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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책 Nov 07. 2020

화장실에 인색한 호주 vs. 휴지통에 인색한 한국

작지만 다른 차이

호주에 온 지 한 달 정도 되어갈 때 느꼈다. 아니 여긴 뭐 이리 화장실이 없나. 유럽에는 유료 화장실이라도 있었지만 여기는 길을 가다 아무리 주변을 둘러봐도 도무지 화장실 표지판이 안 보이는 것이다. 여섯 살 아이랑 같이 외출하다 보면 그 작은 방광 때문에 꼭 한 번은 화장실을 찾게 되는데 화장실이 없어 난감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남자아이라서 (이런 말은 하고 싶지 않지만) 너무 급할 때는 하는 수 없이 으슥한 곳이나 수풀을 찾아 실례를 하게 하는 적도 있었다. 길거리에 공중화장실은 물론, 상가 같은 곳도 없고, 그나마 상가를 대신하는 시티의 쇼핑센터에 가도 화장실 간판이 그리 잘 눈에 띄지 않고, 발견해도 한참을 가야 한다. 사실 고백하자면 한국에서 급할 때는 스타벅스 등의 커피숍 화장실을 주로 애용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한국사람들이 호주에 처음 왔을 때 공통적으로 겪는 어려움이라고 한다. 지인에게 물어보니 대부분 카페나 레스토랑에는 화장실이 있으니 거기서 해결하는 게 좋다고 한다. 아니면 공원의 공중화장실. 그런데 꼭 카페나 레스토랑에서는 화장실 들르는 것을 잊어버리고 그냥 나오고 공원은 하도 커서 공중화장실을 한번 지나치면 그다음 화장실 있는 곳까지 꽤 멀리 걸어야 한다.. 흠 이 사람들은 화장실에 갈 것을 미리 예측하고 어디선가 해결하고 오는 건가. 아님 다들 장이 튼튼하신가. 호주에서 살아본 지 1년이 넘었는데 아직도 이유는 잘 모르겠다. 단지 땅이 넓고 인구가 밀집되지 않아서 그럴 필요가 별로 없어서였을 거라고 추측할 뿐이다. 


대신 이런 환경에 적응은 조금씩 되어가는 것 같다. 집에서 나서기 전에는 화장실을 들르고, 어딘가 먹으러 들어가면 꼭 떠나기 전에 화장실을 간다. 조금 다른 이야기이긴 하지만, 화장실뿐 아니라 처음 가는 곳을 찾아갈 때도 간판 자체가 드물어서 밖에서 외관만 보고 찾기에는 어려운 경우가 많다. 단층짜리 낮은 건물 위주라서 딱히 간판이 필요 없을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간판 만들기를 귀찮아하는 것 같기도 하다. 굳이 간판=홍보에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고나 할까. 어차피 입소문이 나면 올 사람들은 다 온다는 식이다. 심지어 어떤 커피숍은 창문에 그 전 가게에서 붙였을 법한 Italian Hand Made Shoes라는 글씨를 지우지 않고 그대로 둔 곳도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의아하게도 휴지통은 곳곳에 참 많이 비치되어 있다. 공원은 물론이고, 길을 가다가 어디든 흔하게 커다란 쓰레기통을 자주 만날 수 있어 손에 들고 있던 쓰레기를 쉽게 버릴 수 있다. 대부분 쓰레기통 상태도 깨끗하고 쓰레기통도 대부분 종류별로 일반쓰레기통과 재활용 쓰레기통이 함께 놓여 있다. 공원이나 사람이 많이 다니는 곳에는 애완동물 배설물 휴지통도 옆에 추가로 놓여있다. 심지어 어떤 곳에는 주사기를 버리는 통도 따로 있다. 의아하게도 당뇨 환자를 배려한 것인가 싶었는데, 그게 아니라 여기는 마약을 하는 사람들이 함부로 주삿바늘 버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별도로 버리는 곳을 마련해 놓는다고 한다. 허걱. 


내가 살던 서울에서는 언제부턴가 거리에서, 심지어 화장실에도 휴지통이 점차 없어지고 있었다. 길거리에 큰 휴지통이 있으면 사람들이 휴지를 이것저것 많이 버려서 관리가 어려운 탓이다. 깨끗한 거리, 깨끗한 화장실을 외치며 휴지통을 점점 치워버리는 추세다. 그래서 뭔가를 먹고 나서 생긴 쓰레기가 있어도 손에 들고 다니거나 가방에 넣었다가 그대로 집에 들고 와서 버리곤 했다. 물론 아주 작은 것은 식당이나 쇼핑센터의 휴지통에 버릴 수 있었지만 말이다. 인구가 과잉 밀집된 대도시여서 그랬을까, 쓰레기 종량제의 압박 때문에 그랬을까. 아직도 이유를 잘 모르겠지만, 작은 것에서부터 각 나라가 사는 방식이 이렇게나 제각각이구나 싶다. 


다행히 멜번은 어딜 가나 풀밭이나 풀숲이 많고, 아이가 급할 때는 잠시 풀숲에 들어간다. 그리고는 쉬를 하며 말한다. ‘풀아, 오늘 내가 몸에 좋은 음식을 많이 먹었어. 목마를 텐데 물 잘 먹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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