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날, 좋은 날
살이 좀 빠져서 그렇지, 나를 맞아주는 엄마의 모습이 평소와 다르지 않다. 순간 엄마가 아프다는 사실을 잊을 정도로..
국민 19명 중 1명 꼴로 암에 걸리는 시대. 누구나 가지고 있는 마음의 흉터처럼, 암도 사람들 몸속에서 있는 듯 없는 듯 숨 쉬고 있을까?
"너희는 가족력이 있어서 평소에 진짜 건강 조심해야 돼."
"뭐 좋은 거라고, 이번엔 엄마까지 보태줬네~ ㅎㅎ"
농담조로 한 말에 다들 웃었지만 쓴 맛이 나는 웃음이었다.
'가족력'은 아빠가 돌아가신 이후부터 엄마의 단골 멘트가 되었는데 이젠 참.. 달갑지 않은 말이 되었다. 걱정스러운 당부에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미안함까지 추가로 담겼기 때문이다.
아프지 않고는 모르기 십상이다..
고통에 몸부림치는 일, 모아둔 돈이 점점 바닥나는 일,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살아가기 힘든 일, 끊임없이 죽음을 마주하는 일. 정작 건강할 때 내 몸을 살피지 못한 후회까지.
엄마가 자꾸 유언 비슷한 말을 한다. 대화를 나눠도 끝은 유언이다. 아픈 엄마 앞에서 씩씩한 척 해도 모자랄 판에 툭하면 눈물부터 터뜨리는 동생에게 '우는 것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는 놈'이라고 속으로 욕을 많이 했는데 하.. 이제 나도 불안하다.
췌장암 4기이면서도 몇 년째 암과 함께 일상을 살고 있다는 주변의 사례를 들으면 엄마에게도 기적이 찾아오길 간절히 바라다가도, 먹지 못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면 한 움큼 기대도 버거워진다.
엄마가 없는 세상을 상상하기 힘들다. 길든 짧든.. 엄마가 있는 지금, 이 소중한 시간을 희망으로, 감사함으로 그리고 사랑으로 채워가야겠다.
겨울은 너무 추워. 꽃 피는 봄에 가자. 봄에 다다르면 우리 또 다른 계절을 생각하자 엄마. 사랑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