 있구나. 

인간이라는 존재는 바깥에서 나를 바꾸도록 용납하지 않는다네.


13_지혜를 가진 주는 자

환각과 기억의 변주

정적이 바로 작은 죽음이지. 

흩어지는 게 정신분열이고, 집중하는 게 편집증이라네요. 앞쪽에 눈이 달린 포식자의 편집증은 독재자와 닮아 있고, 옆쪽에 눈이 달린 초식 동물은 착한 게 아이라 약한 사람을 닮아 있다. 

나도 이렇게 외로운데 신을 얼마나 더 외로울까?

지혜가 없으면 죽음을 모르니 그냥 살아. 그냥 살면 무슨 슬픔이 있고 눈물이 있겠어?


14_또 한 번의 봄

레비스트로스가 문화인류학에서 설명한 인류사의 3대 교환 구조지. 피, 언어, 돈의 교환.

돈의 비극이 딴 게 아니야. 돈의 교환가치가 언어의 교환가치, 피의 교환가치를 침입할 때 이 3대 평행선이 부딪혀 충돌할 때 비극이 생기는 거야. 

중요한 건 단순해. 복잡할수록 천한 거라네.


15_또 한 번의 여름 - 생육하고 번성하라

우리말에 버려두라는 말이 있지? 버리는 것과 두는 것의 중간이야. 버려두는 건, 그 흐름대로 그냥 두는 거야. 그게 생명이 자본이 되는 원리야. 

enemy는 안돼. rival이어야지. rival의 어원이 river야. 미워도 협력을 해. 에너미는 상대가 죽어야 내가 살지만, 라이벌은 상대를 죽이면 나도 죽어. 

'사잇꾼'이 되어야 하네. 큰소리치고 이간질하는 '사기꾼'이 아니라 여기저기 오가며 함께 뛰는 '사잇꾼'이 돼야 해. 


16_작별인사

별들의 오해. 너와 나라는 별은, 이미 마음이 지나간 길, 식어버린 빛 그림자를 바라보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김지수

오늘날의 우리들은 관성으로 받아들이고 있어. 그냥 그런가 보다 하는 거지. 우리 뇌가 얼마나 썩었는지 모르네. 역설적으로 옛날 사람들은 뇌가 덜 오염됐었어. 제 머리로 이해가 안 되는 건 못 받아들였지.









이렇게 멋진 사람을 이제야 알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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