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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예슬 Oct 16. 2016

말그림 그려보기

이미 너무나 익숙해져 버린 내 방에서부터 '낯설게 보기'

내가 지내는 셀시우스 가든은 따뜻한 햇살 밑에선 따뜻한 색이 되고, 회색빛 구름 아래선 차가운 색이 되는 적갈색 벽돌로 이루어진 지하 1층 지상 4층의 건물이다. 디귿 자 모양의 건물 앞 조그마한 광장에는 이곳에 사는 학생들의 자전거가 세워져 있고 나무 한 그루 주변을 감싸고 벤치가 있다. 건물 출입문 위에는 조명이 하나 달려 있는데 사각형으로 도도하게 각진 모양이다. 낮에는 도도하지만 밤에 집으로 돌아올 때 이 조명을 바라보면 아 오늘도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구나 하는 안도감을 안겨주는 따뜻한 매력도 가지고 있다. 출입문 옆에는 이 건물에 사는 모든 학생들의 이름이 방 호수와 함께 적혀 있다. 이따금 이 명단을 볼 때면 내가 정말 스웨덴에 살고 있구나 싶어서 갑자기 설레지다가도 불현듯 나의 개인 정보가 너무 쉬이 공개되는 것은 아닌가 걱정도 된다.

이 사진은 언제 찍어둔 걸까 왜

요즘처럼 날씨가 아주 추워진 날에는 출입문을 닫고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훈훈한 공기가 나를 훅 감싼다. 출입문 바로 옆에 설치된 라디에이터 덕분이다. 매일같이 이 복도와 계단을 오르내렸으면서도 그 존재를 알지 못했다. 추워지고 난 뒤 라디에이터 덕분에 안이 따뜻해지니 그제야 이곳에 이것이 있었구나 싶었다. 출입문 정면에는 육중한 진회색의 철문이 보이는데 이것은 엘리베이터 문이다. 엘리베이터를 기준으로 오른쪽으로는 올라가는 왼쪽으로는 내려가는 계단이 있다. 출입문을 닫고 바깥과 다른 훈훈한 공기를 느끼면 순간적으로 기분이 아주 좋아지는데 그것은 내 방이 있는 3층의 출입문을 열 때까지 이어지기에 충분하다. 엘리베이터를 기준으로 왼쪽에는 외국인 학생들이 오른쪽에는 대부분이 스웨덴인인 정규 학생들이 산다. 1층 기숙사의 출입문에서 누군가의 생일을 축하했었던 흔적이 남아있는 것을 눈으로 쫓고 2층 기숙사의 출입문에서 느끼하게 생긴 아저씨의 사진을 눈으로 쫓고 나면 이제 3층 기숙사 출입문이다. Welcome to the 3rd floor.


카드키를 대고 3층 안으로 들어서면 습관적으로 오른쪽으로 간다. 거실이 있는 곳이다. 거실 문은 열려 있을 때도 있고 같이 사는 친구들이 시끄럽다고 불평해 닫혀 있을 때도 있다. 버튼 하나만 누르면 닫히게 할 수 있는데 여는 것은 여전히 어떻게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세 개의 천 소파는 한국에 있는 우리 집 가죽 소파보다 편안하다. 소파 위에는 담요들이 널려 있어 내가 가끔 정신을 잃고 소파에 누워 있으면 마디나 아스트리드가 슬쩍 담요를 덮어준다. 텔레비전은 아직도 두께가 뚱뚱한 오래된 것인데 실제 방송을 보려면 화질이 너무 안 좋아서 눈이 나빠질 것 같다. 실제 방송보다 디브이디나 넷플릭스를 볼 때의 화질은 좀 나은 것 같다. 내가 집으로 돌아오면 거실에는 거의 재라, 마디, 그리고 데비가 있다. 재라와 마디는 무언가를 먹으며 넷플릭스를 보고 있을 것이고 데비는 누워있거나 노트북으로 그림 작업을 하고 있을 것이다. 오늘도 재라와 마디는 젤리를 먹으며 넷플릭스를 보고 있었고 재라는 신나서 지금까지 자기가 매일같이 그려 온 스케치북의 그림들을 내게 보여주었다. 자기 무의식 중의 우울이 분출된 것 같다는 평을 들었다고 덧붙이며 말이다. 거실에는 가끔 우리 층의 엄마로 불리는 부콜라나 아스트리드가 있기도 하다. 그들에게 내가 다녀왔다고 집에 돌아왔다고 말하고, 그들이 승인해주듯 맞인사를 해주면 그제야 나는 내 방으로 향한다. 내가 집에 돌아왔을 때 그들이 없으면 괜히 쓸쓸하다.


거실 문 앞에는 열 명이 사는 복도가 펼쳐져 있다. 3층 출입문 가까이에 있는 왼편 벽에는 우리 층 친구들의 우편함이 붙어 있다. 지난 3주간 편지를 기다리며 주말을 제외하고는 정말 매일 열어본 것 같다. 키가 큰 북유럽 친구들의 영향인지 내게는 우편함이 너무 높다. 요즘 우편함을 여는 열쇠가 여는 곳의 끝까지 잘 안 들어가는데 그럴 때마다 까치발을 하고 목을 치켜올린 상태가 꽤 오래 지속돼 매우 힘들다. 버텨보는데도 열쇠가 안 들어가면 짜증을 내면서 결국 잠시 쉬어가기로 한다. 신체적 고난을 넘어서서 우편함을 열었는데도 편지가 없어서 허무했던 지난 3주였는데 오늘은 드디어 하얀색 봉투가 날 반겨줬다. 옆에서 지나가던 데비가 말한다. 내 우편함을 열었는데 편지가 와 있어서 너무 신났어. 그런데 자세히 보니까 코리아라고 쓰여있는 거야. 9랑 7을 헷갈려서 9에 넣었나 봐. 그래서 내가 다시 네 우편함에 넣어뒀어. 고마워 데비야. 편지는 J가 보낸 거다.


우편함을 지나 첫 번째로 보이는 문이 내 방 문이다. 셀시우스 가든 연락 담당자인 하닌이 나를 데리고 이 방에 처음 들어오던 날 그녀가 내게 이 방은 이 층에서 제일 큰 방 중 하나라며 내가 운이 좋다고 말했던 그 날이 벌써 아득하다. 정말 텅 비어있었고 큰 봉투에 수건과 침구만 들어있었는데. 드디어 스웨덴 내 방에 도착했다는 안도감과 엄마와 아빠의 영향 없이 온전히 내가 처음부터 하나하나 꾸밀 수 있는 공간이 주어졌다는 설렘이 공존했던 것 같다. 가구의 구조는 그 날과 달라지지 않았지만 러그와 침대 옆 간편한 테이블로 쓸 만한 수납장이 새 식구로 들어왔다. 요즘은 창문을 향해 놓여 있는 침대, 러그, 수납장을 나란히 배치해두고 살고 있는데 침대와 수납장이 나름의 벽을 형성해서 러그 위에 앉아 있을 때마다 아늑한 공간 안으로 들어선 기분이 든다. 내 방 안의 또 다른 내 방인 셈이다. 이 근처 어딘가에는 앉는 부분이 살짝 뒤로 기울어져 있어 앉으면 누운 것도 앉은 것도 아닌 그 중간의 느낌을 주는 포근한 의자가 있다. 한국 내 방에도 하나 가져다 두고 싶은 의자다.


한국에서 가져 온 서양미술사, 정치적 평등에 관하여, 한국이 싫어서, 종의 기원, 이곳 저곳에서 사 온 엽서, 악세사리는 '내 방 속 방' 근처 창틀에 두고, 주요 서류들은 너무 높이 위치해 있어 잘 사용하지 않게 되는 책상 위 선반에, 세탁 세제와 비상 상비약, 집 열쇠는 옷장 옆 선반에 두었다. 옷장은 한국에서 쓰던 것의 삼분의 일 크기다. 옷이 많지 않은 편임에도 가져온 옷을 겨우 다 걸고 겉옷들은 옷장 옆 선반 밑에 걸어 두었다. 옷장 앞에는 신발들을 늘어 놓았고 옷장 반대편 벽에는 전신 거울이 보인다. 엄마 아빠가 없어도 내 방 곳곳이 내 생활에 맞춘 체계를 갖추어 가는 것이 신기하다. 그러나 공간적 배경이 달라도 그 안에 살아가는 나라는 사람의 핵은 변하지 않아서 결국 한국에서 지낼 때와 같은 상황이 자주 일어난다. 조금만 긴장을 풀면 방은 금세 지저분해진다. 제자리에 물건을 두지 않아 이리 저리 헤매고 옷은 벗은 뒤에 바로 걸어 두지 않아 쌓이고 만다.

사실 책상은 먹을 것들 때문에 자리가 부족한 걸지도 모른다.
초반엔 이렇게나 열심히 살았었는데

책상은 '내 방 속 내 방' 지역에서 다소 떨어져 있다. 떨어져 있다고 해서 아주 먼 것은 물론 아니다. 모든 것은 한 방에 들어 있으니까. 그러나 한국 내 방보다 훨씬 크다. 침구만 구비되어 있다면 과장을 조금 보태 열 명은 거뜬히 재울 수 있을 것 같다. 아무튼 책상이 있는 지역은 러그가 바닥을 덮지 않아서 특히 춥다. 책상에 앉아서 공부를 잘 안하는 것은 추워서 그런 거다. 의자의 높낮이를 조절할 수 있음에도 책상 앞에 앉을 때마다 허리가 아프다. 역시 책상과 잘 안 맞는 것 같다. 책상 상판은 방 안의 전반적인 분위기와 마찬가지로 베이지 톤의 나무 재질인데 넓지 않다. 노트북을 놓고서 동시에 필기라도 하고자 하면 금세 정신이 없어진다. 왼쪽엔 스탠드가, 정면엔 노트북이, 노트북 앞쪽과 오른쪽엔 종이 쪼가리들과 책들이 어수선하다. 책상 앞 벽에는 할 일과 마음에 드는 문구를 적어 둔 포스트잇들이 붙어 있다. 포스트잇 접착 부분이 힘을 잃어 가고 있어 곧 떨어질 것 같으니 테이프로 덧대 주어야겠다.

    

책상 왼쪽에는 화장실이 있다. 작은 화장실이라고 생각했지만 우리 층에 함께 사는 다른 친구들의 화장실을 보고서는 바로 내 화장실에 만족하기로 마음을 고쳐먹었다. 큰 편인 화장실이다. 세면대 위 거울은 내겐 너무 높아서 화장을 할 때면 늘 까치발을 들어야 한다. 화장실 왼쪽 벽은 아래 라디에이터 부분을 빼고는 모두 창문이다. 프라이버시를 위해 불투명한 재질로 된 창문이지만 햇살이 좋은 날엔 해가 화장실을 밝게 비춘다. 샤워 커튼은 내가 방에 도착했을 때 이미 달려있던 것이었는데 자주색을 베이스로 한 알록달록한 색깔의 줄무늬 모양으로 돼 있다. 아침에 일어나 비몽사몽 간에 샤워를 하면서 때때로 발견하는 작은 행복은 화장실 샤워커튼 안에서 샤워를 하면서 그 날의 날씨를 가늠해보는 것이다. 햇빛이 화장실 창문과 샤워커튼을 지나 물에 젖은 내 몸에 닿으면 살결이 물에 젖어서인지 샤워 커튼의 현란한 줄무늬가 내 몸에 비친다. 그런 날은 해가 잘 뜬 정말 화창한 날이다. 그런 날이면 밖에 나갈 준비를 하는 내내 그날의 날씨를 기대하며 즐거워진다.

    

러그 위에서 주로 생활하고 있다. 영화도 보고 밥도 먹고 일기도 쓰고 잠도 자면서. 침대 근처에서 자기 전에 책을 읽다 잠들고 싶은데 침대 가까이에 조명이 없다. 그래서 침대에 누워 책을 읽다 졸리면 졸림을 이겨내고 불을 끄기 위해 일어서야 한다. 어제는 처음으로 핸드폰 조명을 이용해서 책을 읽다가 잠들었는데 스스로 애쓴다 싶다가도 프랑스 캠프에서 같이 자는 친구들에게 방해 되지 않게 책을 읽으려 핸드폰 조명을 이용했던 기억이 나서 엉겁결에 추억 여행도 하고 책도 꽤 잘 읽었다. 지금 읽기 시작한 책은 옆 기숙사 수영오빠에게 빌려 온 이방인이다. 별 생각 없었는데 이곳에 적고 보니 이곳의 이방인으로서 이곳에서 이방인을 읽고 있구나 싶다. 아늑한 기분과는 달리 러그 위에 있어도 방 안은 춥다. 긴 팔 티셔츠 하나만으로는 으슬으슬해서 후드 집업을 늘 걸치고 지내는데 부쩍 그것도 부족한 느낌이 든다. 스웨덴에 겨울이 오고 있다. 물리적 추위 가운데서도 내 마음에 드는 아늑한 보금자리가 있어 마음은 따뜻하다.

Celsiusgården 30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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