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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책 Oct 20. 2020

시작

달콤한 연애 속 큰 실수

처음부터 이상하지는 않았다. 여느 연인들과 다름없었고 오히려 매우 열정적으로 불타올라 불안할 정도였다. 여자는 남자를 잃어버렸던 쌍둥이별 같다고 생각했고, 남자는 처음 진정한 사랑을 찾았다고 했다. 여자는 남자를 하늘에서 내린 선물이라 했고, 남자는 현실 같지가 않아 믿기지 않는다고 했다. 이렇게 완벽하게 잘 맞을 수 있을까! 큐피드의 화살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히 심장을 명중했었나 보다. 하지만 어쩌면 그들은 그렇게 좋은 채로 끝났어야 했다. 그랬다면 좋은 추억으로 오래오래 남아서 가끔 힘들 때마다 꺼내어 흐뭇한 마음으로 들추어보아도 좋았을 것이다. 끝날 기회는 몇 번 주어졌지만 그럴수록 서로 더 강하게 엉겨 붙어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드디어 그들은 마냥 행복하게만 보이는 결혼이라는 제도 속으로 기꺼이 몸을 던졌다. 풍덩. 들어가 보기 전에는 자신이 어떤 사람이 될지 모른다는 신비의 그 바닷속으로 말이다. 

  

그 속으로 들어온 지 얼마 안 되어 여자는 희미하게 느꼈다. 여자의 발에 매달린 추의 무게 때문에 열심히 헤엄을 쳐봐도 자꾸만 조금씩 가라앉는다는 것을. 연애 중에 나름 대화를 많이 했다고 생각했는데, 이상하게도 결혼이라는 테두리 안으로 들어오자 그들은 스스로도 소스라칠 정도로 생각이 많이 달랐다. 사회의 고정관념 때문인지 개인의 가치관 차이인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 둘 다일 것이다. 여자는 남자와 모든 일을 함께 나누고 공유하는 것을 ‘함께’하는 이상적인 삶으로 삼았다. 반면 남자는 남자의 역할과 여자의 역할을 명확히 구분해서 자신의 일을 잘 해내는 것을 이상적인 '결혼'생활로 삼았다. 언뜻 보면 두 개 모두 별 문제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잘만 연결시키면 시너지가 날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여자는 결혼생활을 '동반자, 파트너'의 개념으로 본 반면, 남자는 그것을 '기혼자'가 응당 지켜야 할 제도적 개념으로 보았다. 이 문제는 남녀의 역할을 세세하게 나누는 불편함에서 끝나지 않았고, 결정적으로 남자는 여자가 안정적인 직장에 다니면서 남자만큼의 경제적인 기여를 한다는 사실을 ‘여자의 역할’에 끼워주지 않았다.  


여자의 직장생활이 인정되지 않다 보니 그녀가 짊어지는 역할의 크기는 사실상 두 배가 되었다. 그녀는 이제껏 이루어온 사회생활에서의 인정과 성취를 잃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일을 그만둘 수 없었다. 여자의 역할로 할당된 ‘집안일’은 여자가 잘 못하는 일이었지만, 잘하고 싶기도 했기 때문에 주로 음식을 새롭게 시도해 보는 것으로 노력해보고자 했다. 하지만 초보 요리사의 음식 정도로 남자의 기대를 채울 수는 없었다. 집이 항상 깨끗해야 했고, 남자가 정한 ‘도리’라는 것을 지켜야 했다. 가령 식탁 위가 제대로 안 닦인 것 같다면서 남자는 어느 날 직접 어떤 소독제를 사 와서 뿌렸는데 여자는 오히려 그게 더 몸에 위해할 것 같았다. 또는 남자에 따르면 결혼하고 처음 부모님을 뵈러 갈 때는 반드시 한복을 ‘입고’ 가야 했다. 여자는 한복을 가져가서 갈아입고 인사하면 된다고 했지만 험악한 표정과 함께 무시당했다. 하필 그 날은 비도 축축이 왔고 지하철과 기차를 타고 가야 했는데 말이다. 여자는 예쁜 한복의 치맛자락이 더러워지는 게 싫었고 남자는 여자가 자기 말에 반대하는 게 싫었다.   


남자는 여자가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는 것에 대해서 지나치게 경계했다. 가족 이외의 모든 사람과의 관계에서 그녀가 가족보다는 친하지 않기를 바랐다. 여자는 가족이 최우선이라는 그의 말에는 동의했지만 다른 사람과의 관계도 좋게 가져가고 싶었다. 하지만 불화를 일으키기 싫은 여자는 결국 세례를 받기 위해 교리 공부를 하며 다니던 성당도, 취미로 하던 미술 모임도 점점 가지 않게 되었다. 직장에서는 회식 때도 거의 참석하지 않아서 ‘칼퇴’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제야 돌이켜보니 연애 때에 하던 대화는 주로 개별적인 존재로서의 가치관이나 취향에 관한 것들이었고, 가끔 결혼이라는 주제에 대해서 대화할 때는 서로 두리뭉실 좋은 쪽으로만 뭉뚱그렸다. 서로 이렇게 좋아하는 데 무슨 문제가 있겠냐는 듯이! 결혼 전에 결혼생활에 대해서 진지하고 자세하게 그리고 자주 대화하지 않은 것은 그냥 실수 정도가 아니라 인생을 통째로 걸고 하는 무모한 도박과도 같았던 것을 그때는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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