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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다운 너 Nov 15. 2022

행복한 균형이 있지 않을까?

영화 <사랑을 카피하다>에 부쳐 

슬픈 얼굴의 줄리엣 비노쉬Juliette Binoche를 기억한다.


나쁜 피 (1986)

프라하의 봄 (1988)

퐁네프의 연인들 (1991)

데미지 (1992)

세 가지 색: 블루 (1993)

세 가지 색: 화이트 (1994)

세 가지 색: 레드 (1994)


창백한 얼굴에 우수가 가득했던 여배우가 이렇게 중년이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빛난다.

그윽한 주름과 경험으로 깊어진 눈빛은 그녀가 걸어온 삶을 단순히 젊은 생기와 비교할 수 없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관객인 나도 나이를 먹는데 여배우도 마땅히 나이를 먹고 세월을 감당해야 하지 않을까?


어쨌거나 한국어로 번역한 “사랑을 카피하다certified Cope”는 좀 우스운 제목이지만,

진품과 복제품에 대한 얘기가 줄곧 나온다.

진품을 복사한 복제품도 그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


그리고 여자와 제임스 James Miller, 그들은 사람들이 그들을 부부라고 착각하는 어느 시점부터 부부라는 관계라는 설정 하에서 서로의 논리를 펼친다. 전혀 낯선 관계인 그들은 마치 부부처럼 서로의 행동에 상처받았다고 불평하고 비난하며 그들의 말싸움은 진저리를 느끼는 부부들의 좁힐 수 없는 간격처럼 평행선을 긋는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 여자는 살아 숨쉬는 현재형의 가슴 뛰는 사랑을 갈망한다. 그러면서 변해버린 남편의 사랑과 그의 태도에 실망한다. 원본의 사랑을 요구하는 것이다. 하지만 제임스는 결혼한 지 15년쯤 된 부부의 사랑은 이제 막 결혼식을 올리는 그들의 것과 같을 수 없다고 말한다. 원본의 사랑보다는 원본에 가까운 복제품의 사랑이 더 어울린다고 주장한다. 원본은 아니지만 원본이 아님에도 그것만의 가치와 숭고함이 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그것은 모든 부부 혹은 남녀 관계에서 종종 갈등이 시작되는 지점임에 틀림없다.


내가 특히 인상 깊었던 부분은 레스토랑에서 식당 여주인이 여자에게 인생에 대해 조언하는 장면이었다.

자신과 일에만 관심을 쏟는, 항상 자신을 혼자 두는 남편에 대해 험담하며,

“행복한 균형이 있지 않을까요?”라고 묻자,

“그건 이상이지. 이상때문에 인생을 망칠 순 없지.”라고 말한다.

단순히 말하면, 남편들이란 어쩔 수 없는 것이며, 그러려니 하란 소리다!


전혀 논리적이지 않고 납득할 만한 근거도 없는 말이지만, 어떤 연륜에서 우러나온 소리라서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당신이 생각하고 꿈꾸는 이상은 현실에서 찾을 수 없으며, 그 이상을 찾겠다고 떠나는 순간, 인생은 망가져 버린다는 것이다.


하필이면 그들이 있는 그 자리에 이상을 갈망하는 신혼부부의 결혼식이 열린다. 신랑신부를 향한 두 사람의 태도 역시 상반된다. 여자는 그들을 격려하며 축하해주는데, 제임스는 시큰둥하기 짝이 없다.


더 흥미로운 장면은 여자 주인공이 거울을 보는 장면과 남자 주인공, 제임스가 거울을 보는 부분이다. 그 장면은 그들의 삶에 대한 자세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립스틱을 바르고 어울리는 이어링을 고르며 행복한 표정을 지어보이는 그녀는 창밖의 소란함에도 기웃거린다. 삶에 어떤 무지개라도 찾으려는 그녀의 태도는 이상을 지향한다.


한편, 이 영화의 마지막 씬에서 제임스는 창문이 활짝 열린 바깥 풍경을 배경으로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거울 앞에 서 있다. 무슨 중대한 결정을 내리려는 것도 같고, 스스로를 주시하는 것도 같다. 시각을 알리는 종소리가 어둑해진 저녁 하늘에서 흩어지고 있었다.


물론 제임스가 어떤 선택을 했을지는 고스란히 관객의 차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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