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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책 Jan 11. 2021

엄마, 나 ‘F word’ 안다

몇 분짜리 대화에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코로나가 잠잠해져서 Term4는 무사히 학교에서 모두 마치고 지금은 일 년 중 가장 긴 여름 방학중이다. 요즘 오은영 박사의 육아 관련 책을 두 권 읽고 있는데 하나하나 적용할 때마다 아이랑 조금씩 더 친해지는 것 같아서 놀라고 있다. 평범한 저녁 식사 시간. 나는 책의 내용을 떠올리며 아들과의 대화에 좀 더 집중해보려 애쓴다. 속으로는 '어떤 상황에도 훈육은 혼내는 것이 아니라 가르치는 것'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떠올리면서. 학교 생활이나 친구들, 최근 본 만화 이야기, 좋아하게 된 노래 등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이었다. 내가 듣는 음악을 자연스럽게 아이도 같이 듣게 되어, 우리는 좋아하는 음악이나 노래도 꽤 비슷해져서 음악도 틀었다. 그렇게 아름다운(?) 대화를 하던 중에 갑자기 아이가 던진 한 마디에 나는 그대로 얼어붙어서 어떤 대답이 최선의 대답일지 생각하느라 머릿속을 빠르게 굴리게 되었다. (참고로 아들은 여섯 살, 한국 나이로 일곱 살이다.)  


아들: 엄마, 나 F-word 안다.

나: 아 정말?  (이때부터 머릿속은 엄청난 공회전을 시도함. 설마.. 그 욕(f***)을. 누구한테 들었지.. 대체 어디서??)

아들: 응. 그거 Bad word 쟎아.

나: 그렇지. 그거 나쁜 말이라서 아이들이 하면 안 되는 거지. (진짜로 아는 모양이네..)  

아들: 나 그거 무슨 말인지도 알아. 얘기해도 돼? (이때부터 표정이 심각해진다.)

나: 음.. 아니. 얘기 안 하는 게 좋을 거 같은데. 근데 정말 알아? (제발 아니기를. 아이 입에서 그 단어를 듣고 싶지 않다. 아직 여섯 살인데..)

아들: 응. 그냥 얘기할래.

나:.. (마음의 준비.. 그래, 언젠가 한 번은 겪어야 할 일.. )

아들: (심각하고 진지한 표정으로) FART (방귀)

나: 푸하하하 (잠시 웃음을 꾹 참았지만,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울면서 웃었다.)

아들: 왜 웃어 엄마? 아 왜 그래?   


정말 혼자 빵 터졌다. 그래도 내가 너무 혼자 웃으면 아이가 기분이 상하거나 이상하게 생각할까 봐, 방에 같이 데리고 가서 한바탕 침대에서 뒹굴거리며 놀아주는 척하며 웃었다. 일단은 아직 몰라서 다행이다!  하지만 엄마의 이상 행동으로 미루어 보아 뭔가가 더 있다고 짐작은 했을 것 같다. 그걸로 오늘은 일단 끝! 


정말 그 짧은 순간에 나는 진심으로 마음의 준비를 했다. 왜 굳이 나쁜 말을 배워 왔을까, 혼자 생각하면서 어떻게 설명해줘야 좋은 건지 생각해내려 애썼다. 생각해보니 그리 자세히 뜻을 설명해주지는 않아도 될 것 같은데 당황해서 엄마 혼자 너무 진지했다. 나쁜 말이라고 해도 알아서 천천히 알게 될 텐데 말이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돌발 상황에 내가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최선인지 잘 판단이 서지 않을 때가 있다. 가령 몇 달 전에 아이가 정자와 난자가 도대체 어떻게 만나는 건지 궁금하다고 물어봤을 때도 그랬다. 그렇게 작다는 정자가 어떻게 아빠 몸에서 나와서 엄마의 난자에게 가는지 구체적으로 궁금해했는데, 그때는 물어보고 나서 바로 나름 스스로 답을 찾았었다. ‘아 알았다! 하도 작아서 스프레이 비처럼 공기 중으로 움직이는 거구나!’. 그 말을 들었던 날도 어떻게 설명해 주는 게 최선인지 찾기 위해서 나는 혼자 밤새 성교육 관련 책과 동영상을 뒤졌다. 우리나라 자료뿐 아니라 독일 등 유럽 자료들도 유튜브로 찾아볼 수 있었는데, 의외로 결론은 간단했다. 나이에 맞는 수준으로 가르치면 되는 것이다. 여섯 살 아이에게는 굳이 자세하게 설명해주려 애쓰지 않아도 되고 아이가 자연스럽게 이해하는 수준에서 설명해 주어도 된다.   


또 최근에 이런 적도 있다. 아이랑 평소에 레고 놀이를 많이 해서 집에 있는 레고는 거의 다 알고 있는데, 학교 가방에 못 보던 특이한 레고 조각이 두 개 있는 것이다. 아마 평소 같았으면 이건 훔친 것이니 꼭 따끔하게 혼내서 처음부터 버릇을 잘 들여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오은영 박사님의 말을 다시 한번 상기시키고 어떻게 얘기할지 먼저 머릿속으로 정리를 해보았다. ‘엄마가 네 가방에서 이걸 발견했는데, 이건 우리 집에 있는 게 아닌 것 같다. 학교에서 가져왔니? 처음 보는 거라 갖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겠는데, 네 물건이 아닌 남의 물건을 주인의 허락 없이 맘대로 가져오는 것은 아주 잘못된 행동이야. 다시 제자리에 갖다 놓자.’ 이렇게 시나리오를 짜고 대화를 시도했다. 물론 처음에는 아이가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지만, ‘엄마가 혼내려는 게 아니라 가르쳐 주려는 거야’라고 했더니 안심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다 듣고 나더니 ‘엄마 얘기해줘서 고마워요. 안아 주세요. 엄마 사랑해요.’ 하는 것이다. 존댓말까지 써가면서 진심으로 고마워하는 걸 보니 잘 전달이 된 것 같아서 참 뿌듯했다.  


역시 엄마도 배워야 한다. 엄마 노릇이 처음이라고 어쩔 수 없다고만 하면 안 되는 것 같다. 아이들은 부모의 작은 말투의 변화에도 금방 변화를 느끼고 자신도 변하기 때문이다. 육아서를 예전에도 몇 개 읽어 보았지만, 역시 오은영 선생님의 가르침은 최고이다. 


언젠가는 f word의 뜻을 제대로 듣고 오게 되더라도 아이가 자라면서 겪어야 할 수많은 일들 중의 하나일 것이다. 소심한 이 엄마는 그런 수많은 일들에 대해 미리 좀 더 대담함을 키우기 위해 앞으로도 종종 육아서를 읽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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