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새내기 때 선배로부터 '안하무인'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지금와서 돌아켜봐도 그때는 남들 시선도, 남의 입장도 신경 쓰지 않던 야생의 시절이었다고 고백한다. 나에 대한 애정이었다고 확신할 순 없지만, 그 선배가 칭한 나를 향한 그 사자성어는 가끔 나를 피식 웃겨 만든다.
남들 눈 좀 신경 쓰고 살라, 는 어느 꼰대의 돌려차기식 말하기 기법을 나는 반사 장풍으로 기꺼이 거부했으니 우리는 피장파장인 셈이다.
혼자 또 함께
어쨌거나 타인의 시선을 너무 의식하는 것도 문제지만, 너무 무시하는 것도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그 후 여러 일들을 겪으면서 조금씩 깨달아갔다. 사람이란 모름지기 누군가에 기대어 살며 그러므로 서로 서로 약간의 배려와 시선에 대한 의식을 기꺼이 수락하고 수용해야 한다는 것을. 그러나 양극단의 선택이 주어진다면, 나는 타인의 시선을 무시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뜻밖에 이 생각은 어느 노작가의 '작가의 말'에서 발견해냈다. 이 통쾌한 버팀목! 굳이 한세월을 모두 지나보내지 않더라도 작가가 작가의 말로 남긴 짧은 글 덕분에 그 속에서 그 인생의 연륜과 삶의 지혜를 길어 올릴 수 있었다. 간접체험이라는 독서의 장점이 그대로 반영된 셈이다. 작가의 말은 대략 이랬다.
나이가 들어서 좋다는 것은 남의 시선에 구애받지 않고 마음대로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지혜로운 조언인가.
젊었을 때, 어렸을 때는 나이 든 사람, 주변 사람이 이렇게, 저렇게 여길까봐 조심스럽던 행동이 나이가 들게되면 문제될 게 없어진다는 말은 나의 무릎을 치게 했다. 내가 특별히 나의 시선을 일부러 무시한 적은 없지만, 그렇다고 그 시선을 안중에 두고 조마조마한 적도 없이 살아온 까닭이다. 그래서 더더욱 노작가의 해안은 결국 내 삶의 방식이 오답이 아니라고 내 편을 들어주는 것 같아 든든했다. 안하무인, 이라는 애칭은 내 자유로운 행동방식에 대해 굴레를 씌우고 싶은 조롱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그 선배에 대한 비난이 아닌 비판임을 밝힌다.)
혼자서 페달 밟는 여행
달리 생각하면, 우리는 남의 시선을 의식하던지, 누군가가 나의 시선을 의식하도록 만든다. 그것이 조금은 씁쓸하지만 우리가 비판하고 싶은, 벗어나고 싶은 우리 사고방식의 울타리이다. 여행에서는, 특히 해외 여행 시, 이 울타리를 홀가분하게 벗어난 외국에서는 그 시선으로부터 조금은 자유로워질 수 있다. 물론 비행기 한 번 타고 떠났다고 내가 갑자기 변신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남들 시선을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이 지구상에는 정말 허구하게 많다는 사실을 보고 겪게 되면, 자발적으로 지어 올린 자신의 창살 안에서, 철창 안을 지키는 자신이 불현듯 불쌍하고 딱하게 여겨진다.
오해하지 마시길! 거리에서 소리 높여 얘기하거나 소매를 걷어붙이며 흥정하라는 조언이 아니다. 어느 책의 제목처럼 나로서 살아가는 것.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고 결심하려면 나의 취향과 나의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다짐, 결단, 남의 시야에서 당당히 걸어 나와 나라는 오만함을, 그 깃대를 하늘로 치켜들 기세가 필요하다.
종종 나는 크고 작은 일을 해내고는 “이 역시 나와의 싸움이었다”라는 결론을 내리곤 한다. 여행은 고로 자기의 덜어내고 싶은 부분과 만나고 그 부분을 기꺼이 인정하거나 기어코 도려내는 “나와의 싸움”, “혼자만 아는 싸움”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