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세계행복보고서 분석
제1회 대한민국 행복정책페스티벌이 열리고 있던 광주, 세계행복의 날(3월 20일) 새벽, 한 국내언론이 쓴 2021년 한국의 행복 순위가 50위에 올랐다는 단독기사를 스마트폰으로 보았습니다. 작년 61위였는데 11위나 올랐다고? 이렇게 파격적으로 순위가 오른 적이 없어 반신반의 했지만, 작년 세계가 Covid-19 팬데믹으로 고통받고 있었지만 대한민국은 K방역으로 상대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그게 반영된 것이 아닐까 추측했습니다. 그러나 이 ‘혹시나’ 하던 기대는 몇 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역시나’하는 실망으로 바뀌고 말았습니다. 2020년 조사 가능했던 95개국 중 50위라는 것이 드러났기 때문이지요. 95개국만 한정해서 살펴보면 작년에는 49위였으니 오히려 한 단계 떨어진 것입니다.
매년 발표하는 행복국가 순위는 최근 3년 기간의 평균값을 토대로 조사됩니다. 2021년은 2018년에서 2020년까지, 2020년은 2017년에서 2019년까지의 평균값을 조사해 발표하는 것이지요. 2018~19년에는 156개국을 대상으로 조사했으나 2020년에는 153개국, 2021년에는 149개국으로 줄어들었습니다. 코로나 19로 인해 조사가 힘들어져 그런 것 같습니다.
한국의 행복순위, 왜 떨어졌을까?
조사결과 작년 61위였던 한국의 순위는 62위로 한 계단 더 내려 앉았습니다. 한국은 그동안 2016년 58위, 2017년 55위, 2018년 57위에서 2019년 54위 등 매년 55위에서 58위 사이 순위를 오르락내리락했습니다(그 이전에는 40위권이었던 적도 있었답니다). 그러면서도 60위 밖으로 떨어진 적은 한 번도 없었지요.
그러다 작년(2020년) 60위로 일곱 계단이나 주저앉더니 올해는 한 계단 더 내려 앉은 것입니다. 왜 이렇게 된 것일까요? 어느 분야 지수가 안 좋아져서 그런 것일까요? 이를 시각적으로 쉽게 볼 수 있게 하기 위해, 2018년부터 2021년까지 세계행복보고서의 관련 자료를 종합해 아래 표로 만들어 보았습니다.
<세계행복보고서>(World Happiness Report) 상 연도별 행복 순위 및 분야별 순위
행복도를 평가하는 데는 다음과 같은 6가지 기본 요인을 조사합니다. 위 표의 ➀~➅까지 항목, 즉 1인당 GDP, 건강기대수명, 사회적 지원(지지), 삶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 관대함(기부), 부패에 대한 인식 등 6가지 요소를 최근 3년 동안의 평균치를 조사하는 것이지요. 하나씩 살펴볼까요?
행복한 지표 3(4)가지
먼저 ➀GDP입니다. 1인당 GDP(Per-Capita GDP)는 2018년 28위에서 2021년 25위로 3계단 상승했습니다. 3만 5천달러에서 4만 2천달러로 국민소득 4만불 시대를 열었습니다. 전 세계 150여 개국 중 25위라니 자랑할 만 하지요? GDP는 이렇게 크게 올랐는데 왜 한국인들의 행복도는 더 떨어진 것일까요?
자랑할 만한 지표는 또 있습니다. 매년 조사 때마다 최상위권(10위권 이내)에 랭크되는 ➂건강 기대 수명(Healthy Life Expectancy)이 그것입니다. 2018년에는 4위까지 올랐었고, 2019년에는 9위, 2020년 8위, 2021년 7위 등 늘 10위권 이내에 든 자랑할 만 한 지표입니다.
눈여겨 볼 것은 ➅부패에 대한 인식(Perceptions of Corruption) 항목입니다. 이 지표는 부정성 평가 지표로 랭킹이 낮으면 낮을수록 좋은 것입니다. “부패가 (자국)정부 전반에 널리 퍼져 있습니까?”와“부패가 (자국)기업 내에 퍼져 있습니까?”라는 두 질문에 대한 평균응답률을 조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행복국가라는 북유럽국들은 보통 130위 후위에 랭크됩니다. 올해도 덴마크 138위, 핀란드는 137위, 스웨덴은 136위로 조사되었습니다.
대한민국은 표에서 보듯 2018년 39위였습니다. 이는 2015년~17년 기간을 대상으로 한 지표로 바로 박근혜 정부 시기입니다. 이 기간 동안 우리 국민들은 정부에 대한 부패인식도가 매우 높아 정부에 대한 신뢰가 별로 없었음을 보여줍니다. 이렇게 부패 인식도 상위권이었던 대한민국은 올해 92위로 53계단이나 큰 폭으로 낮아졌습니다. 2019년에는 49위로 전년 대비 10계단 내렸고, 2020년에는 71위로 22계단이나 낮아졌습니다. 그리고 2021년 올해는 다시 21계단 내려앉았지요. 문재인 정부 들어 가장 큰 폭으로 개선된 지표라 할 수 있습니다. 박수칠 만 합니다. 내년에는 100위권 밖으로 밀려나길 기대해 봅니다.
이렇게 6가지 지표 중 ➀1인당 GDP ➂건강 기대 수명 ➅부패 인식 이 세 가지는 대한민국이 자랑할 만한 지표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외에도 ➄관용(지난달 자선단체에 기부한 사람의 비율) 또한 비교적 나쁘지 않은 지표입니다. 40위권에서 50위권으로 열 계단 쯤 내려오긴 했으나 그래도 상위권에 속하는 성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올해 하락폭이 매우 커서(코로나 때문?) 내년에도 이런 추세가 이어질 지 관심 갖고 살펴봐야할 듯합니다. 이 항목의 최상위권에 인도네시아(1위) 미얀마(2위) 영국(3위) 태국(4위) 순으로 위치하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이 기부항목은 종교기관에 기부한 것을 포함한 내용이 아닌가 추측해 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구요.
다시 돌아와 질문합니다. 소득도 높아지고 건강 기대수명도 여전히 높으며 부패인식도 개선되고 있는데 왜 한국인들은 점점 더 불행해져 가고 있을까요? 그에 대한 해답은 나머지 2가지 지표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여전히 불행한 지표 2가지
먼저 ➁사회적 지원(지지) 분야입니다. 이 지표는 거의 순위 변동 없이 100위권 언저리에 맴돌고 있습니다. 2018년 95위(0.798) 였는데, 2019년 91위(0.809)로 약간 올랐다가 2020년에는 다시 99위로 내려앉았습니다. 2021년에는 97위로 두 계단 오른 것처럼 보이지만 점수는 0.799로 동일합니다. 해가 바뀌어도 변함없다는 것이지요. 이 지표는 “문제가 생겼을 때 필요할 때마다 도움을 줄 수 있는 친척이나 친구가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대한 응답률입니다. 이 질문에 우리나라 사람들 중 약 80%가 ‘그렇다’고 대답했다는 조사결과입니다. 꽤 높은 응답률로 보이시지요?
다른 나라는 어떨까요? 세계 최고 행복국가로 알려진 북유럽국가들은? 이번 조사에서 아이슬랜드가 1위(0.983), 노르웨이, 덴마크, 핀란드가 모두 0.954점으로 공동 2위를 차지했습니다. 모두 0.95점 이상입니다. 이들 나라 국민들은 위 질문에 열이면 열 ‘YES!’라는 답변을 했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한국의 위 지표(0.799)를 뒤집어 보면 우리 국민의 20%, 즉 5명 중 1명은 자신이 어려울 때 도움을 청할 사람이 없이 완벽히 고립돼 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사회적 관계의 단절을 말해주는 가슴 아픈 지표라는 것이지요. 저는 이 지표야말로 우리 국민의 행복도를 저해하는 가장 치명적인 지표라 생각합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자살률이라는 데이터와도 밀접히 관련 있는 지표라 생각하구요.
이보다 더 심각한 지표가 있습니다. 바로 ➃삶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그것입니다. 구체적으로는“당신은 당신의 삶에서 무엇을 할 것인지 선택할 수 있는 당신의 자유에 만족하십니까 불만족하십니까?”라는 질문에 대한 응답률입니다. 부끄럽게도 한국이 매년 조사 때마다 최하위권을 맴돌고 있는 지표입니다. 2018년 139위(0.580), 2019년 144위(0.574), 2020년 140위(0.613)로 매년 140위권을 오르락내리락하다가, 2021년에는 그나마 12계단이나 뛰어 올라 128위(0.672)에 랭크되었습니다. 점수도 0.6 수준에서 0.7 수준에 가깝게 올랐습니다. 삶의 선택의 자율성이 있다고 응답한 국민이 열에 6명 정도에 불과했었는데, 이제 7명 가까이로 조사되었다니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는 일입니다.
이 또한 뒤집어 보면 한국인들 열에 서넛은 삶을 선택하는 데 자율성이나 자유가 없는 삶을 살고 있다는 말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불행한 것이지요. 학교나 직장을 선택할 때 자신의 자유의지에 따라 선택하는 비율이 한국인들은 절반 조금 넘는 수준밖에 안된다는 현실을 말해주는 참으로 우울한 지표입니다. 부모들의 뜻에 따라 학교를 선택하고 점수로 학과를 선택하며, 직장 또한 자기 적성에 맞아 선택하는 게 아닌 사람들이 많은데 어찌 행복할 수 있겠습니까?
이 항목의 최상위 랭킹을 살펴보았더니 놀랍게도 우즈베키스탄이 0.970점으로 1위를 차지했습니다. 이어 노르웨이(0.960) 캄보디아(0.959) 아이슬란드(0.955) 핀란드(0.949) 슬로베니아(0.949) 덴마크(0.946) 순입니다. 북유럽국가들이 대부분이지만 우즈벡과 특히 캄보디아가 눈에 띠네요. 한국인들은 캄보디아 국민들보다 행복하다 할 수 있을까요?
흥미로운 긍정적 감정과 부정적 감정 조사결과
다음으로 흥미로운 조사결과가 있습니다. 행복국가 랭킹에는 반영되지 않는 조사이지만 매우 흥미롭습니다. 2019년부터 조사 발표되기 시작한 긍정적 감정(Positive Affect)과 부정적 감정(Negative Affect)이 그것입니다. 조사결과 한국은 긍정적 감정은 매년 100위권, 부정적 감정은 110권에 랭크되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전자는 행복, 웃음 및 즐거움 등 세 가지 질문에 대한 응답률의 평균으로 조사됩니다.“요즘 다음과 같은 감정을 경험했습니까? 행복하신 적은? 웃으신 적 있으신가요? 즐거우셨나요?”후자는 ‘걱정, 슬픔, 분노’등 세 가지 부정적인 영향 측정의 평균으로 조사됩니다. 구체적으로는,“요즘 다음과 같은 감정을 경험했습니까? 걱정하신 적은? 슬퍼하신 적은요?”,“분노하신 적은 없으세요?”우리도 한번 스스로 묻고 대답해 볼만 합니다.
전자(긍정적 감정) 조사에서 우리나라는 재작년 101위, 작년 99위 올해는 103위로 낮게 랭크되었습니다. 점수는 평균 0.66점 수준이었습니다. 이 항목의 최상위 국가들은 파나마(0.883), 인도네시아(0.876), 과테말라(0.873), 라오스(0.870), 온두라스(0.862), 코스타리카(0.859) 순입니다. 평소 낙천적 성격이라는 인종적 기후적 특성이 크게 작용한 것 같습니다.
행복하다는 북유럽국가들의 순위는 어떨까요? 아이슬란드가 12위, 덴마크 17위, 노르웨이 23위, 스웨덴 31위, 핀란드 53위 등 일 년에 절반 정도밖에 해를 볼 수 없는 북유럽국가 국민들도 긍정적 감정이 비교적 높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건 인종적 유전적 특징과는 다른 요인이 작용했을 거라 생각합니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높은 신뢰와 사회적 관계, 삶의 선택의 자유가 높으며, 강력한 사회복지 안전망 등이 어우러져 작용한 결과로 보는 것이지요.
후자(부정적 감정)는 부정평가여서 순위가 낮을수록 좋은 조사결과입니다. 이 조사결과 한국은 평균 약 0.2점으로 부정적 감정을 느끼는 국민들이 20% 정도 밖에 안된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나머지 80%는 특별히 부정적 감정을 느끼지 않으며 생활한다는 것이지요. 긍정적 감정이 높지 않으면 부정적 감정이 높을 듯한데, 그저 그렇게(감수하며) 살고 있는 걸까요? 흥미있는 조사결과가 아닐 수 없습니다.
부정적 감정이 가장 낮은 국가는 대만(147위/0.090), 싱가폴(146위/0.123)이었고 북유럽 국가 중 아이슬란드는 141위(0.175), 핀란드는 139위(0.185)로 조사되었습니다. 부정적 감정이 가장 높은 국가는 이라크로 0.496점, 2위는 차드(Chad) 0.495, 이어 이란 0.470, 아프가니스탄(0.459) 순으로 나타났습니다. 대부분 내전이 극심한 나라들로 이 나라 국민들의 절반은 늘 부정적(불행한) 감정을 경험한다는 것이지요. 굳이 부연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평화야 말로 행복의 기본 조건이라는 생각을 새삼 하게 될 뿐...
눈여겨 볼 것은 우리 국민의 부정적 감정 비율(20%)과 사회적 지원 응답률이 유사하다는 점입니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사회적 지원 지표(0.799)를 뒤집어 보면 우리 국민의 20%, 즉 5명 중 1명은 자신이 어려울 때 도움을 청할 사람이 없이 고립돼 있다고 했습니다. 그 비율과 완전히 동일하다는 것이지요. 사회적으로 고립돼 있을수록 ‘걱정, 슬픔, 분노’등 부정적 감정이 높을 수밖에 없겠지요.
대한민국이 좀 더 행복해지려면(행복랭킹 올리려면)
2021년 행복랭킹은 한 단계 내려갔지만 부패인식도는 크게 개선되었고 삶의 선택의 자유 분야도 상승하여 저는 긍정적으로 평가합니다. 그러나 100위권에 정체돼 있는 사회적 지원 분야가 개선되지 않는 한, 삶의 선택의 자유 분야가 좀 더 긍정적 비율로 바뀌지 않는 한 한국인의 행복도는 소득이 올라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대한민국이 좀 더 행복해지려면(행복랭킹을 올리려면) 바로 이들, 사회적으로 고립되어 있고 항상 걱정과 슬픔 분노에 사로잡혀 살고 있는 20%의 국민들이 누구인지 찾아내고, 이들이 사회와 관계 회복할 수 있도록 세심한 정책을 펼쳐, 이들이 좀 더 행복해지고 웃음과 즐거움을 찾을 수 있도록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또한 우리 국민들 특히 청(소)년들이 초경쟁 사회에서 벗어나 삶의 선택의 자유를 누릴 수 있도록 정부는 특별한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내년에는 이 분야 지표가 개선되어 좀 더 행복한 나라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