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에에서 만난 미국인 소녀

여행이 들려주는 목소리

by 정다운 너

모든 국적의 여행자를 환영하는 베트남에는 실로 다양한 나라에서 온 여행자로 북적인다. 하노이의 구시가인 올드퀘터 Old Quarter는 물론이고 호찌민시의 데탐거리에는 현지인과 외국인 여행자 수가 어깨를 나란히 한다. 그리고 베트남전쟁을 베트남사람의 시선으로 이해하는 베트남 땅에는 미국인 여행객도 많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다낭이나 나짱 이외에도 후에는 베트남 중부의 도시로, 응우옌왕조가 머물렀던 고도(古都)로 더 유명하다. 특히 베트남이 분단되었던 시기에는 군사적 요충지로서 두 세력이 힘겨루기하던 지점이기도 하다. 지금도 당시의 긴박감을 체험할 수 있는 DMZ이 있어서 관심 있는 여행객이 찾곤 한다.

나는 이곳, 후에에서 DMZ투어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온 후, 숙소의 라운지에서 혼자 여행하는 K와 우연히 마주쳤다. 나 역시 혼자였으므로 자연스럽게 함께 저녁 식사를 하게 되었다. (혼자 여행하면 비교적 흔히 일어날 법한 일이지만 드문 일이기도 하다.) K는 지난주까지 호찌민시를 여행했고 오늘은 후에 일정을 마쳤고 내일은 국내선으로 하노이에 가는 빠듯한 시간을 간략하게 소개했다. 그리고 덧붙이는 말이 통일궁이며 박물관에서 보는 전시자료 등으로 몸과 마음이 힘들다는 것이다. 객관적인 사진 자료라고 하더라고 미국인을 겨냥하고 있으며 그 전시장을 살피는 내내 죄의식을 떨쳐버릴 수 없었노라고 말했다. 더 정확히는 빨리 베트남 일정을 마치고 집으로 가고 싶다고 토로했다. 사실 그녀는 유대인인데, 미국에서 자신은 늘 독일인을, 유대인 학살을 자행한 독일인을 비판하고 비난하는 위치에 있었으므로 이 여행에서의 상황이 혼자서 감당하기에는 좀 버겁다고 했다. 유대인으로서 피해자라는 입장에서 살아오다가 가해자이자 전쟁을 촉발시킨 장본인으로, 베트남에서 평가되는 미국인의 위상을 보고 혼동을 느낀다고 했다. 그녀의 눈가는 젖지 않았고 K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그녀는 감정에 치우치기보다는 자신의 입장과 처지를 객관적으로 설명했으므로 나도 차분히 그녀의 목소리에 귀 기울였다. 우리는 미라이 학살 Mý Lai massacre에 대해, 전쟁의 광기에 대해, 그리고 베트남에서 전쟁이 물러간 다행스러운 지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나 역시 한국도 미국과 함께 베트남전쟁에 참전했다고만 말했다.



나는 그때 단지 이렇게 생각했다. 이미 자행한 잘못은 끝까지 거기에 있다고. 상처는 치유되는 것이지만, 치유된다 한들 흉터는 남는다고. 그리고 이후에야 한국군 역시 미라이에서 그리 멀지 않은 베트남 중부지역에서 학살을 저질렀고 민간인을 마구잡이로 살해하는 만행을 범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베트남과 관련해 찾아보다가 새로 발견한 이 사실을 뒤늦게 알고 나는 K처럼 혼란스러웠다. 나 역시 일본에 의한 식민지배로 우리는 희생자, 라는 것만 기억했지, 우리가 가해자로서 베트남전쟁 중에 범법을 저질렀다고는 생각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알지 못했다는 것은 충분한 설명이 되지 못한다. 그것이야말로 역사의 왜곡이고 피해자에 대한 또 한번의 가해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한베평화재단의 활동은 눈부시다. 우리 군의 잘못을 바로잡으려는 이 재단의 부단한 노력과 수고가 다시 내가 베트남을 찾아갈 때, 다시 베트남 사람을 대할 때, 조금은 덜 부끄럽게, 고개를 들고 후에의 거리를 걸을 수 있도록, 반갑게 인사를 나눌 수 있도록 한다. 베트남 젊은 세대가 더 이상 대화의 화제로 삼지 않는다는 그들의 과거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오늘을 있게 한 어제였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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