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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훈 Mar 29. 2021

예수와 붓다가 가르쳐 준 행복에 이르는 8가지 길

예수와 붓다, 그리고 8이란 숫자

                                                                                                                                                                                                                                                                                                                                                         


예수와 붓다, 그리고 8이란 숫자


이런 저런 자료를 찾다가, 11세기 티벳의 성자 랑리 탕빠(Langri Tangpa)의 ‘8가지 서원’(Eight Verses of Training the Mind by; Master Langri Tangpa (1054~1123))을 처음 접하게 되었다. 달라이 라마가 매일 암송한다는 기도문이라는 데, 그 내용이 매우 감동적이다(국내에는 ‘마음을 다스리는 8가지 게송’이라는 의미의 ‘수심팔송(修心八頌)’또는 ‘8가지 가르침’이란 뜻의 ‘수심팔훈(修心八訓)’으로 소개돼 있기도 있다).


랑리 탕빠의 ‘8가지 서원’


1.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최상의 행복을 얻기 바라오니, 항상 그들을 이 세상의 어떤 값진 보물보다 더 소중하게 여기게 하소서.


2. 사람과 함께 할 때마다 언제나 내 자신을 가장 낮은 존재로 여기고,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상대방을 최고로 소중하게 여기게 하소서.


3. 내 모든 행동을 스스로 지켜보게 하시고, 내 마음속에서 파괴적인 감정이 일어나는 순간 - 그 마음이 나 자신과 타인에을 해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 - 담대하게 맞서 그 마음이 없어지게 하여 주소서.


4. 나쁜 성격을 갖고 있거나 무거운 악행과 고통에 억눌린 이들을 볼 때면, 마치 귀중한 보물을 찾은 것처럼 그들을 소중히 여기게 하소서.


5. 누군가 시기아 질투로 나를 욕하고 경멸해도, 순수한 마음으로 패배하게 하시고 승리는 그들에게 돌려주소서.


6. 내가 도움을 주었거나 큰 희망을 두었던 사람이 나에게 큰 마음의 상처를 줄 때, 그를 최고의 영적 스승으로 여기게 하소서.


7. 내가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모든 어머니들에게 도움과 기쁨을 줄 수 있게 하시고, 남들이 모르게 그들의 상처와 고통을 대신하게 하소서.


8. 이 모든 서원을 지키게 하시고, '8가지 세속적 관심'으로 인해 오염되지 않게 하소서. 모든 것이 환상이며 헛된 것임을 깨달아 집착을 떨쳐 버리고 모든 속박에서 자유롭게 하소서.


여기서 ‘행복을 방해하는 세속의 8가지 관심’은 다음을 얘기한다.


1. 돈이나 물질의 소유로 인한 기쁨

2. 소유물을 잃어버리거나 얻지 못할 때 생기는 실망과 분노

3. 다른 사람이 우리를 칭찬하고 인정하며 멋지다 할때 느끼는 기쁜 감정

4. 다른 사람이 우리를 비판하고 비난할 때 느끼는 분노와 낙담

5. 좋은 평판과 좋은 이미지를 갖게 되었을 때 느끼는 기쁜 감정

6.평판이 좋지 않을 때 느끼는 좌절감과 분노

7.환상적인 광경, 소리, 냄새, 미각, 촉감으로 느끼는 감각적 즐거움을 경험하며 느끼는 기쁜 감정

8. 불쾌한 감정이었을 때 느끼는 분노와 좌절감


이 여덟 가지만 조심하면 행복해 질 수 있다는 것으로, 어떤 일이 일어나도 기쁨과 분노를 잘 다스려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행복의 주적으로 물질주의를 일차적 원인으로 설정하고 있는 점도 주목된다.


이 서원을 접하며 문득 두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먼저 위 여덟 가지 서원과 비슷한 구절을 어디선가 본 기억이 있다는 생각. 기억을 더듬어 보니, 신약성서에 있었다. 대한성서공회가 발간한 공동번역 성경 <(바울이)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 12장 13절과 14절 사이에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새 생활’이란 소제목 아래, 다음과 같은 내용이 실려 있다.


바울이 로마인에게 보낸 편지 8구절


14(1). 여러분을 박해하는 사람들을 축복하십시오. 저주하지 말고 복을 빌어주십시오.


15(2). 기뻐하는 사람이 있으면 함께 기뻐해 주고 우는 사람이 있으면 함께 울어주십시오.


16(3). 서로 한마음이 되십시오. 오만한 생각을 버리고 천한 사람들과 사귀십시오. 그리고 잘난 체하지 마십시오.


17(4).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이 다 좋게 여기는 일을 하도록 하십시오.


18(5). 여러분의 힘으로 되는 일이라면 모든 사람과 평화롭게 지내십시오.


19(6). 친애하는 여러분, 여러분 자신이 복수할 생각을 하지 말고 하느님의 진노에 맡기십시오. 성서에도 "원수 갚는 것은 내가 할 일이니 내가 갚아주겠다." 하신 주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20(7). 그러니 "원수가 배고파하면 먹을 것을 주고 목말라하면 마실 것을 주십시오. 그렇게 하면 그의 머리에 숯불을 쌓아놓는 셈이 될 것입니다."


21(8). 악에게 굴복하지 말고 선으로써 악을 이겨내십시오.


이 또한 랑리 탕빠의 서원처럼 8꼭지다. 이 구절을 다시 읽으며 먼저 생각났던 건, ‘얀테의 법칙’이었다. 16절의 ‘잘난 체 하지 말라’는 가르침이 바로 그것. 배려와 겸손의 미덕을 상징하는 북유럽 문화의 정수로 루터교에서 비롯된 것으로만 추정했었는데, 그 뿌리가 되는 성서구절을 찾은 셈이다.


흥미로웠던 것은 위 바울의 편지가 어찌나 랑리 탕빠의 기도와 흡사한 지였다. 고등종교의 가르침은 비슷한 점이 많다지만(사랑과 자비 등), 이렇게 구구절절(수와 내용) 유사할 수 있나?


다음으로 떠오른 생각. 동서양을 막론하고 8(八)이란 숫자는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중국인들이 8이란 숫자를 제일 좋아한다고는 들었으나, 이는 돈을 번다는 뜻과 관련된 발음과 관련된 것이라 하니, 설마 그런 뜻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려니 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성서 구절은 예수님의 산상수훈 중 이른 바 ‘팔복(八福)’이다. 여러 성서 버전이 있으나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보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로 표현되는 천주교 성경 버전을 좋아한다. 행복공부하면서 더욱 그렇게 됐다(여기엔,‘참행복’이란 소제목이 붙어 있다).


예수의 산상수훈 팔복(八福) : 참행복(마태오복음 5:3~10)


1.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2. 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3. 행복하여라, 온유한 사람들! 그들은 땅을 차지할 것이다.

4. 행복하여라,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그들은 흡족해질 것이다.

5. 행복하여라, 자비로운 사람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

6.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

7.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

8. 행복하여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모두 8가지 참행복의 비법(!)을 예수께서 직접 가르쳐 주고 계신 것이다.  한편 8이란 숫자는 불교에서 더 의미 깊게 쓴다. 불법을 수호하는 여덟 수호신을 일컫는 ‘팔부신장(八部神將)’과 ‘8정도(八正道)’가 대표적이다.  


팔정도(八正道)  


1. 정견(正見) : 바른 견해

2. 정사(유)(正思(惟)) : 바른 사유(생각)

3. 정어(正語) : 바른 얘기(말)

4. 정업(正業) : 바른 행동

5. 정명(正命) : 바른 생활

6. 정정진(正精進) : 바른 노력(정진)

7. 정념(正念) : 마음 챙김(MBSR)

8. 정정(正定) : 바른 통찰(위 종합)


이렇게 열반에 이르는 ‘8가지 바른 길’을 붓다께서는 가르쳐 주셨다. 흥미롭게도 예수도 붓다도 모두 8가지의 가르침을 주고 있는 것. 일찍이 영성운동가인 류기종 박사(목사)는 팔정도와 팔복을 다음과 같이 비교했다.


“예수 그리스도의 팔복의 말씀은 어떤 의미에서는 신구약 성경 전체의 요약으로 보여 지며 동시에 예수의 복음(가르침)의 집약으로 느껴진다. 왜냐하면 이 팔복의 말씀 속에 우리 인간과 하나님과의 관계,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에 관련된 모든 원리가 다 함축되어 있음과 동시에, 우리 인간 즉 개인과 가정과 공동체 나가가서는 전 인류 공동체의 궁극적인 평화실현 곧 천국화에 이르는 방법들이 다 함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예수의 팔복은 붓다(불교)의 팔정도에 대비되는 가장 중요한 영성원리(basic principles of spiritual formation)라고 말할 수 있다” (류기종 2011.2.20~3.13, " 팔복과 팔정도",<당당뉴스>. 이하 동)


이러한 관점에서 그는 팔정도와 팔복을 다음과 같이 대비시켰다.


류기종 박사의 팔정도와 팔복 대비


1. 정견(正見)과 겸허(謙虛)(마음이 가난한 자)

2. 정사(正思)와 영적 애통 (슬퍼하는 자)

3. 정언(正言)과 온유(溫柔)

4. 정업(正業)과 의사모(義思慕)

5. 정명(定命)과 자비(慈悲)

6. 정정진(正精進)과 청정심(淸淨心)

7. 정념(正念)과 평화(平和)

8. 정정(正定)과 의(義)를 위한 고난  


조금 무리한 대비라는 생각도 들지만 놀랍게도 일부 내용은 유사한 가르침으로 해석될 만하다. 이렇게 행복에 이르는 길은 동서양과 종교의 다름을 막론하고 유사하다.


이 글은 행복한 나라의 8번째 공통점을 찾다가 8이란 숫자에 꽂혀 종교를 찾게 되면서 쓴 글이다. 또한 행복한 나라라 불리어지는 부탄과 코스타리카, 덴마크 등 북유럽국가들이 모두 국교(國敎)를 가지고 있다는 점도 주목했다. 부탄은 티벳불교, 코스타리카는 로마가톨릭, 북유럽국가는 루터교다.


종교는 틀려도 두 가지 가르침은 동일한 것 같다. ‘이타심'을 가지고  ‘물질주의’는 멀리하라는 가르침이 그것이다. 이 두 가지가 사람들의 행복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라는 말. 사람들의 행복은 개인의 가치관에 달려 있지만 그 주변 사람들의 가치관과도 밀접히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행복은 그 본성이 시민적이며 ‘공공행복’이라는 것을 기억하자.


이타심과 물질주의 배격, 행복한 나라들의 공통점


행복한 나라 사람들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마태7:12)는 예수님의 산상수훈을 보편적 가치로 받아들인다. 앞의 랑리탕빠의 8가지 서원처럼. 부처님의 가르침도 마찬가지다.


바로 이 가치가 바로 모든 종교 계율에서 최상위를 차지하는 황금률(golden rule)이이다. 이렇게 살기는 쉽지 않지만 심리학적 측면에서는 남을 돕는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더 행복하다는 명확한 데이터를 가지고 있다. 남을 돕는다는 것은 사회적 신뢰와 관련이 있고, 협동의 가치와도 관련이 있다. 공동체에서 행복은 바로 이 협동의 가치에 의존한다. 세계의 대다수 종교들 또한 이런 원리를 가르친다. 그래서 세계행복보고서에는 행복도를 측정하는 6가지 기준 중 하나로 이타심을 측정하는‘기부’ 항목을 두어 조사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대부분의 종교는 물질적 부를 과도하게 추구하지 말 것을 가르친다. 다른 조건이 동일할 경우 돈을 중시하는 사람들이 덜 행복하다고 여러 연구결과에 보고돼 있기 때문이다(우리 국민들이 불행한 이유는 물질주의에 심각하게 빠져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특히 가난한 나라들에서는 보다 종교적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더 긍정적 감정을 경험하는 경향이 있다고 세계행복보고서는 얘기한다.


그 단적인 사례가 바로 부탄이다. 이는 굳이 설명이 필요 없겠다(여러번 살펴 보았으므로). 코스타리카가 중남미 국가 중 독보적인 행복한 나라가 된 데에는 낙천적인 인종적 특성도 있지만, 로마카톨릭을 국교로 받아들이면서 자연스레 생긴 사회통합적 기능도 일정하게 작용했다고 본다. 북유럽은 잘 살지만 검소함이 몸에 배어 있고 사회적 신뢰가 두텁다. 이 또한 국교인 루터교의 영향을 부정할 수 없다.


대한민국은 어떠한가? 대한민국의 종교는 이들 나라의 종교처럼 이러한 보편적 가치를 잘 가르치며 국민들의 행복에 기여하고 있는가?


대한민국은 어느 종교를 막론하고 기복화되어 있다. 우리 자식 수능점수 높게 나오게 해주시고, 좋은 대학과 직장 들어가게 해주시며, 우리 가족 건강하게 해주시며, 사업 번영하게 해달라는 기도가 대부분이다. 기도하는 장소가 교회, 성당, 사찰로 다르고 기도대상만 다를 뿐! 나와 우리 가족만 잘되게 해달라는 기도 일색이다. 우리보다 훨씬 못사는 부탄사람들의 이웃들의 행복을 위해 기도하는 것과 대비된다.


심지어 어느 종교(교단)는 자신만이 정통이며 다른 종교와 교단은 이단이라 규정하며 정죄하고 배척한다(신천지만 이단인가?).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정죄, 차별에  적극 앞장서기까지 한다. 검소와 겸손 대신, 물질주의와 배금주의에 물들어 있으며, 저마다 거대한 교회 건축과 사찰 중창에 목매고 있다. 심지어 성직 세습까지 떳떳하게 저지른다. 종교가 우리 국민들의 아픔을 치유하고 행복에 기여하기 보다, 오히려 공공의 행복을 저해하는데 앞장서고 있는 것이다.


나이롱 신자의 짧은 지식이지만, 하느님이 성육신하여 오신 예수님의 유일한 가르침은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으로 안다. 그 중에서도 강도당한 사마리아 사람처럼 '가장 행복하지 않은 사람들'을 돌보라는 것이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여 우리 이웃들을 행복하게 해주지 못할망정, 정죄하고 배척하며 불행하게 하는데 앞장서고 있지는 않은 지 스스로 되돌아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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