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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다운 너 Dec 14. 2022

생애 한 번은 인어공주였던 기록

-전도연, 박해일의 『 인어공주』에 부쳐




이 영화를 곰곰이 생각하며 새로운 사실을 깨달았다. 영화라는 게 보고 있을 때와  보기 전에 설렘을 간직할 때, 그리고 또 영화의 엔딩크레디트를 보고 한참 시간이 지난 후에도 여전히 내 속에서 나의 일부가 된다는 것. (좀 낯간지러운 표현 같지만) 이 영화를 생각하며 테라피를 받는 것 같은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 영화가 해피엔딩이었는지에 대해서는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다만, 한 가지 위로는 한때, 그들, 두 주인공이 ‘사랑’했다는 것.

섬을 가르는 바람이 너무나 달콤해, 주체할 수 없어서 우편물을 배달하는 자전거의 페달을 밟으면서도, 얼음같이 찬 바닷속에서 물질을 하면서도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는 사실이다.   



  오래전에 본 영화인데도 인상 깊은 장면이 많아서, 그리고 새삼 풋풋했던 배우의 지나간 얼굴을 볼 수 있어서 기억에 두는 한국 영화다. 아마도 올여름, 제주도 우도 해변도로에서 지나쳐 간 『 인어공주』 촬영 장소라는 푯말을 본 탓일까. 왜 오래전에 본 이 영화가 생각났을까.


물론, 최근에 『 헤어질 결심』을 보고 박해일의 필모그래피를 찾아본 탓일 수도 있다. 또 그 영화와 겹치는 전도연의 『 무뢰한』을 다시 보고 싶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쨌거나 전도연의 2인 연기가 압도하고, 제주도의 낭만이 청춘의 기억처럼 물결치는 이 작품.    


엄마(고두심)의 목욕탕 잠수씬과 우체국 경비원인 아버지(김봉근)의 경비실 근무 장면은 이들이 늙고 낡아서가 아니라, 그들 사이의 이제는 풍화된(풍파의 시간과는 별개로) 관계가 적나라하게 보여져서다. 제주도 지천으로 널린 현무암자갈로조차 매만질 수 없는 애틋하고, 두근대는 혹은 반려자로서의 애정이나 추억에 힘입어 단단할 법한 중년 부부의 서로에 대한 믿음이 한없이 헐거워지고, 그 아름다운 섬을 떠나 결국 그들이 서울이라는 낯선 도시에서 각자의 섬으로 작아지고 있다고 표현되어서 나는 참 슬펐다.  


그것은 ‘사랑’이라는 정점에서 가정을 꾸리고 그것을 꾸려나가며 자갈조차 못 되는 돌멩이로 숱하게 부딪히고, 모래처럼 깨지고 상처 입고, 희망 거는 것을 포기하고, 어제 먹던 밥을 오늘도 먹고, 어제 꾸던 꿈의 나머지를 오늘 그저 분주히 꾸고, 하고 싶었던 것을 그때 해보지 못한 탓에, 그것을 방기한 죗값으로 진짜, 정말 하고 싶은 것이 기억에서 마모되어 잠결 속에서도 너무나 희미해져서, 그렇게 나이를 먹어서, 거울 앞에 선 내가 초라하게 느껴질 때, 나는 왜 내가 하고 싶은 걸, 하고 싶을 때 하지 않았던가, 스스로에게 돌멩이를 던지고 싶을 때. 그런 순간을 맞이할 때, 이 영화 속 중년 배우들의 얼굴이 낯설지 않았다.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https://movie.naver.com/movie/bi/mi/photoView.naver?code=37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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