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좋아하는 시였는데 책을 읽다 이 글이 아르헨티나 출신의 가수 메르세데스 소사가 부른 노랫말임을 알게 되었다. 중남미 군사정권 시절 자유와 희망을 노래하던 저항 음악가인 그녀의 삶을 알고 나서 들은 그 무겁지만 깊고도 평화로운 목소리로 시작하는 울림은 그저 눈물이 나게 만들었다.
정치적 억압과 민중의 고통, 뜻을 같이했던 동료들의 죽음, 조국으로부터의 강제 추방, 평생의 정신적 지주였던 배우자와의 사별까지. 망명생활 동안 홀로 견뎌야 했던 시간들, 삶을 포기한다 해도 누가 뭐라 할 수 없는, 자신이 사랑해왔던 모든 것을 하나하나 빼앗아가는 삶에게 그녀는 어떻게 감사하다고 말할 수 있었을까.
공연장에서 마주할 것이 자신을 겨냥할 총구일지도 모를 위험을 무릅쓰고도
도망가지 않고 자신이 조국의 국민들에게 줄 수 있는 것은 '용기'라며
다시 조국으로 돌아와 청중 앞에 서서 우레 같은 박수 속에 울먹이며 부른 노래 첫마디가
'그라시아스 아 라 비다(생에 감사해)'였다.
생에 감사해, 내게 많은 걸 주어서.
눈을 뜨면 흰 것과 검은 것
높은 밤하늘을 수놓은 별들
그리고 군중 속에서 내 사랑하는 사람을
온전히 알아보는
샛별 같은 눈을 주어서.
생에 감사해, 내게 많은 걸 주어서.
귀뚜라미 소리, 새소리.
망치소리, 기계 소리, 개 짖는 소리, 소나기 소리
그리고 사랑하는 이의 부드러운 목소리를
밤낮으로 들을 수 있는 귀를 주어서.
생에 감사해, 내게 많은 걸 주어서.
소리와 글자를 주어
그것들로 단어들을 생각하고 말할 수 있게 해 주어서.
'엄마', '친구', '형제자매'
그리고 사랑하는 영혼의 길을 비추는
'빛'같은 말들을.
생에 감사해, 내게 많은 걸 주어서.
지친 다리로도
도시와 물웅덩이, 해변과 사막, 산과 들판을
그리고 당신의 집, 당신의 길, 당신의 정원을
걸을 수 있는 힘을 주어서.
생에 감사해, 내게 많은 걸 주어서.
인간의 정신이 맺은 열매를 볼 때
악에서 멀리 있는 선을 볼 때
그리고 당신의 맑은 눈의 깊이를 볼 때
내 고정된 틀을 흔드는 심장을 주어서.
생에 감사해, 내게 많은 걸 주어서.
웃음과 눈물을 주어서.
그것들로 행복과 고통을 구별할 수 있게 해 주어서.
그 웃음과 눈물로 내 노래가 만들어졌지.
당신의 노래도 마찬가지
우리들 모두의 노래가 그러하듯이
나의 이 노래도 마찬가지
생에 감사해, 내게 너무 많은 걸 주어서.
- 메르세데스 소사, Gracias a la vida -
도저히 삶의 감사함을 말할 수 없는 현실 속에서 그것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그녀의 깊은 영혼 앞에
쏟아진 것은 군부정권의 총구가 아닌, 수많은 청중의 함성과 박수,
목숨을 걸고도 조국으로 돌아와 준 그녀에게 내리는 경이와 존경을 표하는 붉은 카네이션의 꽃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