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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훈 Nov 02. 2018

대한민국 국민들은 얼마나 행복한가?

국제비교를 통해 살펴 본 한국인들의 행복도

헬조선이란 자조 섞인 얘기를 들으며, 문득 우린 도대체 얼마나 불행한 것인지, 반대로 얼마나 행복한 지 궁금했다. 절대적 빈곤 시절이었던 과거 보릿고개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풍요로워진 건 분명한 데, ‘그 시절보다 행복한가? ’물어보면 선뜻 그렇다는 답이 나오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 때는 곤궁하였어도 ‘희망’이라도 있었다. ‘열심히 노력하면 개천에서 용이 돼 날 수 있다’는 꿈이라도 꿀 수 있었다. 허나 지금은 ‘N포세대’,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 ‘흙수저’라는 자조 섞인 한탄만이 젊은이들 사이에 회자되고 있으니 하는 말이다. 다른 나라(와 비교해서)는 어떤가? 시선을 돌려 보았다.     


시그나 그룹 행복지수 : 23개국 중 꼴찌 대한민국    


지난 7월 29일자《세계일보》에 다음과 같은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직장·돈 스트레스에 행복지수 꼴찌..‘행복 찾기'에 빠진 대한민국”.      


“글로벌 헬스케어기업 ‘시그나그룹’은 지난 7월 11일 우리나라의 행복지수가 23개국 중 가장 낮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시그나 그룹의 행복지수는 신체건강, 사회관계, 가족, 재정상황, 직장 등 5개 설문을 통해 지수를 측정한다. 우리나라의 행복지수는 51.7점으로 1위를 차지한 인도(70.4점)보다 무려 20점 가까이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2014년부터 매년 측정한 시그나 그룹의 행복지수에서 2015년을 제외하고는 우리나라가 매년 꼴찌를 차지하고 있다. 행복하지 않은 나라라는 불명예를 떠안고 있는 것이다.”      


믿기 어려웠다. 설마 그럴 리야, ‘시그나 그룹’이란 이름도 처음 들어보는 기업이어서 신뢰가 가지 않는다. 갤럽이라면 모를까? 뭔가 조사항목이나 방법이 잘못됐겠지. 국민소득 3만 달러 10위권 경제대국인 대한민국이 행복도 꼴찌라고? 그러나 이어진 기사에는 한숨과 함께 고개를 숙이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나라 국민 10명 중 7명은 자신이 ‘불행하다’라고 생각한다는 조사결과도 나왔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보사연)이 19세 이상 남녀 2000명을 대상으로 행복에 대해 물은 결과 ‘불행하다(매우 불행+조금 불행)’는 답변이 73.4%에 달했다고 5일 밝혔다.”      


자료를 더 찾아보니 ‘행복’을 주제로 한 국제적인 조사는 많았다. 영국의 유력주간지 이코노미스트 부설연구소 EIU(Economist Intelligence Unit)가 조사 발표하는 ‘삶의 질 순위(Where-to-be-born Index)’도 있었고, 영국 싱크탱크 레가툼연구소가 발표하는 ‘레가툼 번영지수(Legatum Prosperity Index)’도 있었으며, 영국의 신경제재단(New Economic Foundation:NEF)이 발표하는 ‘지구촌 행복지수(Happy Planet Index:HPI)’도 있었다. 기왕 언급한 김에  EIU의 삶의 질 순위와 레가튬 번영지수를 잠시 살펴보고 가자.    


EIU의 《Where-to-be-born Index》은 세계 111개국을 대상으로 조사한 삶의 질 순위다. 이 지수는 전 세계 111개국을 대상으로 성평등·자유도·가족·공동생활의 수준과, 소득·건강·실업률·기후·정치적 안정성·직업 안정성에 대해 각각의 종합점수로 순위를 매긴 것이란다. 우리나라에는 옛 명칭인 ‘삶의 질 지수(QLI:Quality of Life Index)’로 많이 알려져 있다. 2013년 기준으로 1위는 스위스. 5위 덴마크, 미국(16위), 대한민국(19위), 일본(25위), 코스타리카(30위) 순이다.  


레가툼 세계번영지수 《Legatum Global Prosperity Index》: 35위

   

‘세계번영지수'(Global Prosperity Index)’는 영국 싱크탱크 레가툼연구소(Legatum Institute)’가 2007년부터 매년 발표하는 행복지수다. 올해로 12회째. 지구상에서 ‘가장 풍요로우며 행복한 나라’를 찾기 위해 창안된 지수로, 전 세계 149개국을 대상으로 ▲경제질 ▲경영환경 ▲공공행정▲개인자유 ▲사회자본 ▲안전·교육 ▲건강 ▲자연환경 등 9개 분야 100개 항목을 평가, 산출한다.      


노르웨이가 2017년에 이어 2018년에도 1위를 차지했고(최근 9년 사이 8차례나 1위), 뉴질랜드 2위, 3위 핀란드, 4위 스위스, 5위 덴마크, 6위 스웨덴 등의 순으로 북유럽 국가들이 최상위에 랭크되었다.

     

한국은 35위에 올랐다(작년 36위). OECD 국가에만 한정시켜 보면 거의 최하위 순위다. 9개 분야 중 ‘교육’과 ‘건강’ 분야는 17~19위로 비교적 상위에 랭크됐으나, ‘개인 자유’, ‘사회자본’, ‘자연환경’ 분야에선 모두 70위권 밖에 머물렀다.     

 

신경제재단의 지구촌 행복지수 :  80     


그 중에서도 신경제재단의 행복지수는 유명하다. 2006년부터 3년마다 발표하는데, ‘웰빙(삶의 만족도), 기대 수명, 불평등 결과, 생태발자국’ 등 4가지 지표에 의해 조사되는 행복지수다. 부탄은 2010년 1위, 코스타리카는 2009년과 2012년, 그리고 2017년 세번이나 이 신경제재단이 발표한 HPI 순위에서 1위를 차지, 세계적인 주목을 끌었다. 작년 내가 두 나라를 방문하게 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었다. 최빈국인 부탄과 1인당 GDP가 우리나라 1/3 수준인 코스타리카가 지구상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라고? 하는 의문 때문이었다.   

   

HPI 순위를 보면 코스타리카에 이어 멕시코, 콜롬비아 등 중남미국가들이 주로 최상위에 랭크된다. GDP는 낮지만 삶의 만족도, 기대수명, 불평등, 생태발자국 4영역 모두에서 골고루 높은 점수를 받기 때문이다. 낙천적인 인종적 특성도 일정하게 작용하는데, 특히 생태발자국 분야에서 상대적 강세를 보인다. 대한민국은 2017년 랭킹 80위였다. 생태발자국 분야에서 가장 취약하고 삶의 만족도와 불평등 분야의 낮은 점수 탓이다.      


HPI는 기존의 행복지수와는 큰 차이가 있다. 제목에 나와 있는 것처럼, 지구를 행복하게 하는, 생태발자국을 줄이는 방향으로 유도하는 지수다. 행복한 국가를 넘어 행복한 지구를 지향하는 지수라는 것. 그래서 종종 환경지수가 전체 행복지수를 너무 크게 좌우한다는비;판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HPI는 이른바 선진국이 주로 사용하는 GDP나 HDI(Human Development Index 인간개발지수) 기준에 대한 도전이자 문명비판적 성격을 띤다고 목포대 우성대 교수는 분석한다.     


그렇다면 왜 신경제재단 (NEF)은 이런 지수를 발표하는 것일까? NEF는 1986년 열린 TOES(The Other Economic Summit) 멤버들로부터 시작됐다고 한다. TOES는 당시 유럽에서 열린 G7과 G8 회담에 반대하는 학계, 언론계, NGO 단체들이 모여 대안적 차원에서 연 ‘또 다른 정상회담’이었다. 이 TOES의 결정사항들을 지속적으로 실행하기 위해 설립된 것이 NEF이며, 이 NEF의 새로운 비전이 산출한 대안적 웰빙지수가 바로 HPI라는 것. 그래서 NEF는 ‘페이비언의 후예들’이라고도 불리어진다(우성대, 『행복의 인문학』2017, 간디서원 중).    


어쨌든, 이를 통해 주로 영국에서 ‘삶의 질’과 ‘행복’과 관련한 국제적인 조사와 비교가 활발하게 이루어져왔음을 알 수 있었다.     


행복과 관련 국제적으로 가장 공신력 있는 조사는 UN 산하 자문기구인 지속가능발전네트워크(SDSN)가 세계 155(6)개국을 대상으로 조사, 매년 발표하는 ‘세계행복보고서(World Happiness Report)’와 OECD가 가입 국가 등을 주 대상으로 조사 발표하는‘더 나은 삶 지수(BLI·Better Life Index)’를 들 수 있다. 2018년 행복보고서 순위에서 대한민국은 57위, 2017년 보고된 대한민국의 BLI 순위는 조사대상 38개국 중 하위권인 29위로 나타났다.    

 

궁금했던 것은, 왜 UN은 전 세계 국가들을 대상으로 행복도를 조사하고, OECD 또한 삶의 질 지수를 조사하기 시작했을까 하는 점이었다. 그 최초 조사 시기도 2011~2년으로 비슷하다. 왜 이 시기부터 국제기구는 행복을 조사하기 시작했을까? 다시 거슬러 올라가 보았다.  

   

GDP는 틀렸다경제실적과 사회진보의 계측을 위한 위원회     


우선 사르코지 전 프랑스대통령이 제안해 만들어진 <경제실적과 사회진보의 계측을 위한 위원회(일명 스티글리츠위원회)>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와 아마르티아 센, 그리고 프랑스 경제문제연구소 소장 장 폴 피투시 등 3인이 주축이 돼 2008년 2월 설립된 위원회다.     


위원회는 1년여 동안 연구와 토론을 진행시킨 후, 2009년 9월 파리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공식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 중 비전문적인 부분만 발췌해 2010년 1월 《Mismeasuring Our Lives : Why GDP Doesn't Add Up》이란 책자가 위 3인 명의 공저로 발간되었다(우리나라에서는 『GDP는 틀렸다-국민총행복을 높이는 새로운 지수를 찾아서』라는 제목으로 2011년 출판됐다.아래).      


제목에서 얘기하는 것처럼, 여기서 그들은 GDP가 사람들의 행복을 측정하는 최적의 지표가 아님을 강조하며, ‘국민총행복(Gross National Happiness:GNH)’을 높이는 새로운 지수를 찾아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책의 발간을 축하하는 서문에서 사르코지는 “훗날 인류 역사는 이 위원회가 성립되기 ‘전’과 ‘후’를 구분할것”이며 “그리고 이 보고서 탄생의 ‘전’과 ‘후’ 또한 커다란 역사적 전기로 남을 것”이라고 예언(!)했는데 ‘실제 그렇다’는 생각이다.

     

“사르코지 대통령과 위원회가 제기한 주제들은 (이후) 전 세계적인 호응을 불러 일으켰으며, 세계 여기저기서 반향을 불러 일으켰기 때문”이다. 실제 이 보고서가 공개된 한 달 후인 10월말 대한민국 부산에서 <3차 OECD 세계포럼>이 열렸는데, 위원회가 위 보고서에서 제기한 담론들이 주요한 논의주제가 되었다(이 시기는 바로 MB 정부 시절이었는데, 당시 국내동향은 뒤에 살펴보도록 한다).      


놀라운 것은, GDP가 사회적 웰빙, 체감물가 등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므로 새로운 지표를 개발해야 한다며 위원회 구성을 제안하고 적극 지원한 이가, 우파 대통령인 사르코지란 사실이다. 2010년 영국 총리가 된 데이비드 캐머런도 우파였다. 캐머런도 2010년 ‘General Well-Being(GWB)’정책을 천명한 이래, 국가통계청(ONS) 차원에서 행복, 삶의 만족도 등에 초점을 두어 웰빙데이터를 정기적으로 측정해 왔다.     


당시 2010년은 독일도 보수우파 연정이 탄생, 영·프·독 유럽 빅3 국이 13년 만에 모두 우파로 바뀐 시기였다. EU의 주요한 결정은 영·프·독 이 3국이 주도하는 경우가 많기에, OECD의 더 나은 삶의 지표(BLI)는 물론, UN 세계행복보고서 작성에 큰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추정된다.     


OECD 보다 나은 삶의 지수(Better Life Index:BLI): 38개국 중 29     


OECD가 2011년부터 매년 발표하는 ‘더 나은 삶의 지수(BLI·Better Life Index)’는 바로 이 스티글리츠위원회의 영향을 받아 시작된 지표다. 주택, 소득, 일자리, 공동체(사회적 관계), 교육, 환경, 거버넌스(시민참여), 건강, 생활 만족도, 안전, 일과 삶의 균형 등 모두 11개 분야 지표로 측정된다.     


2017년 보고된 대한민국의 BLI 순위는 조사대상 38개 국 중 29위로 나타났다. 지난 5년여 보고된 순위와 별반 다르지 않다. BLI 순위는 노르웨이(1위), 덴마크(2위), 호주(3위), 스웨덴(4위), 캐나다(5위)로 북유럽국가들이 강세를 보인다.     



한국은 주택, 소득, 교육과 거버넌스, 일자리에서 평균을 상회하지만 생활만족도, 환경, 건강, 사회적 관계, 안전 및 일과 삶의 균형에서 평균 이하 점수를 보여주고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한국의 1인당 평균 ‘가처분 소득’은 2만여 달러로 OECD 평균인 연간 3만 달러보다 낮다(38개국 중 23위).  가장 부유한 계층과 가장 가난한 계층 사이에는 상당한 격차가 존재한다. 인구의 상위 20%는 하위 20%의 거의 6배에 달한다


대기에 유입돼 폐에 손상을 줄 수 있는 ‘미세먼지’는 OECD에서 가장 높았다(38개국 중 38위). 수질도 OECD 평균보다 낮았다. 대한민국 국민들이 OECD국가 중 최악의 미세먼지에 노출돼 있다는 것이 새삼 드러난 것이다. 며칠 전 <연합뉴스>에는 “유엔 ‘대기오염으로 아시아에서 연 400만명 조기 사망’”이란 제하의 기사(2018.10.30자)가 실렸다.

     

“유엔환경계획(UNEP)은 30일(현지시간) 대기오염으로 매년 700만 명이 조기 사망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 400만 명이 아시아에 거주하고 있다고 밝혔다...에릭 솔하임 UNEP 사무총장은 ‘깨끗한 공기로 호흡한다는 가장 기본적인 인간의 권리가 전 세계 여러 지역에서 사치스러운 일이 되고 있다는 건 매우 불행한 일이다’라고 말했다.”     


위 BLI 미세먼지 조사결과에 따른다면, UNEP이 경고하고 있는 아시아인 400만명 중 자신이 포함되지 않으리라 장담할 수 있는 한국인들은 거의 없는 상황이라해도 무방하다. 미세먼지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숨 쉬어야 살 수 있는)를 침해하는 위해 요인임에도, 그동안 대한민국의 위정자들은 중국 탓만 하며 손을 놓고 있었다. 제발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제대로 조치 취해주기 바란다.

      

다시 돌아와, 공동체 영역(사회적 관계)과 관련해서는, ‘도움이 필요할 때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고 답한 한국인들이 76%밖에 안 되었는데, 이는 OECD 국가(평균 89%) 중 가장 낮은 수치였다(38개국 중 38위). 위의 사회적 지원(social support)과 관련한 응답률에서 대한민국이 꼴찌라는 사실은, 이 조사결과가 세계 최고의 자살률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  “당신이 힘들 때 도와줄 사람이 있느냐”는 질문에 대한 일반적 답변은 ‘가족, 친구, 이웃’ 등을 상정하는 것인데, 이 공동체가 완전히 해체되었다고 말해주고 있다.


봉건제 착취와 제국주의 수탈, 전쟁의 참화를 겪으면서도 끈끈이 유지해 왔던 우리의 공동체의식은 경제성장 우선주의와 성장중독증에 빠지면서 완전히 깨져 버렸다. 협동의 미학은 사라지고 살벌한 경쟁과 각자도생의 사회로 전락하고 말았다. 서로 품어주고 고통을 나누어 가졌던 마을도, 심지어 가족까지 해체되고 말았다. 위의 BLI 조사결과는, 객관적인 지표상으로도 대한민국의 사회적 관계가 완전히 붕괴돼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다시 돌아오자.‘일반적인 건강 상태는 어떤가?’라는 주관적 건강상태를 묻는 질문에 한국인들은 놀랍게도 33%만이 긍정답변을 했다. 이는 OECD 평균인 69%보다 훨씬 낮고, OECD 국가 중 가장 낮은 점수다(38개국 중 38위).    


한국인들은 또한 '삶의 전반적 만족도'를 0에서 10점으로 평가할 때 OECD 평균인 6.5보다 낮은 평균 5.9등급을 주었다(38개국 중 30위).     


이상과 같이 살펴보면 대한민국은 미세먼지, 주관적 건강상태, 사회적 관계(공동체 영역)에서 조사대상국 38개국 중 꼴찌로 조사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전반적 삶의 만족도도 낮은 편이다. 한국인들이 왜 행복하지 않은지 그 이유가 하나씩 밝혀지고 있는 것이다.      


한편 OECD는 객관적 지표만으로 웰빙을 측정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판단하여, 주관적 웰빙(Subjective Well-being:SWB) 측정 가이드라인 개발에 나서기 시작한다. 2012년부터 OECD 차원의 ‘주관적 웰빙 측정 가이드라인’이 작성되기 시작, 2013년 배포되기에 이른다. 이어 살펴 볼 것이지만, UN 차원에서도 <세계행복보고서(World Happiness Report)>가 매년 보고되기 시작했다.     


UN 세계행복보고서(World Happiness Report:WHP ):  57     


2012년 최초 발간된 이후 2014년을 제외하고 매년 발표되는 보고서다. 156(5)개국을 대상으로 1인당 GDP, 사회적 지원, 건강 기대수명, 삶의 선택의 자유, 관대성, 부패인식도를 기준으로 국가별 행복지수를 조사·발표한다.      


여기서 '1인당 GDP'은 실질 구매력 기준이며, '사회적 지원'이란 "만약 당신이 곤경에 처했을 떄 언제든 도와줄 친척이나 친구가 있는가 아닌가"는 질문이다. '삶의 선택의 자유'는 "당신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고 있는가, 아닌가?"는 질문으로 생애 선택의 자율성을 뜻한다.  둘 다 양자택일적 질문으로 갤럽 월드폴 조사데이터를 사용한다. '관대성'은 "당신은 지난달 '기부'하신 적 있나?"는 질문을 말한다.


2018년 보고에 따르면 핀란드를 필두로 북유럽국가들이 최상위에 랭크됐다. 2017보고서에는 노르웨이가 1위, 2016년 조사에는 행복한 나라 1위로 덴마크가 오르는 등 북유럽국가들 간 ‘행복한 수위경쟁’을 펼치고 있다. 앞서 말했듯이 한국은 올해 57위다. 작년(2017)은 56위였으며, 2016년은 58위로 비슷한 순위를 맴돌고 있다. 이 중에서도 특히 사회적 지원(95위), 투명성(126위), 자율성(139위) 등에서 점수가 낮아 그렇다(아래 표를 참조하라).    

통계플러스 2018년 가을호 자료


이 조사결과는, 우리 국민이 행복하지 않은 이유는 소득이 낮아서가 아니라 부패가 많고, 삶의 선택의 자유가 없으며, 사회적 관계가 파괴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다.     


여기서 궁금해진다. 왜 UN은 2012년부터 매년 세계행복보고서를 발간하는 것일까? 해답은 <세계행복보고서 2012> 제4장인 ‘(행복연구의) 몇 가지 정책적 함의(Some Policy Implication)’에 나와 있다.      


이에 따르면, UN은 2011년 7월 13일 총회 결의를 통해 “행복과 웰빙의 추구가 중요하니 이를 공공정책에 반영하는데 도움을 줄 새로운 척도를 개발할 것”을 회원국들에게 권장했다. 자국 국민들의 행복을 측정하여 이를 공공정책의 안내자로 활용할 것을 권유한 것이다. 또한 3월 20일을 ‘세계 행복의 날(International Day of Happiness)’로 정하고, 다음 해 부터 매년 이날 세계행복보고서를 발표하기 시작했다(놀라운 것은 2012년에 처음으로 발간된 세계행복보고서는, 부탄왕국의 제안에 따라 2012년 4월 2일 열린 '행복과 웰빙을 위한 UN고위급회담'을 지원하기 위해 발간되었다는 사실이다. 이 회담은 2011년 행복지수를 권장한 UN총회의 후속회의 성격).       


이 유엔 결의는 앞서 살펴 본 것처럼 스티글리츠보고서와 OECD의 ‘더 나은 삶의 지수(BLI)'와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 보여 진다. 당장은 ‘권장’ 수준이지만, 행복지수 개발은 국가 지속가능발전 지표(SDGs)처럼 당연한 국제적 흐름(국가적 과제)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크다. 행복보고서를 지속가능발전네트워크(SDSN)이 발간하고 있다는 사실도 그러한 추정을 가능케 한다. 실제로 행복지표는 이미 많은 나라들의 정부정책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사르코지의 프랑스, 캐머런의 영국은 이미 살펴보았고, 브라질에서도 국민총행복(GNH) 혹은 포르투갈어로 국내총행복(FIB) 지표가 개발되었다. 뉴질랜드 정부도 삶의 질(a Quality of Life)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으며, 캐나다는 2011년부터 웰빙지수(Canadian Index of Wellbeing: CIW)를 발표하고 있다.      


이웃나라인 일본도 2011년부터 내각부 차원의 ‘행복도지표’를 발표하였고, 2013년에는 행복정책을 지향하는 52개 기초자치단체들 모여 ‘행복리그(幸せリーグ)’라는 연합조직을 발족시켰다. 이들은 대개 ‘행복실감도시(幸福實感都市)’라는 슬로건을 통일적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2018년 현재 99개 기초자치단체의 참여로 확대되었다(대한민국은 지난 10월 17일, 39개 자치단체가 모여 ‘행복실현지방정부협의회가 비로소 창립되었다. 이는 나중에 살펴볼 것이다). 아랍에미리트연방(UAE)은 2016년 ‘행복부(State for happiness)’라는 부처를 세계 최초로 신설하기도 했다.      

행복리그 5회 총회 장면 2017.6.7  http://www.town.echizen.fukui.jp/chousei/03/04/p005173.html


행복지수 상위권 국가들을 보면 국가적 차원에서 국민행복을 오랫동안 연구해온 국가들이 많다. OECD나 UN차원의 논의가 진행되기 시작한 2011년 훨씬 이전부터 부탄은 물론 영국, 네덜란드, 뉴질랜드, 캐나다 등의 국가들은 일찍부터 행복을 연구해 왔다. 이러한 개별국가들의 오랜 준비와 국제기구의 결의가 모아지면서, 행복지수 개발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이다.      


행복을 측정해야 하는 이유     


그렇다면 행복은 왜 측정돼야 할까? 2012년 최초로 발간된 행복보고서 제1장 입문편을 쓴 제프리삭스(Jeffrey Sachs) 콜롬비아대 지구연구소장의 얘기를 빌려 보자.(이하, 『세계행복지도』, 『행복의 정치경제학』, 우성대 등 목포대 연구진, 간디서원에서 인용)


 “행복은 개인적 선택에 달린 문제며, 국가정책의 문제라기보다는 개인이 추구해야 할 어떤 것이라 믿는 이들이 많다. (따라서) 행복은 국가적 목표의 기준으로 삼거나 정책적 내용을 담기에는 지나치게 주관적이며 모호한 것으로 보인다”는 주장이 그것이다(이는 내가 실제로 최근 어떤 자리에서 들었던 내용이기도 하다). 그러나 최근 일련의 연구에 의하면 “행복이 주관적 경험이기는 하지만 객관적으로 측정되고 평가될 수 있으며, 행복이 개인 및 사회의 고유한 특성과도 연관된다”는 것을 모르는 주장이다. “또한 공공정책이 어떻게 수립되고 집행되느냐에 따라 행복의 수준 및 양태에도 큰 차이가 날 수 있다. 따라서 국민소득을 높이고자 하는 정책이 그러하듯, 행복을 증진코자 하는 정책도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것. 아니 소득은 행복 요소 중 일부에 불과하므로 행복정책은 오히려 몇 배 더 중요하다.      


UN 산하의 지속가능발전네트워크가 권고한 ‘지속가능한 발전목표’는 4개의 기둥에 지탱돼야 한다. ‘극빈의 종식’,‘환경의 지속가능성’,‘사회적 통합’,‘굿 거버넌스’, 이 4가지다. 이 네 기둥을 평가하려면 전통적인 GNP를 넘어서는 일련의 새로운 지표가 필요하다...제프리삭스는 “지속가능한 발전(Sustainable Development)은 ‘인간의 웰빙’과 ‘환경의 지속가능성’을 조합하기 위해 탄생한 용어”라고 까지 얘기한다. 즉 행복의 추구는 지속가능한 발전과 밀접히 연결돼 있으며, 행복조사는 “지속가능한 개발 시대에 적합한 정책 입안을 위한 새로운 단초”라는 것이다. 다시말해 행복연구는 위의 지속가능한 발전의 4대 기둥을 설계하고 성취하는 데 디딤돌이 돼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대단한 의미부여이지 않은가?     

 

“환경적 토론은 삶의 근본적 목적을 ‘경제성장’으로부터 ‘삶의 질의 향상과 유지’로 변화시킴으로서 새롭게 조명될 수 있다.”가계소득은 ‘삶의 만족감’을 설명해주지만 제한적으로만 그러하다. 전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국가들(이를 테면 덴마크 등 북유럽국가들)은 고소득국가이면서 동시에 높은 수준의 사회적 신뢰, 사회적 평등, 굿 거버넌스를 가지고 있는 나라라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세계행복보고서 2012>에서‘행복연구의 정책적 함의’꼭지를 쓴 리처드 레이어드 등은 얘기한다.


“행복을 측정하는 일차적 이유는 시민들과 정책입안자들로 하여금 그들의 문제와 기회가 무엇인지, 어려움이 얼마나 잘 해결되고 있는 지, 그리고 미래로의 창문이 잘 열리고 있는지 알게 하기 위함”이다. 이만큼 중요한 행복도 조사인 만큼 심도 있게 체계적으로 조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앞의 '더 나은 삶의 지표'나 '행복보고서'가 말해주듯 어떤 점이 국민들을 고통스럽게 하고 있는지 생생하게 보여주기 때문에, 정책 우선순위를 잡는데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당위론적 차원이 아닌 실제 효율적인 정책 수립과 집행에서도 필요하다. 예를 들어, 정부(& 지방정부)의 “대부분의 공공지출은 건강, 사회복지, 법과 질서, 환경, 아동복지, 소득지원 등에 쓰인다. 그런데 이런 분야에서는 지불하고자 하는 의지가 발생하는 편익에 대한 충분한 지침이 제공되지 않는다. 행복은 이러한 지출을 평가하기 위한 훌륭한 추가기준이 된다는 것”이다. 행복지표 조사 결과에 따라 취약분야와 취약계층, 취약지역이 도출되므로 정책 우선 순위를 잡는데 유익하거나 사회서비스 또한 효율적으로 연계관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추상적인 것 같은 행복 지수 개발이 효율적인 공공예산 집행에도 도움이 된다는 말이다. 이를테면, 나중 살펴볼 것이지만 ‘무상의료와 예방정책’처럼, 보건의료 예산을 질환이 발생한 다음 치료에 쓰는 게 아니라 예방(prevention) 쪽으로 바꾸게 되면, 국민들의 보다 나은 건강과 행복은 물론 공공지출 측면에서도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또한 행복지수를 정책수립에 반영한 나라들이 생산성이 높아지고 사회통합이 잘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도 주목할 만 하다. 즉 행복이야말로 지역사회의 원동력이 된다는 것이다,


다시 성장을 생각함     


“20세기에는 국내총생산(GDP)이 끝없이 증가하는 걸 인류의 진보로 생각했습니다. 마치 ‘절대 떨어지지 않고 고도를 높여만 가는 비행기’ 같은 모델이지요. 이런 성장 중독은 세계적 불평등을 심화하고 지구 환경에 큰 부담을 안기고 있습니다.”     


‘인간 개발 보고서’ 등 유엔개발계획(UNDP)의 주요 보고서를 쓴 영국 경제학자 케이트 레이워스(Kate Raworth)가 지난 9월 27일 ‘서울미디어시티 비엔날레 2018’에서 한 얘기다. ‘도넛모델’과 ‘도넛경제학’으로 유명한 그는 “‘성장이란 무엇인가’를 스스로에게 묻는 것이 이 시대 진정한 경제학적 질문”이라며 “성장의 기준은 GDP가 아니라 ‘삶의 질’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이상,《동아일보》"GDP 중독, 불평등 키우고 환경 해쳐.. 삶의 질이 성장 기준 돼야 인류 생존" 2018.09.28.자에서 인용)(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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