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행복보고서2020
핀란드,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아이슬란드 등 5개 북유럽 국가는 2013년부터 발표된 <UN 세계행복보고서>에서 매번 상위 10위 안에 들었다. 특히 2017, 2018, 2019년에는 1, 2, 3위를 북유럽 국가가 휩쓸었다. 북유럽 국가들은 평균적인 삶의 만족도도 높지만, 민주주의 성숙도, 정치적 올바름, 반부패, 사회적 신뢰, 안전한 사회, 사회통합, 성평등, 소득의 평등한 재분배, 인간개발지수 등 다른 여러 국제지표 비교에서도 항상 최상위에 오른다. 2020년에 이어 2021년에도 핀란드와 덴마크가 각각 1,2위를 차지했다(4년 연속).아이슬란드는 4위, 노르웨이 5위, 스웨덴은 7위에 올랐다(한국은 작년보다 한계단 떨어진 62위에 랭크됐다).
왜 북유럽 국가는 이럴까? 가장 오래되고 널리 퍼진 이야기는 북유럽의 인구밀도가 낮고 외부 인구유입이 적어 인구의 동질성이 높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소수의 백인들끼리만 잘사는 나라’라는 얘기다. 다른 한편으로는 춥고 우중충한 날씨와 높은 자살률을 근거로 북유럽 사람들이 알려진 것처럼 행복하지는 않다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다.
지난해 3월에 발표된 <세계행복보고서 2020>은 “북유럽 예외주의: 왜 북유럽 국가는 항상 행복한 나라 상위에 오르는가? (The Nordic Exceptionalism: What Explains Why the Nordic Countries are Constantly Among the Happiest in the World)라는 섹션을 통해 북유럽 국가의 행복비결을 상세하게 다루면서, 북유럽의 행복을 둘러싼 오래고 흔한 소문의 진실을 파헤쳤다.
북유럽에 대한 오해 1 : 춥고 흐린 날씨의 북유럽의 삶이 만족스러울 리 없다?
행복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따뜻한 날씨다. 중남미와 동남아시아 사람들이 긍정적인 감정이 높은 이유는 이런 기후 영향이 크다. 이에 반해 북유럽 날씨는 겨울은 길고 어둡고 춥다. 사람들이 삶의 만족도를 평가할 때 날씨에 따라 값이 변하는 것은 사실이다. 너무 덥거나 너무 춥거나 비가 많이 오면 삶의 만족도가 낮아진다.
그러나 날씨에 따른 만족도의 변화는 그리 크지 않은 데다 사람들의 기대와 계절의 변화에 따라 달라진다. 예를 들어 아열대 기후에 사는 이들은 계절변화가 없는 지역에 사는 사람에 비하면 겨울에 더 행복하고 봄에는 덜 행복한 것으로 나온다. 사람들이 평균날씨에 적응하다 보니, 주어진 날씨에 익숙해지고 나면 날씨는 삶의 만족도에 별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따라서 갈수록 심각해지는 기후변화 때문에 날씨가 따뜻해지고 이것이 북유럽 국가처럼 추운 지역에 사는 이들의 삶의 만족도 증가에 미약하게 영향을 미칠 수는 있겠으나, 현재 자료를 바탕으로 볼 때 북유럽 행복의 증가나 감소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UN 행복보고서 2020>은 밝혔다.
북유럽에 대한 오해 2: 자살률이 높은데 행복하다고 말도 안되는 얘기?
북유럽의 자살률은 다른 유럽국가에 비해 높지 않다. 핀란드가 1970년대와 80년대에 상대적으로 높은 자살률을 보인 것은 사실이나 이후에는 급격하게 낮아졌다. 오늘날 북유럽 국가의 자살률은 유럽 평균 수준이며 프랑스, 독일, 미국과 비슷하다.
북유럽과 같이 부유한 나라가 가난한 나라에 비해 높은 자살률을 띠는 경향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높은 삶의 만족도를 보이는 곳은 자살률도 낮다. 예를 들어 높은 사회적 자본과 제 기능을 하는 정부가 있는 나라는 높은 수준의 주관적 웰빙과 낮은 자살률을 기록한다. 그러므로 ‘북유럽 사람들은 행복하지만 자살을 많이 한다’는 식의 역설은 오래된 자료에서 근거한 것으로 보이며, 실제로 북유럽의 자살률은 특별히 높지 않다. 높은 삶의 만족도와 낮은 자살률에 영향을 주는 요소가 비슷하다는 이론적 모델 역시 현시대에 맞지 않는다.
북유럽에 대한 오해 3 : 북유럽의 행복도가 높은 것은 인구규모가 적고 이민과 난민 유입이 적기 때문이다?
흔히 인구규모가 작고 동질성이 강한 북유럽 같은 곳은 크고 다원화된 나라에 비해 복지사회를 건설하기가 쉽다고들 한다. 하지만 연구에 따르면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인구규모와 삶의 만족도 간에는 상관관계를 찾을 수 없다.
게다가 작은 나라는 대개 큰 나라에 비해 동질성을 갖기가 어렵다. 사실 오늘날의 북유럽 국가는 매우 다원화되어 있으며, 스웨덴 인구의 19%가 스웨덴 이외의 국가에서 태어났다. 물론 몇몇 경험 연구를 보면 민족의 다양성이 증가할수록 사회적 신뢰가 감소한다고 한다. 인종적 다양성을 띤 사회는 공공재를 생성하고 공유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하지만 에릭 우슬라네르는 이것이 인종적 다양성 그 자체 때문이 아니며, 거주지역의 인종적 분리야말로 사회적 신뢰를 갉아먹는다고 주장한다. 이를 입증하는 근거로, 문화나 언어 장벽보다 경제적 격차가 사회 공공재 생산과 공유에 더 큰 장애물이라는 연구결과가 있다.
샤론과 로스테인(Charron & Rothstein)은 연구결과 ”사회적 신뢰에 있어 민족의 다양성이 미치는 영향이 정부의 노력에 따라 달라지며, 북유럽 국가와 같이 높은 수준의 제도를 갖춘 곳에서는 민족의 다양성이 사회적 신뢰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밝혔다. 나아가 2018년 <UN 세계행복보고서>에 따르면 한 나라의 이민자 비율은 현지에서 태어난 주민의 행복지수에 영향을 미치지 않고, 행복한 나라 10위권 안에 든 나라의 해외 출생 인구 비율의 평균이 17.2%에 이른다. 이는 세계 평균의 두 배에 이르는 수치이다.
다른 몇몇 연구 역시 전체 인구 중 이민자의 비율이 현지 출생 주민의 행복에 부정적이기보다는 작지만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으로 보았다. 그러므로 ‘단일민족’은 북유럽 행복에 대한 설명이 되지 못한다. 게다가 한 나라의 이민자는 그 나라에서 태어난 사람과 비슷한 행복을 누리는 경향이 있다. 다른 나라에서 태어난 인구, 즉 이민 인구가 느끼는 행복이야말로 핀란드, 덴마크, 노르웨이, 아이슬란드가 상위 4위, 스웨덴이 7위에 오른 북유럽의 높은 행복지수를 설명 할 수 있을 것이다. 북유럽 국가의 웰빙은 그 나라로 이주한 이들에게 확장된다.
북유럽의 진짜 행복비결은 높은 수준의 사회적 신뢰
북유럽의 행복을 둘러싼 오래된 소문과 편견들은 북유럽이 행복한 나라임을 인정하기 싫어하거나 시기하는 입장에서 지속적으로 유포돼 온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북유럽의 진짜 행복비결은 무엇일까? <UN 세계행복보고서 2020>은 대표적인 요인으로 공공기관의 수준을 꼽았다. 북유럽의 공공 시스템은 믿을 수 있고, 광범위한 복지서비스를 제공하며, 부패가 거의 없고, 민주주의와 사회제도가 제 기능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북유럽 시민들은 높은 수준의 자치권과 자유를 누려왔으며, 서로에 대한 높은 신뢰를 갖고 있다. 이것이 삶의 만족도를 결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보고서는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