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조차 나와의 싸움이라니
혼자 여행해서 좋은 점은 내 마음대로 일정을 꾸릴 수 있다는 자유. 강물이 흘러가는 풍경 앞에서, 강물인 양 풍경 속을 지나가는 여정 위에서, 도시에서 일삼던 멍 때리기는 여행지에서 넋 놓고 신선놀음하듯 멈춘 시간 속에서 부유하는 자유인이 된다.
그러나 그만큼 이런저런 생각이 꼬리를 물고, 어쩌다 나는 여기에 혼자 있나? 여기에서 나는 뭘 하고 있는 거지? 라는 아주 근원적인 물음에 스스로 당도하게 되는 상황이 발생한다.
얼마 전까지 그토록 소원하던 여행. 그리고 집에서 멀리 떠나와 있는 여행지에서 이런 순간이 찾아오면, 징검다리를 건너다가 문득 뒤를 돌아본 순간처럼 뒤뚱거리게 된다. 다시 질문은 이 여행을 향하기보다는 내 삶에서 지금이 어떤 시점이고, 만약 절체절명의 중요한 시기라면 어서 빨리 신속하게 처리해야 할 체크리스트를 작성해야 할 것 같은 강박증이 찾아온다. 불청객처럼 느닷없게도.
물론 여행 일정이 일주일도 되지 않는다면, 빠듯한 일정이 아쉽기만 해서 이런 질문을 마주할 여유조차 갖기 어렵지만. 퇴직과 구직 사이에 한 달가량 장기여행길에 올랐다면, 집을 나설 때 혹은 공항버스에 올랐을 때의 설렘보다는 약간의 막막함이 엄습할 수도 있다. 현실에서 빠져와서 ‘여행이라는 현실’에 안착하는 순간이다. 남들은 바쁘게 출퇴근을 하며 다달이 월급 받으며 창창한 커리어를 쌓는다는 지점까지 생각이 미치면, 뭐랄까 여행이고 뭐고 낙오자라는 기분이 떨치기가 쉽지 않다.
일상이 아닌 ‘여행‘이 일상이라는 관성을 찾아가려는 외로운 진동이랄까. 여행은 이래서 또다시 '나와의 싸움'이다. 여행이 끝나면 이 순간의 불안과 고민은 또 얼마나 우스워질 것인가. 걱정한다고 달라질 것도 없는 고민 따위는 담배 연기와 함께 태워 보내거나 맥주 거품과 함께 꿀꺽! 오늘 마시는 술이 달고도 쓴 것은 이런 연유 때문이라고 훗날은 기억해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