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퍼하지 않는 얼굴로 걷기

그림자보다 진한 그림자

by 정다운 너



(누구보다) 화려했던 자신, 그 과거의 나와 싸운다는 건 어떤 것일까.


그런 과거를 가져본 적 없는 사람이라면 가히 고민해볼 문제조차 되지 않을 수 있지만.

이 질문은 종종 '현재'에 사는 내가 '미래'에 대한 불안과 같은 무게로 행복하지 못했던 '과거'에 목줄을 매이듯 사로잡혀 종종 우울에 빠져드는 상황과 비교할 때

충분히 유효하다.


과거는 화려했거나 (현저히 화려하지 않은 현재에 비교할 경우에 특히), 누추했거나 영원히 끊어버릴 수 없는 그림자 같은 것.


하룻밤, 또 하룻밤을 자고 나면, 잊혀질 수 있을 것 같은, 망각되어 버릴 수 있을 것 같은 기억의 조각들은 유년이라는 거대한 기억의 덩어리로 가슴께에 얹혀 (종종 나를) 숨 못 쉬게 한다.


나와 싸운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돌이켜 보면, 뛰어넘어야 한다고 여겼던 상황은 이 길 끝에 끝이 보인다는 확신을 끌어안고 나아갔던 것으로 버틸 수 있었다. 적어도 그렇게 말하고 싶다. 이게 다가 아니다. 지금이 끝이 아니다, 라는 어떤 믿음.

그것은 희망에 대한 기대는 아니지만, 적어도 불운에 대한 위안은 되어 주었다.


날마다 해가 저 수평선 너머로 숨바꼭질했다가 다시 아침에 나를 깨우는, 놀라운, 의심의 여지 없는 약속처럼.



그림자가 묻힐 수 있을 만한 어둠 속에 내가 들어선다면, 그 그림자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는 나의 말. 혹은 그림자가 존재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한 빛을 찾아 나서는 대단한 결단.


(눈부신) 빛을 향해 날아드는 나방처럼, 있지도 않은 날개로 날갯짓을 해서 나의 그림자를 내 앞이 아니라 나의 뒤로 감추는 트릭. 내일 아침 혹은 모레쯤에는 모든 나방이 물기 없이 말라 백열등 아래에서 말라간다는, 부정할 수 없는 규칙을 셈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등 날개가 가려운 것은 언젠가 내 조상 적에는 날개를 가졌었다는 희미한 흔적.


열리지 않는 문은 열리지 않은 채로 두고 걸어갈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슬퍼하지 않고 걷는다.

눈물이 흐른다면 바람이 씻겨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