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결되지 못한 질문이 남았고, 혐오도 함께 남았다.
2018년 10월 27일. 나에겐 나른한 토요일이었고, 유대인에겐 안식일이었다. 피츠버그의 트리 오브 라이프 유대교 예배당에선 한 아기의 이름 명명식이 진행되고 있었다. 그때 한 남자도 트리 오브 라이프 예배당에 들어갔다. 그리고 그곳에 있던 사람들을 향해 총을 난사하기 시작했다. 범인의 총에 맞은 유대인 11명이 사망했다. 범인은 반유대주의자. 명백한 혐오 범죄였다.
내가 한국에 있었다면 ‘미국에서 또 총격 사건이 일어났구나’ 하고 넘어갔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나는 미국 워싱턴에 살고 있었다. 미국의 거리를 오가고, 미국인과 일하며, 미국의 신문을 구독하고 있었다. 유대인 친구가 있었고, 유대인 기관에서 일하는 친구가 있었다. 깊은 상처를 입었을 유대인들에게 반유대주의를 반대하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을 꼭 보여주고 싶었다. 그렇게라도 작은 위안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난생 처음 유대교 예배당으로 향했다. 퇴근하자마자 부리나케 도착한 예배당은 이미 나와 같은 생각을 한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비가 오는 궂은 날이었는데도 예배에 참여하기 위해 저만치까지 줄을 서 있었다. 예배당의 1층과 2층이 사람들로 빽빽이 들어찼다.
혐오란 무엇인가.
예배 내내 머릿속을 맴돈 질문이었다. 혐오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모였는데 도대체 누가 누구를 혐오하는 것인가. 내 주변엔 유대인의 표식을 단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이들은 1900년대 초반에도, 지금도 자신이 유대인이라는 사실, 혹은 그것을 드러내는 것만으로도 여전히 위험에 처해 있다. 나 또한 유대교 예배당에 앉아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위험할 수 있었다. 소름이 끼쳤다.
혐오는 도처에 존재한다. 곳곳에, 미세하게, 때론 명백하게, 만연하게.
나는 예배당으로 향하던 길에도 혐오를 목격했다. 퇴근길 만원 지하철 안. 내 앞에 서 있던 아줌마가 나에게 거친 언행을 사용하며 화를 내기 시작했다. 요지는 한 번만 더 자신의 몸을 건드리면 나를 가만두지 않겠다는 것. 나 또한 다른 사람들에게 몸이 밀리던 상황이었지만, 나는 그녀에게 거듭 사과했다. 그녀를 더 자극하다 위험에 처할까 무서웠기 때문이다.
그러자 내 뒤에 있던 여자가 내 편을 들었다. “아주머니, 지금 여기서 서로를 안 건드릴 수 있는 사람은 없어요. 저 아줌마에게 사과하지 말아요.” 쭈구리같이 사과하던 내게서 우월감을 맛보고 있었을 아줌마는 새로운 인물의 등장에 더 큰 분노에 휩싸였다. 아줌마는 분노의 방향을 나에게서 내 편을 든 여자로 변경했다.
“너네 나라로 돌아가라!”
아줌마는 정말이지 ‘혐오 표현의 정석’ 책이라도 읽은 것 같았다. 전형적인 혐오 표현을 이어가는 아줌마를 보며 진심으로 궁금해졌다. 관심을 받기 위해서 저러는 걸까, 아니면 진짜로 저렇게 생각하는 걸까. 그리고 씁쓸했다. 혐오에 맞서 싸우기 위해 예배당으로 가던 길에 또 다른 혐오를 마주해 버린 것이. 게다가 힘이 없다고 느낀 내가 그 상황 속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입을 꾹 다물고 있었던 것이.
혐오란 무엇인가. 혐오는 어떻게 생겨나는가. 생겨난 혐오는 반드시 표출되어야 하는가. 혐오는 반드시 사람을 죽여야 하는가. 왜 한 번 사는 인생을 그렇게 보내는가. 우리는 혐오를 멈출 수 있는가.
해결되지 못한 질문이 남았고, 혐오도 함께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