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글쓰기란

바닷가에서 모래알을 말리듯 나를 소진하는 일

by Thaumazein
글을 쓸 때 나는 스스로를 소진한다.

글을 쓸 때 나는 내 안의 감정의 찌꺼기를, 사색의 흔적을, 관계의 희노애락을, 일상을 버티느라 한켠으로 밀어두었던 내 안의 모든 영감의 순간들을 끄집어내기 시작한다.


그 모든 순간들을 보석처럼 반짝이도록 흰 종이 위에 나열하고 싶지만, 일상에서 동떨어진 보석이란 실로 사람들 마음 속에서 빛을 발할 수 없음을, 결국 우리 마음에 남는 건 수많은 바닷가의 모래알들처럼 오늘도 내일도 우리의 일상의 바닷가에 있음을 글을 쓰며 깨닫는다.


순간의 영감들은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듯 다시 모래밭으로 떨어지고, 바닷물 사이로 스며들고, 햇살이 비치면 가끔 한 알 한 알 반짝인다.

그래서 글쓰기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같은 무모함이라고 했던가.


일상이 글감이 되어 글로 표현하자치면, 그 많은 생각들은 갈 곳을 잃고 다시 빠져나간 모래알처럼 제 자리로 돌아가지만, 글을 쓰며 나의 사유 속으로 들어갔다 나온 모래알은 내 일상 속에서 다시 빛을 받아 한층 더 반짝이는 모래알이 된다.



그렇게 글을 쓰며 나는 소진되지만, 나는 그렇게 나의 소진됨을 사랑한다.

내 안에 쌓인 감정과 생각들을 한 겹 한 겹 벗겨내며 나는 어느새 어제와 또 다른 내가 되어있고, 밑 빠진 독에 물을 붓고 난 후에도 내 안에는 끝없이 솟아오르는 샘이 있음을 발견하므로.
오늘도 나는 바닷가에서 모래알을 건져 올려 햇빛에 비추이며 모래알 하나하나를 말리며 나를 소진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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