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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예슬 Mar 17. 2019

커피 대신 책을 마셔요

전자책 단말기의 장단점에 대한 간단한 기록

커피와 크레마와 전자책 단말기
에스프레소 커피의 표면엔 황금색 혹은 갈색의 크림이 생긴다. 크레마(crema)다. 우리가 풍부하고 강한 커피의 향을 느낄 수 있는 것은 모두 크레마 덕분이다. 크레마엔 커피의 향을 함유하고 있는 지방 성분이 많이 들어있다고 한다.

에스프레소에게 황금색 혹은 갈색의 크레마가 있다면, 나에겐 하얀색 크레마가 있다. 사실 3주 전에 생겼다. 바로 전자책 단말기 크레마. 크레마를 만든 한국이퍼브는 이 전자책 단말기가 책의 향기를 담고 있다는 뜻에서 ‘크레마’라는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벌써 크레마 없는 외출은 허전하게 느껴질 정도로 그간 크레마와 엄청 친해졌다.

여기서 나의 “조금 모자라지만 착한 친구”인 크레마에 대해 살짝 소개해보려 한다. 지난 3주간 뭐가 좋았고, 뭐가 아쉬웠는지 말이다. 사실 크레마보단 전자책 단말기 자체에 대한 이야기에 가깝다.


잠금 화면을 내가 원하는 대로 설정할 수 있다.


좋은 점: 책 읽니?

1. 잠들기 전 침대에 누워 책을 읽다가 불을 끄기 위해 다시 일어날 필요가 없다. 나는 올빼미형 독서가다. 나는 주로 자기 전 침대에 누워 책을 읽는데, 잠이 올 때 그대로 누워 잘 수 없다는 게 단점이다. 반드시 침대에서 일어나 불을 끄러 가야 했다. 요즘 나는 방의 불을 다 끈 뒤 크레마로 독서를 시작한다. 그리고 잠이 오면 크레마와 나를 동시에 재운다.


2. 누워서 보기 편하다. 한쪽으로 누워서 크레마의 오른쪽 화면을 슬쩍 터치만 해주면 다음 장으로 넘어간다. 종이책을 누워서 읽어본 사람이라면 공감할 것이다. 오른쪽으로 누우면 책의 오른쪽 페이지를 펴고 보는 것이 힘들고, 왼쪽으로 누우면 책의 왼쪽 페이지를 펴고 보는 게 힘들다는 것을 말이다. 크레마는 와(臥)식 독서에 제격이다.


3. 문득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든 책을 냉큼 읽기 시작할 수 있다. 크레마와 제휴된 YES 24, 알라딘, 반디앤루니스, 리브로, 혹은 영풍문고에 들어가 전자책을 구매한 후 크레마로 동기화만 시켜주면 바로 크레마에서 책을 읽을 수 있다. 원래 책이라는 것은 읽고 싶다는 생각이 사라지기 전에 읽기 시작하지 않으면 읽기 어려운 대상이 아니던가.


4. 일상 속에서 책을 읽는 데 보내는 시간의 비율이 늘어난다. 나는 다독까진 아니지만, 한 권의 책을 다 읽으면 자연스럽게 다음 책을 찾아 읽는 정도로 꾸준히 독서를 해 왔다. 그럼에도 가끔은 책을 들어서, 읽었던 페이지를 찾아서, 다시 읽기 시작하는 일련의 ‘행위’가 부담스럽게 느껴질 때가 있다. 어휴, 내가 무려 ‘책’을 읽으려고 하다니, 하면서. 크레마는 상단 버튼으로 잠금 모드만 해제하면 바로 독서 시작이다. 책에 접근하는 훨씬 자연스러운 무브먼트.


5. 확실히 눈이 편하다. 아이폰이나 아이패드의 쨍한 레티나 디스플레이가 부셔둔 나의 눈에 안정이 찾아왔다.


6. 엄마의 오해를 받을 수 있다. 내가 누워서 크레마로 책 읽는 것을 여러 번 목격하신 어머니는 내가 누워서 스마트폰을 할 때도 책 읽는 것으로 오해하신다. 내 방문을 열었다가 “책 읽니?” 하고는 슬며시 나가신다. 엄마 미안해요. 연예 기사 보고 있었어.



아쉬운 점: 57권 읽을 수 있지?

1. 책을 읽을 때, 그리고 읽고 나서 멍하다. 우린 지금 어디 쯤에 있는 걸까. 내 위치를 가늠하기 어려워서 그런 것 같다. 아래쪽 화면에서 전체 쪽수와 현재 내가 위치한 쪽수를 확인할 수 있지만 그저 낯선 아라비아 숫자로 느껴질 뿐 감이 잘 안 잡힌다. 책을 다 읽어가는 걸 물리적으로 확인할 때 느낄 수 있는 아쉬움이나 희열을 느끼기 어렵다.


2. 없는 전자책이 많다. 신간의 경우 대부분 종이책을 출간할 때 전자책도 함께 출간하지만, 옛날 책들은 전자책이 없는 경우가 많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도 당장 읽으려다가 전자책이 없어 출간 알림만 덩그러니 설정해 놨다. 우리가 전자책으로 만날 수 있을까? 언제쯤?


3. 은근히 전자책도 비싸다. 평균적으로 종이책의 정가를 15,000원, 전자책의 정가를 11,000원이라 치자. 크레마 그랑데는 보호 필름과 케이스를 합쳐 218,000원이다. 간단한 일차 부등식을 통해 도출해본 결과 책을 56.5권 이상 읽을 때부터 크레마로 읽는 게 나에게 이득이 된다. 허허. 그래서 조만간 밀리의 서재 구독을 시작해볼 생각이다.



전자책 한 잔?
내가 쓰는 크레마 그랑데는 219g. 웬만한 테이크 아웃 커피 한 잔보다 가볍다. 중간 크기의 크로스백에도 쑥 잘 들어간다. 몇 가지 아쉬운 점에도 불구하고 나는 크레마를 대단히 추천한다. 특히나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아직은 종이책을 고수하고 있지만 전자책에게도 마음 작은 구석을 내 줄 여유가 있는 사람이라면, 오늘은 커피의 크레마 대신 책 읽는 크레마는 어떨까? 물론 218,000원의 진입 비용을 준비하고, 57권의 책을 읽을 각오는 조금 해야한다. 







참고 자료
이승훈, <올 어바웃 에스프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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