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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책 Oct 07. 2020

추석 달이 이렇게 예뻤나

타지에서 맞는 추석

이번 추석이 다가오기 일주일 전까지는 추석이 정확히 며칠인지, 연휴가 며칠인지도 몰랐다. 다른 나라에 있다는 사실이 명절을 둘러싼 시간 개념을 확 바꾸어놓은 걸까. 아니면 여기에서의 생활 때문에 한국에 신경 쓸 정신적 여유가 없어져서 일까. 어쨌든 내 삶에서 명절의 우선순위가 밀려난 것임은 분명하게 느껴졌다. 추석 당일 아침 한국에 있는 부모님께 전화로 인사를 하는 것으로 명절은 끝났다.   


추석을 일주일 앞두고 가까운 지인 몇 명이 공원에서 음식 한 가지씩을 가지고 와서 아이들이랑 같이 놀기로 했다. 추석 때문에 모이는 자리는 아니었고 락다운 단계가 약간 완화되어 오랜만에 얼굴이나 보자 해서 만나는 것이었는데, 어쩌다 보니 약속한 평일이 딱 추석 당일이 되었다. 여느 목요일인데 우리끼리만 추석인 날이 되었다. 어떤 분은 잡채, 어떤 분은 전, 또 어떤 분은 케이크를 만들어 온다고 했는데, 나는 음식을 뭘 할까 며칠 고민하다가 일단 한인마트에 가서 아이디어를 얻기로 했다. 역시나 한인마트에는 송편, 전 등 명절 음식이 눈에 띄었다. 특히 한국에서 만들어서 냉동상태로 가져온 쑥송편이 있어서, 떡순이이자 빵순이인 나는 2킬로짜리 송편 봉지를 덥석 집어 들었다. 식혜와 수정과 등을 챙기고, 송편을 쪄서 참기름에 굴려 따끈따끈한 채로 준비해서 가져갔다. 오랜만에 만난 아이들도 잘 놀았고, 어른들은 모두 1.5미터씩 떨어진 채로 서로의 안부와 근황을 물었다. 날씨도 20도가 넘어서 춥지 않았고 햇살이 초록 잔디 위로 한없이 쏟아져서 예쁜 풍경을 만들어 주었다. 음식은 명절 음식과 여러 가지가 혼합된 퓨전으로, 오랜만에 안부를 묻기가 약간은 어색한 채로, 그래도 꽃이 만발한 봄의 추석이 따듯하게 느껴졌다.  



해가 넘어가려고 하자 기온이 갑자기 떨어졌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아쉬움을 뒤로할 수가 없어서, 가까운 집으로 다 같이 가서 앞마당에 간이 테이블을 펴고, 간이 의자를 놓고, 따듯한 차를 마시면서 아쉬움을 붙들고 달랬다. 때마침 달이 떠올라 있었는데, 창백하다고 해야 할까, 담백하다고 해야 할까, 아직 어두워지지 않은 흐린 하늘에서도 혼자서 깔끔하게 한 번에 그린 동그란 모양을 한 채 엷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추석 달’. 그제야 추석과 보름달이 매치되었다. 명절은 의례 시댁에 가서 음식을 준비하고 차례를 지내고 질리도록 똑같은 음식을 계속 먹는 날이었는데, 정작 중요한 달이 빠져있었던 것이다. 남반구에서 보는 달도 이렇게 예쁘구나. 한참을 사진에 담으려 애썼지만, 그 예쁨은 제대로 담아지지 않고 사진 속에서는 아무 특징도 없는 하나의 점이 되고 말았다. 


모두들 사람이 그리웠을까. 생각해보니 단계 변화는 계속 있었지만 락다운이 어느덧 3개월을 넘었다. 우리는 모두 그저 다른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이 그리웠었나 보다. 가족과 시간을 많이 보내게 되어 좋은 점도 있었다고, 좀 더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고 위안을 삼았었지만, 실은 사람 냄새가, 타인과 함께 있는 공간에서 데워지는 훈훈한 공기가 무척 그리웠던 것이다. 대화를 많이 하지도 않았지만 어느새 가슴이 포근해졌고, 헤어지기 위한 발걸음을 떼기가 너무 아쉬웠다. 아이들도 처음에는 서먹해하더니 이내 어둑어둑해진 길 위에서도 스쿠터를 타며 즐거워하며 끝낼 줄을 몰랐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 맞음을 더욱 실감한다. 돌아오는 길에 추석 달님에게 코로나 좀 제발 얼른 끝내 달라고 빌어 본다. 아이도 옆에서 같이 작은 도 손을 모아 빈다.


이게 아닌데.. 사진의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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