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이빨이 두 줄로 나다
호주는 모든 것이 인위적이지 않고, 어지간히 큰일이 아닌 이상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흘러가게 내버려 둔다. 사람도 자연의 일부가 된 듯, 멜번에서는 맨발로 걸어 다니는 어른이나 아이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한국에서는 잔디에 들어가면 ‘쯔쯔가무시병’이라는 단어가 떠오르고, 아스팔트 위 길거리에서는 유리조각이 있지는 않을까 조심했던 터라, 처음엔 그런 모습이 그저 신기하기만 했다. 아이들이 감기에 걸려도 병원을 바로 가지 않고, 며칠은 그냥 두고 본다. 병균과 싸우느라 열이 오르는 것이 당연하다고, 몸의 면역력을 키우기 위해 해열제도 바로 먹이지는 않는다. 그래서 그런지 사람들이 웬만한 날씨에는 끄떡없고 참 건강해 보여서, 나도 언제부턴가 너무 의학에 기대지 않고 자연의 순리대로 사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그렇지 이건 좀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얼마 전부터 영구치가 나기 시작했는데 아직도 기존에 있었던 유치가 빠지지 않고 흔들거리기만 했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한국에서는 나중에 이가 삐뚤게 자랄 수 있으니 치과에 가면 쉽게 마취하고 발치해 준다고 한다. 그렇다면 호주는 어떤지 주변에 알아보니 역시나 여기는 웬만하면 발치를 해주지 않고, 치과 비용도 엄청 비싸다고 한다. 하지만 아이는 벌써 영구치가 자라기 시작한 지 두 달이 다 되어가는 동안 유치가 빠지지 않고, 게다가 옆에 있는 이도 영구치가 하나 더 올라오기 시작하자 더 기다릴 수 없어 결국 병원을 예약했다.
아니나 다를까. 치과 의사는 이를 구석구석 들여다보더니, 다른 건 전혀 이상이 없고 잘 자라고 있으니, 좀 더 지켜보라고 한다. 보통 유치가 올라온 지 세 달 까지는(세 달이면 유치가 영구치처럼 거의 다 자란다!) 기다려볼 수 있고, 억지로 빼면 오히려 애한테 트라우마가 생겨서 좋지 않다는 것이다. 그런 말을 하는 걸 보니 마취는 안 해주나 보다 싶었다. 나도 애한테 트라우마까지 안겨 주면서까지 예쁜 이빨을 고집하고 싶지는 않아서 알았다고 하고 그냥 나왔다. 그. 런. 데. 5분도 안 걸린 의사를 ‘보는’ 시간에 무려 65불이라는 금액이 나왔다. 약 5만 원 정도가 그냥 이를 보는 데 쓰인 셈이다. 하기야 충치 치료를 하면 이 한 개당 2-30만 원이 든다고 하니 그럴 만도 했다. 스케일링하는데 2만 원도 안 되는 우리나라를 생각하면 정말 의료비 차이가 많이 난다는 점이 실감 났다.
아이는 학교에서 친구들이 너도 나도 이빨이 빠져서 Tooth Fairy가 정말로 있다는 둥, 아침에 보니 베개 밑에 2달러가 있었다는 둥, 어떤 아이는 이 두 개가 한꺼번에 빠져서 super tooth fairy 가 와서 무려 10달러를 주고 갔다는 둥, 여러 버전의 tooth fairy얘기를 들은 지라, 자기도 이빨이 빠지기를 엄청 고대하고 있었다. 그 돈으로 사고 싶은 장난감도 미리 물색을 끝마친 지 오래다. 그러다 보니, 엄마가 실로 이를 뽑아주겠다는 제안이 꽤 그럴듯하게 들렸던 모양이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한번 해보겠다고 비장한 표정으로 내 앞에 섰다. 음. 하지만 엄마가 오히려 마음의 준비가 안 돼서 일단 유튜브로 집에서 이 뽑는 법에 대해 찾아보았다. 유튜브로 보니 생각보다 쉬워 보였고 이가 뽑힌 아이도 전혀 아프지 않다고 했다고 해서 아이와 나도 둘 다 안심했다. 단지 얇은 실을 쓰면 안 되고 명주실처럼 두꺼운 실을 써야 한다는 주의사항이 있었다. 그래. 역시 돌잔치 때 쓴 명주실을 버리지 않은 보람이 있었구나 싶어서 명주실을 꺼내왔고, 몇 번 연습한 끝에 드디어 실전에 돌입했다. 두둥.
그런데…! 이가 안 빠진다.. 피만 나고 애만 엉엉 운다..
결국 ‘명주실로 이 뽑기’ 작전은 실패로 돌아갔고, Tooth Fairy는 다시 기약 없이 기다려야만 하는 처지가 되었다. 아이는 어느새 아랫니가 유치와 영구치 두 줄로 나있고, 치과 트라우마는 없는 대신 엄마표 명주실 트라우마만 생겼고, 65불이라는 돈이 날아갔다. 과연 아이의 이를 예쁘게 만들어 주고 싶은 권리와 자연스럽게 내버려 두는 게 좋다는 의사의 판단 중 어느 것이 나은 것일까. 잘은 모르겠지만, 아이는 다시는 실로 이를 뽑는다고 하지는 않을 것임은 분명하다. 정말 이대로 괜찮은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