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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책 Jan 04. 2021

구독자님들께 드리는 편지

feat. 옛사랑 (이문세)

브런치를 10월 초에 시작한 이후에 한 명 두 명 늘어난 구독자수가 어느덧 26이라는 숫자가 되었네요. 저는 제 얘기를 나누기에 딱 좋은 숫자인 것 같습니다. ^^ 회사 생활밖에 잘하는 것이 없던 제가 글쓰기로 허전한 마음을 달래보고자, 하나 둘 끄적이면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3개월이라는 시간이 지났네요. 항상 마음속에만 감사한 마음을 담고 다니다가 이제야 이렇게 전합니다. 저의 부족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드리고, 앞으로 조금씩 부족한 부분을 채워 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요즘 다들 그런가요? 저는 새해를 맞으면서 이런저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마구 스쳐 지나가는데요, 오늘 <놀면 뭐하니>라는 티브이 프로그램을 보다가 이문세 노래의 가사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말았습니다. 이문세 노래야 워낙 학창 시절부터 좋아했지만, 가사가 이렇게까지 마음속을 후벼 파면서 들어온 것은 처음인 것 같아요. 구구절절 이렇게 내 마음 같을 수가 없어서 전혀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평소 옛사랑 생각을 하던 것도 아닌데 말이죠. 흠흠.    


가끔 저녁 식사 준비를 하다가 공기가 너무 더워진 것 같아서 베란다 창문을 열면, 선선한 바람 몇 가닥이 차분히 귓가로 불어와서 나도 모르게 하늘을 멀리 쳐다볼 때가 있어요. 그러다 노을마저 예쁜 날에는 아예 베란다에 들고 나와서 먹기도 하고요. '옛사랑 이름을 아껴 불러본다'는 말이 유독 마음에 남으면서 그런 날들이 스쳐갑니다. 첫사랑이라고 하기에도 너무 미숙한, 그렇다고 친구라고 하기에는 애매한 그런 저의 옛사랑이 생각나네요. 너무 오래되었기도 하였지만, 그보다는 너무 순수하고 예뻐서 쉽게 부르기가 아까운 이름. 그래서 아껴 부른다고 했을까 싶었습니다.  


노랫말의 '하얀 눈이 하늘 높이 올라가는' 것처럼 시간을 거꾸로 되돌려 추억 속을 되짚다 보면 몇 가지 생각나는 장면이 있습니다. 초여름이었을까요. 그렇게 춥지도 덥지도 않은 어느 날, 고등학생이었던 그 친구와 저는 나란히 집 근처 벤치에 앉아서 초저녁의 깨끗하고 밝은 달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 친구는 엄마 아빠가 곧 이혼을 할 거라고 했어요. 그리고 그렇게 되면 동생과 함께 미국에 가게 될 수도 있다고 했죠. 하지만 제가 마음에 걸렸던지, 제가 가지 말라고 하면 안 갈 거라고 했어요. 한쪽 손을 잡고 있었는데 그 친구의 손에 땀이 많이 났었습니다. 저는 그런 엄청나게 큰 결정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 자체가 너무 부담스러웠던 것 같아요. 그 친구가 좋았지만 저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처음부터 제가 성적이 떨어질까 봐 신경 쓰인다는 말에, 그 친구는 걱정 말라며 공부도 열심히 하자고 하더니 정말로 성적을 쑥쑥 올려서 저에게 성적표를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저는 잡생각이 많아지고 불안해져 집중이 잘 안되더라고요. 그래서 결국 몇 달 만에 그만 만나기로 했고, 그 이후에 그 친구는 아주 힘들어했던 것 같습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음악에 빠져서 헤비메탈을 한다고도 했고, 날라리같이 변해서 싸우고 다닌다는 얘기도 있었어요. 얌전한 모범생 아이였는데 그렇게 변했다는 게 믿기지 않았어요. 그때는 헤아리지 못했지만, 지금은 알 것 같아요. 부모님의 이혼만 해도 마음에 큰 상처를 입었을 텐데, 그나마 기댈 곳이었던 저까지 등을 돌려버렸으니 어린 마음에 세상을 잃은 것 같은 기분이었을 것 같아요.  


그래서 그 친구가 생각날 때마다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언젠가 우연히라도 마주치게 되면 꼭 미안했던 마음을 전하고 싶어요. 그 친구는 노래를 정말 잘했어요. 처음 저에게 카세트테이프로 직접 녹음해서 주었던 노래도, 직접 전화기 너머로 불러주었던 노래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요. 원곡 가수보다 더 잘 불렀었거든요. 그 시절에는 휴대폰이 아직 없었던 때라서 전화기를 들고 몰래 방으로 와서 이불속에서 들었는데, 그래서 더 감미로웠는지도 모르겠어요. 그 친구의 약간 떨리는 목소리마저 설레었습니다. 그 친구도 부모님 몰래 부르는 거라 목소리를 크게 낼 수도 없었을 거에요. 그 노래가 참 좋아서 두고두고 생각났다고도 말해주고 싶습니다.   


그 설레는 옛사랑을 저멀리 뒤로 하고 저는 지금 사랑이라는 게 지겨운 순간에 와 있습니다. 사랑. 이제 저에게는 정말 끈질기고 지겨운 단어가 되었습니다. 내 마음 속 고독이 너무 흘러 넘쳐서일까요. 아니면 육아로 시작된 새로운 인생과 내 마음과는 반대로 가는 남편과의 결혼생활에 지쳐서 일까요. 이래 저래 고독은 이제 저의 절친이 되었습니다. 가끔은 고독한 시간을 즐기기도 합니다. 지금처럼요. 하지만 내내 이렇게 살고 싶지는 않아요. 언젠가 제 마음에도 눈 녹은 봄날이 오면, 예쁜 옛사랑을 닮은 푸르른 잎새처럼 제 마음도 사랑으로 가득 흘러넘치기를 바라봅니다.

  

옛사랑 가사를 듣다가 이야기가 되어버렸네요. 

오늘도 읽어 주셔서 감사하고, 여러분의 사랑은 부디 옛사랑처럼 아름답기를, 지겨운 사랑이 있었다면 지나갔기를 바랍니다. 


조금 늦었지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옛 사랑  


남들도 모르게 

서성이다 울었지

지나온 일들이 

가슴에 사무쳐 


텅빈 하늘 및 

불빛들 켜져가면

옛사랑 그 이름 

아껴 불러보네 


찬바람 불어와 

옷깃을 여미우다

후회가 또 화가 

난 눈물이 흐르네 


누가 물어도 

아플 것 같지 않던

지나온 내 모습 

모두 거짓인가 


이제 그리운 것은

그리운 대로

내 맘에 둘 거야


그대 생각이 나면

생각난 대로

내버려 두듯이 


흰 눈 나리면 

들판에 서성이다

옛 사랑 생각에

그 길 찾아가지


광화문 거리 

흰 눈에 덮여가고

하얀 눈 하늘 높이 

자꾸 올라가네  


사랑이란게 

지겨울 때가 있지

내 맘에 고독이 

너무 흘러 넘쳐


눈 녹은 봄날 

푸르른 잎새 위에

옛사랑 그대 모습 

영원 속에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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