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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예슬 Oct 25. 2016

Göteborg

내 집과 여행지 사이, 거주자와 여행자 사이

살이 많이 쪘다. 유학 가면 한 학기에 3kg씩 찐다는 속설이 있다는데, 나는 한국을 떠나기 전인 세 달 전보다 6kg나 쪘으니 속설은 그저 속설일 뿐임이 확인됐다. 아직 한 학기를 채 마치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세 달 전의 몸무게는 평소 유지하던 몸무게보다 6kg 정도가 빠진 상태였으니 '지금의 몸무게는 그저 평소대로 돌아온 것'이라고 위안을 삼는 중이다.


J와 예테보리에 있는 리세베리라고 하는 놀이공원에 가기로 계획했다. 마침 요즘은 할로윈 테마로 놀이공원이 꾸며져 있다고 해서 기대됐다. J와 나는 둘 다 무서운 롤러코스터를 잘 타는, 놀이공원 케미가 잘 맞는 사이라서 리세베리의 놀이 기구를 정복할 생각에 신이 났다. 멀리 가는 김에 놀이공원 뿐만 아니라 스웨덴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라는 예테보리도 하루쯤 구경하고 싶어 에어비앤비도 구했다.


요즘 내가 말뫼에서 제일 맛있는 Pronto의 치즈 케이크를 비롯해 설탕과 밀가루가 듬뿍 들어가 있는 쿠키와 빵을 섭렵하고 다니는 동안, J는 밀가루를 끊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 얘기를 듣고 긍정적인 자극을 받아 나도 밀가루를 끊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우리는 우리의 다짐을 잠시간 꽤 잘 지켰다. 아침에 말뫼를 떠나 점심 때 예테보리 중앙역에 도착했는데, 우리는 밀가루가 들어간 것을 피하기 위해 점심으로 샐러드를 먹었으니까. 그러나 점심을 먹은 후 Espresso House에서 파는 손바닥 만한 크기의 초콜릿 쿠키를 끝내 지나치지 못했다. 26크로나였던 그 쿠키를 보자마자 우리 둘은 서로 눈을 맞춘 후 자연스럽게 말했다. 


"13크로나씩 내서 나눠 먹을래?" 


여행을 하는 동안 밀가루가 든 음식이나 달달한 디저트를 먹지 않기는 쉽지 않다. 전자는 비용 탓이다. 적당한  예산에 맞춰 배를 채우려면 빵을 피할 수 없다. 후자는 여행 탓이다. 전자에서 돈을 아껴 후자에 쓰는 꼴이지만, 여행 중엔 이국적인 풍경을 눈 앞에 두고 감상에 빠져 달달한 디저트를 먹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예테보리 여행에서도 예외는 없었다. 여행이니까, 우리는 돈을 아끼기 위해 빵이 들어간 아침과 햄버거를 먹었고, 여행이니까, 초콜릿 쿠키와 와인에 절인 블루베리에 크림을 곁들인 팬케이크를 먹었다.


나는 스웨덴 말뫼에서 살고 있는 교환 학생이다. 이미 두 달을 이곳에서 살았고, 앞으로 세 달을 이곳에서 더 살 예정이다. 내가 지내는 내 기숙사 방은 말뫼에 있는 내 집이다. 학교에서 수업이 끝나면 나는 '집으로 돌아간다'고 말하곤 한다. 빨래도 하고 청소도 하고 밥도 해먹는 내 집이다. 추웠던 예테보리에서 이틀 간 여행을 한 뒤 말뫼에 도착한 버스에서 내렸을 때는 '집에 돌아왔다'는 생각에 마음이 놓이고 편안했다. 


그렇지만 말뫼는 일시적인 내 거처다. 나는 말뫼를 조금 오랜 기간 여행하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한국에서는 맛볼 수 없는 맛있는 falafel과 Pronto의 치즈 케이크가 말뫼에 있다. 그러면 나는 말뫼에서 밀가루와 단 음식을 끊어야 하는가, 끊을 수 있는가? 


말뫼는 내 집일까, 여행지일까? 


내 집이라고 생각해 독하게 마음 먹은대로 식이요법을 지키려고 하면 여기서만 먹을 수 있는 것들이 아른거리고, 여행지라고 생각해 먹고 싶은 대로 다 먹으려니 전신 거울 앞의 내가 어른거린다. 한국에 있는 친구들은 내게 몸무게를 신경 쓰지 말고 이곳에서 먹을 수 있는 맛있는 것들을 충분히 즐기고 돌아오라고 한다. 말뫼에서 만난 중국인 친구 L도 우리는 외국 생활을 하고 있고 이곳은 추우니 충분히 잘 먹어둬야 한다고 말한다. 내가 말뫼를 떠나 한국으로 돌아가면 분명 그 살은 다 빠질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결국 나는 여기서 먹고 싶을 땐 먹고 평소에는 자제하자는 중용의 결정을 내릴 수 있을 뿐이다. 말뫼의 거주자와 말뫼의 여행자 사이 어딘가에 위치한 모호한 내 위치는 신기하게도 내가 '무엇을 먹을지'까지 결정하고 있다. 평범하고도 특별한 날들을 보내는 가운데 친한 오빠 D가 보내준 메세지가 생각났다.


"나는 맨날 오락가락해 오빠ㅋㅋㅋㅋ컨디션 엄청 좋은 날에는 외국에 오래오래 있다가 들어가고 싶고 컨디션 안 좋은 날엔 여행이고 뭐고 때려치고 얼른 한국 가고 싶고ㅋㅋㅋ"


"한국에서도 컨디션 좋은 날엔 열심히 살아도 괜찮겠다 싶다가도 컨디션 안 좋은날엔 일이고 공부고 때려치고 여행가고 싶자나. 다만 그곳에 있을 기회는 적을 수 있다는 것만 다른거지. 컨디션 잘 유지하구, 넘 외롭지않게 맘 맞는 친구들이랑 종종 놀구 여기저기 원하는 곳 천천히 여행하고, 영상도 찍어보고, 그림도 그려보고, 글도 써보고, 다르게 살아봐. 주어진 공부도 다른 공부일테니 거기 집중해봐도 되구. 그냥 재밌는 거 해. 재밌는 거."


"어떻게 재밌게 살지 고민해봐야지! 하다가 벌써 두 달이 넘게 흘렀다..."


"별 거 있나. 해야 하는 거 말고 아무거나 해 봐."

 

예테보리에서 트램을 처음 봤고 처음 타봤다. 트램이 있고 날씨가 추우니 정말 북유럽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스웨덴은 인구 수가 적으니 자동차 수도 적을테고, 그러니 트램 선로가 도로의 넓은 부분을 차지해도 아직까지 유지되는 것이겠지?
대망의 첫 트램 탑승은 반대 방향으로. 트램은 놀이공원으로 가야하는데 자꾸 시내를 벗어나 산속으로 향했다.
춥고 비가 왔지만 우리는 자유이용권을 샀다. Liseberg 입장!
Liseberg의 Halloween
곳곳에 할로윈 테마를 위한 장식이 돼 있다. 낮에는 그저 그런 장식으로 생각했는데 해가 진 뒤 다시 보니 그럴싸 했다(무서웠다).
할로윈 기간에 운영되는 놀이기구 중 가장 잘 나가는 롤러코스터인 듯한 HELIX. 사람이 많을까봐 입장하자마자 뛰어 들어갔는데, 줄이 없었다. 바로 탈 수 있다. 문화 충격.
전반적인 분위기는 아기자기하고 귀엽다. 날이 맑았다면 훨씬 더 예뻤을 것 같다. 롤러코스터가 좀 느려서 타는 재미는 덜 했으나 보는 재미가 있었다.
1923년에 처음 문을 열었다고 한다. 이곳에 다녀왔다고 하자 스웨덴 친구들의 눈이 반짝거렸다. 우리에게 에버랜드와 롯데월드가 그러하듯, 스웨덴 사람들에게 동심의 상징인듯 하다.
놀이공원의 마무리는 관람차. 관람차도 자리가 반은 빈 채로 돌아갔다. 역시 스웨덴!
이튿 날, 에어비앤비 숙소에서 바라 본 예테보리의 아침 풍경
비가 안 왔으면 더 좋았겠지만 비가 온 날만의 분위기가 있으니까.
어떤 블로그에서 이곳을 예테보리의 명동으로 비유한 것을 보았다. 카페는 많지만 명동을 기대해선 결코 안 된다.
스웨덴 곳곳에서 쉽게 눈에 띄는 카닐-불레(kanelbulle)=시나몬 롤.
대왕 kanelbulle!
예테보리의 기온은 6도 입니다.
삐죽삐죽 딱 북유럽스러웠던 Oskar Fredriks Kyrka
우리가 들어갔을 때 마침 미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10여 년 만에 참여한 미사. 미사 중간 중간 실내 조명 밝기를 달리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미사가 끝난 뒤에 fika를 즐기는 스웨덴의 성당. 다음 주에 말뫼에서 교황님이 집전하는 미사에 저 신부님도 오신다길래 그 때 다시 보자며 후일을 기약했다.
Göteborg Centralstation
아무거나, 재밌는 것을 하며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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