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돌아보는 일상
벌써 반년 전 일이다.
작년 추석 연휴에 '마카오'로 떠난 가족여행.
고향을 떠나온 뒤로 자주 만나지 못하는 가족들과의 시간은 그곳이 어디든 내겐 더없이 소중하고 즐겁기만 하다.
여행을 다녀와서 나의 머릿속에 남아있는 잔상은, 그곳의 화려함, 삐까뻔쩍함과 동시에 그와 대조되는 삶, 거리의 풍경들, 사람들.
카지노의 도시 마카오는 생각보다 훨씬 더 휘황찬란했다. 단, 여행자와 관광객들을 위한 곳에만.
(물론 특정 도시에 대한 비난은 절대 아니다. 그냥 나의 소소한 느낌과 감상일 뿐.)
그리고 잊히지 않는 한 청년.
첫날 호텔방에 도착했는데 아이를 위한 슬리퍼가 없어서 청소하는 분께 슬리퍼를 요청했다.
2인실이었으니 당연 아이건 없을 수 있다 생각했는데 내게 빠뜨려서 미안하다며 슬리퍼를 챙겨주고, 들어가는 나를 다시 불러 맑게 웃으며 미안해서 준다며 초콜릿을 건네던 청년.
그리고 다음날 메이크업 룸을 요청해놓고 저녁에 돌아와 그 청년이 해놓은 청소를 보고 나는 뜻밖의 감탄을 했다. 급하게 나간다고 남편과 아이가 마구잡이로 벗어놓은 옷들이 세상 예쁘고 곱게 정리되어있고 (사실 그 정도는 다른 호텔에서도 해주니 그러려니 했는데) 화장실 여기저기 빨아서 걸어놓은 수영복들은 차름히 만들어진 빨랫줄에 줄줄이 다시 걸려 있었다. 그리고 한편에 잘 마르라고 가지런히 세워놓기까지 한 워터슈즈들까지.
아 이건 뭔가.
내가 안 다녀봐서 몰랐던 고급 호텔의 남다른 서비스일까.
아니면 이 호텔 클리닝 가이드라인에는 그렇게까지 하라고 세세하게 지침이 나와있을까.
아니면 그 날 애인과 데이트가 잡혀있어서 유독 하루 종일 기분이 좋았던 날일까.
이유야 뭐든 내막은 잘 모르겠으나 어쨌든 그 디테일은 분명 누구의 시킴으로, 타의로 되는 건 아니었으리라.
그 가을의 마카오 여행에서 난 유독 그 청년이 기억에 남는다. 정확하게는 그의 태도가 새롭고 좋았다. 나를 다시 불러 세워 당당히, 그러나 예의 바르고 친근하게 건네주던 초콜릿과 일하는 내내 룰루랄라 부르던 콧노래, 그 자신 스스로 행복하고 충만했던 순수함. (안내데스크에서 예쁜 얼굴로 짜증 가득 히스테릭한 호텔리어와 대조적이었던.)
서로 더 잘났다는 듯이 뽐내는 온갖 화려한 건물들과 눈 깜 박하면 지갑이 비는 갖가지 즐길거리로 관광객을 유혹하는 그곳에서의 호캉스.
자본으로 누리려고 갔으면서도 돈으로 나뉜 극과 극의 대우를 받으며 즐거웠지만 뭔가 불편했던 그곳에서 시간이 지난 뒤 내 기억에 남는 건, 진지하고 즐겁게 일하던 한 청년의 맑은 미소.
과연 자본은, 노동을 착취했을까.
자본이 인간을 숙주 삼아 아무리 창궐한대도, 바이러스가 인간을 숙주 삼아 괴물처럼 번식한대도,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삶의 태도까진 삼켜먹진 못하니. 어려운 상황에 서로를 위하고 돕는 이들을 보며 이득이 되면 취하고 아니면 버리는 뿌리 깊은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결국 인간에게 남는 가장 큰 힘은 '사랑'이라고 나는 그래도 아직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